“딱 떨어지는 인물이 아니었다.” 신혜선은 인터뷰 내내 <결백>은 정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강조했다. 그가 연기한 정인은 성공하기 위해 엄마와 동생을 집에 둔 채 상경해 잘나가는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어느 날 엄마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정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때때로 과거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이다. 정인 또한 고향에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면서 서서히 변화한다. 영화로는 첫 주연을 맡은 신혜선은 “뿌듯한 동시에 관객이 어떻게 볼지 겁도 난다”고 소감을 말했다.
-출연을 결정하는 데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다. 당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아버지가 시나리오를 읽고 ‘이걸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던데.
=아버지가 읽고 재미있으셨나보다. 아버지가 ‘해보라’고 말씀하신 건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재미있게 읽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정인은 어떤 인물로 보였나.
=딱 떨어지지 않는 인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고, 감정 또한 명확하지 않는 순간이 많았다. 현실에 안주하기 싫어서 시골집에서 도망나왔고, 그렇게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지만 고생 없이 살아온 여자처럼 보이면 또 안될 것 같았다. 이제껏 작업한 캐릭터 중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정인이 엄마의 무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않은 과거의 비밀들을 알게되면서 변화하는 과정에 몰입했고, 덕분에 시나리오가 술술 읽혔다. 이런 시나리오를 만날 수 있어 행운이다.
-정인은 전문직(변호사)에 종사하고,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한다는 점에서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맡은 수습 검사인 (영)은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도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 은수가 떠오르겠다 싶었다. 은수와 정인, 두 인물 모두 내 안에서 끄집어낸 모습이기 때문에 자기복제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결이 비슷하지만 은수가 다소 어린 느낌이라면 정인은 마음속에 응어리를 지닌 채 살아가는 성숙한 사람이다.
-성공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정인이 엄마가 연루된 살인사건에 이끌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설정이 흥미롭더라.
=이성적으로만 따지면 엄마와 남동생을 시골에 둔 채 고향을 떠 난 그가 다시 돌아가는 상황이 완전히 납득되진 않지만, 그럼에도 감정적으로는 그가 고향으로 향한 건 혈연이 그를 당겼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정인이 사건을 파헤치면서 사건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혼자 고향을 떠난 것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 등 그간 몰랐거나 잊고 살아온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결백>은 정인이 누군지 찾아가는 과정이었겠다.
=정인은 안개 같은 여자랄까. 감정 변화가 큰 폭으로 넘나드는 성격도 아니고, 그런 상황 또한 없어서 찍는 내내 이 감정이 정확한가 싶을 때가 적지 않았다. 나 또한 관객과 같은 시점으로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는 거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정인은 영영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살아가지 않았을까.
-정인이 진실을 알아가면서 그가 겪는 감정들이 점점 더 명료해졌겠다.
=그렇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성공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가족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잘 몰랐던 그가 비로소 자신과 엄마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첫 영화 주연작인데.
=영화든 드라마든 매 작품 겁이 나고 부담스럽다. 카메라 울렁증도 심해서 현장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딕션 요정’(드라마 <비밀의 숲> 때 발음이 정확해 붙여진 별명)이라 강심장일 거라 생각했다. (웃음)
=아니다. 현장에서 적응하는 ‘로딩 시간’을 갈수록 줄이는 게 목표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현장에 가면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배종옥 선배님과 함께 작업하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선배님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장을 한 채 늙고 초췌해진 모습으로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울컥했다. 선배님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고 계시지 않나. 나 또한 선배님처럼 오랫동안 다양한 역할을 맡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