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1950년대 코리안 리얼리즘의 성취, 김소동 감독의 '돈'
2020-06-29
글 :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코리안 리얼리즘, 농촌을 대면하다
서울에서 가져온 돈이 신문지 조각임을 알게 된 봉수(김승호)는 망연자실한다.

<돈> 제작 김프로덕션 / 감독 김소동 / 상영시간 123분 / 제작연도 1958년

1950년대 한국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네오리얼리즘’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 이탈리아의 영화 사조 네오리얼리즘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강박관념>(1943)을 시작으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 같은 작품들이 일정한 미학을 구축하며 세계 영화사의 한 챕터를 장식했다. 이러한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이 처음 한국에 선보인 때는 놀랍게도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이다. 1·4후퇴 이후 생사의 갈림길을 헤맨 피난민들이 부산, 대구 등지에 모여 피난도시를 형성했고, 극장 역시 전쟁에 지친 이들을 달래기 위해 다시 문을 열었다. 이때 할리우드영화, 프랑스영화와 같이 상영된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오락거리를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불과 몇년 전의 이탈리아영화에서 현재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한 농촌의 실상

생전의 신상옥 감독이 피난 시절 가장 큰 쇼크를 받았던 기억이 <자전거 도둑>을 봤던 때라고 회고한 것처럼, 당시 영화인들 역시 네오리얼리즘 영화로부터 적지 않은 예술적 자극을 받았다. 대전 중에 등장한 네오리얼리즘이 전후 이탈리아영화의 정신과 체질을 형성한 것처럼, 한국영화 역시 6·25전쟁 중에 만든 극영화에서부터 네오리얼리즘 사조를 반영하기 시작했고, 전후의 연출자들도 주제나 스타일에서 리얼리즘의 수용을 가장 중요한 방법론으로 고민하게 된다. 피난지 대구에서 제작된 <악야>(1952, 필름 유실)와 <태양의 거리>(1952)가 가장 처음 ‘코리안 리얼리즘’으로 지명된 작품들이다. 신상옥의 데뷔작인 전자는 작가, 양공주 등 여러 인간 군상을 통해 전쟁 중 사회상을 묘사했고, 민경식(북한영화 <용광로>(1949)를 연출한 민정식의 형)의 데뷔작인 후자는 피난 가족의 위태로운 삶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포착했다. 이러한 코리안 리얼리즘 경향은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로 이어졌고, 1958년 김소동 감독의 <돈>에서 만개한다.

영화 <돈>은 직관적인 제목 그대로, 돈 때문에 고통받는 농촌 사람들을 그린다. 이 영화가 1950년대 한국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예리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농촌의 실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코 영화는 선과 악을 도식적으로 구분하지도 헛된 희망을 함부로 내비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적인 화법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 엘리트였던 김소동 감독(1911~88)은 여러 지면을 통해 한국영화의 필연적 과제가 예술성과 대중성의 밸런스를 잡는 것이라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연출 철학은 영화 <돈>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봉수(김승호)와 억조(최남현)의 노름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의 정교한 연출은 지금의 관객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청년 영호(김진규)와 옥경(최은희)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당시 대중 관객을 위한 장면들 역시 지금 봐도 충분히 아름답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이중주

이 영화의 주인공은 순박한 농사꾼인 봉수이다. 여기서 순박하다는 표현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로만 귀결되지 않는다. 소처럼 성실히 일하는 그이지만 어떻게든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은 물론, 쉽게 사기를 당할만큼 어수룩한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술이 몇잔 들어가면 결국 허세를 부리고 마는 보통 사람이기도 하다. 봉수네 역시 마을의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

돈은 없고 빚은 늘어만 가니 딸 순이(임양)의 결혼도 계속 미룰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아들 영호가 장교 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역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결혼을 약속한 옥경이 주막에서 일하는 것이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들 뿐이다. 한편 주막집 과부(황정순)와 사는 억조만이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며 잇속을 챙긴다.

영화는 평화로운 농촌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 속사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다. 노름, 사기, 겁탈, 격투로 이어지는 파토스적 에피소드들은 1950년대 대중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모두 세번에 걸쳐 봉수의 인상적인 얼굴을 잡아낸다. 봉수가 쌀을 팔아 돈이 생긴 날, 마을 남자들이 주막에 모여 술을 먹다 화투를 치고, 용케 봉수가 돈을 따게 된다. 양심에 걸린 봉수는 돈을 돌려주러 나서지만 억조의 사기 노름에 결국 쌀 판 돈까지 깡그리 잃게 된다. 이 신을 마무리하는 것은 분노와 체념이 교차하는 봉수의 얼굴이다. 여기까지 영화는 억조는 악인, 봉수는 선인으로 그리는 듯하지만 이후 봉수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억조는 봉수에게 구제품 장사를 소개시켜주고, 그는 송아지 판 돈을 들고 서울로 간다. 돈뭉치를 들고 구호물자 도매시장을 찾아다니는 봉수를 본 사기꾼 일당(전택이, 노경희)은 쉽게 그를 속이고 돈을 가져간다. 하지만 봉수는 사기꾼 여자가 10만환을 두고 사라져 거저 5만환을 벌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한다.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온 봉수는 그제야 돈다발이 신문지 뭉치임을 알고 망연자실한다. 넋이 나간 봉수의 얼굴 위로 시장 거리의 소음과 기차 소리가 교차하며 그가 받은 충격을 배가시키는 숏은 단연 이 영화의 백미다.

영화의 후반부, 옥경을 겁탈하려던 억조가 돈을 흘리고, 봉수가 그 돈을 가로채기 위해 그와 몸싸움을 벌인다. 결국 억조는 자신의 칼에 찔려 죽고, 집으로 돌아온 옥경이 그 돈을 줍는다. 그녀는 서울에서 만나자는 편지와 돈 일부를 영호에게 남긴 후, 나머지 돈을 들고 마을을 떠난다. 날이 밝자 살인사건이 드러나고 옥경과 영호는 각각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서 붙들려 경찰서로 가게 된다. 경찰은 두 사람이 살인범이라 판단해 기차에 태워 본서로 압송한다. 이를 본 봉수는 기차를 따라 뛰어가다“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야! 억조가 죽은 건 돈 때문이다!”라며 울부짖는다. 영화가 포착하는 봉수의 세 번째 얼굴이다.

이 영화가 근대화 혹은 자본주의적 가치를 상징하는 기차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오프닝 크레딧 화면, 비장한 음악과 함께 저 멀리 기차가 보이지만 기차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막이 끝나갈 무렵 줌인한 카메라에 잡힌 기차는 마치 사람을 덮치듯 가까이 와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떠나가는 기차(카메라)의 시점으로 보이는 봉수의 모습은 탐욕이 초래한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 <돈>은 <그대와 영원히>(감독 유현목, 1958)와 함께 제5회 아세아영화제 출품작으로 선정되었다가, 당국에 의해 출품이 취소되는 사건을 겪었다. 주제와 묘사가 어둡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조치는 심각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 농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암울한 묘사는 고사하고 계몽과 개발의 프로파간다를 어떻게 영화 속에 녹일지 최우선으로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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