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블루 아워' 심은경 - 즐거움이라는 가치
2020-07-23
글 : 배동미
사진 : 최성열

심은경에게 <신문기자> 이전에 <블루 아워>가 있었다. 홀로 일본에 도착한 지 약 1년의 시간이 흐른 2018년 여름, 배우 심은경은 일본인 감독과 일본인 배우, 일본인 스탭들과 호흡하면서 일본에서의 첫 작품 <블루 아워>를 촬영했다. 그가 연기한 기요우라는 바쁜 도시의 삶에 지친 CF감독 스나다(가호)와 여러모로 대비되는 인물이다. 일정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서도 시종일관 밝고 경쾌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아픈 할머니를 뵈러 고향에 오라는 어머니의 전화에 우물쭈물하는 스나다와 달리 기요우라는 당장 떠나자며 운전석에 앉아 출발해버린다. 이방인으로서 촬영 현장에 임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심은경은 3살 위의 또래 배우 가호와 “촬영 전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였던 덕분에 스크린에서도 끈끈함이 느껴지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6일 영화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심은경은 약 2주 뒤인 3월22일 <블루 아워>로 다카사키영화제에서 가호와 공동으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두편의 영화와 두개의 트로피. 그가 일본에 진출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들이다. 아역배우로 경력을 시작해 일본 진출과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여우주연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우리를 놀라게 한 배우 심은경과 화상통화를 통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하면서 도쿄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블루 아워>는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나. 기요우라 역할에 끌렸던 이유는 뭔가.

=<블루 아워>는 12세 관람가 영화지만 어른들을 위한 우화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다들 일을 열심히 한다. 성과를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간다. 그러다 ‘내가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와장창 무너져내린다. 그런 상태가 쭉 유지가 되기도하는데, 슬럼프가 바로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스나다고, 스나다 같은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기요우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 같다. <알라딘>의 지니나 <겨울왕국>의 올라프 같은 캐릭터. 일본어를 아는 분들은 느끼겠지만 기요우라의 말투가 굉장히 독특하다. 한국어로 치면 “그랬으니까용~!”“알아썽~!” 이런 느낌으로 말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말을 흘려서 하거나 줄임말과 유행어를 쓴다.

-외국어로 감독과 소통하는 건 어땠나.

=하코타 유코 감독은 내가 가오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애드리브를 날려서 그에게서 날것의 연기를 끄집어내도록 작은 미션을 줬다. 예고편에도 나오는데,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고향 가자고 해서 “갑니다~”라고 외치고 운전대를 잡는데 차가 안 나가는 장면이 있다. 실제상황이었다. 당황스러운데도 감독님이 컷을 외치지 않았다. ‘연기를 계속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다시 “갑니다~” 하고 연기를 이어가니까 가오가 옆에서 “드라이브로 안 놨는데”라고 말했다. (웃음)

-시종일관 심은경 배우의 애드리브가 들어간 작품이라면 기요우라를 구체화하기 위해 아이디어도 많이 냈을 것 같다.

=<블루 아워>는 현실적인 영화지만 기요우라는 어딘가 현실적이지않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집에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꽂혀 있는 걸 우연히 봤는데, 기요우라가 어린 왕자 같은 느낌이 나면 좋겠다 싶었다. 의상 피팅 때 어린 왕자의 옷과 비슷한 점퍼슈트를 직접 제안했다. 두 캐릭터의 성격이 다르니까 통이 넓고 하늘하늘한 스나다의 의상과 상반되도록 기요우라는 각지고 활동적인 느낌의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코타 감독도 피팅 때 점퍼슈트를 입은 내 모습을 보고는 “기요우라네. 그래, 이걸로 갑시다”라고 했다

-배우 가호와의 호흡은 어땠나.

=일본에 처음 와서 촬영한 작품이 <블루 아워>고, 처음 같이 호흡을 맞춘 배우가 가오다. <블루 아워>는 스나다와 기요우라의 끈끈함이 기본적으로 깔린 이야기이기 때문에 촬영 전에도 만나서 얘기를 많이 했고, 촬영 들어갔을 때도 서로 많이 의지했다. 가호는 이 영화에 애정이 대단했고, 자신에 대한 영화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도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에 끌렸고,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둘이 똘똘 뭉쳤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일본에 진출하고자 마음먹었나.

=일본영화계는 한국과는 좀 다른 색깔의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했고, 내가 그 색깔을 입으면 어떨까 궁금했다.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고 싶으면 그 나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쉴 때 혼자 일본에 가서 전철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감사하게도 유마니테라는 일본 회사와 연이 되어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올해 3월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여우주연상과 다카사키영화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둘 다 너무나 큰 상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제대로 활동한 지 채 2년이 안되는데 아니 이게 도대체…. (웃음) 사실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수상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있으면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스무살 때 찍은 <수상한 그녀>가 흥행한 뒤에는 <걷기왕>과 같은 독립영화에도 출연했고, 이후 일본에 진출해서 좋은 결과를 냈다.

=돌이켜보면 20대 초반에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게 되게 중요했다. 어릴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뒤 <수상한 그녀>란 작품을 통해서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했는데, 이후 뭔가 획기적이고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기존에 했던 연기와 다른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게 맞는지 틀린 건지, 이게 나한테 맞는 건지 아닌지 생각한 시간들이었다. 지금은 즐기는 것을 이기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팬들과 활발히 소통했는데 요즘 SNS를 잘 안 하는 것 같다.

=새로 만들었다! 사실 원래 가지고 있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계정의 비밀번호를 까먹었다. 한동안 안 하다 보니 비밀번호를 까먹었고, 복구하려 했는데 방법을 못 찾았다. 인스타그램만 새로 만들었다. 소소하게 하고 있다(심은경의 새로운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ekshim이다.-편집자).

-차기작은 뭔가.

=7월 일본영화 <동백정원>이 개봉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개봉이 밀렸다. 할머니의 오래된 가옥에 손녀가 들어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고, 사계절을 전부 담아야 해서 1년 동안 찍었다.

-언제 한국영화로 만날 수 있나.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한국영화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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