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블루 아워' 가호 - 엇나감의 미학
2020-07-23
글 : 조현나
사진제공 오드(AUD)

“이렇게 대단한 시나리오는 처음이었다.” 시나리오를 펼쳐든 순간, 가호 배우는 영화 <블루 아워>가 가진 에너지를 단번에 알아챘다. 가호가 연기한 스나다는 현장의 마찰을 매끄럽게 풀어내는 베테랑 CF감독이다. 회식 자리에선 온 힘을 다해 즐길 줄 알고 귀갓길에 남편을 위한 빵을 고르는 세심함도 지녔지만 정작 자신의 속내는 조심스레 감춘다. 가호는 그런 스나다의 속내, 이를테면 가족에 대한 애증은 서늘한 눈빛으로,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주저하는 손짓으로 설핏 내보인다. 감춰둔 감정을 기요우라(심은경) 앞에선 술술 털어놓는 스나다처럼 가호는 촬영 내내 “심은경 배우가 무척 의지가 됐다”며 그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2005년 영화계에 첫발을 들인 후 <블루 아워>로 올해 다카사키영화제에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까지 가호는 수많은 인물로 분하며 대중 앞에 섰다. 국내 관객에게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치카 역으로 익숙한 배우이지만, <블루 아워>를 관람한 후엔 스나다의 면모가 관객에게 또 한번 강하게 각인되리라 확신한다. 일본에 있는 가호 배우와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전한다. 그의 간결한 문장에선 스나다와 같은 조심스러움이 묻어났지만, 가까운 친구처럼 스나다를 묘사할 때마다 그가 얼마나 고심하며 촬영에 임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극중 배우에게 CF에 관해 설명해주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연기이긴 해도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현장에 임하는 상황이 색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평소엔 배우로서 제작자의 연출을 따르는 입장이다 보니 감독으로 연기하는 것은 확실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주변의 보조출연자들도 현재 광고업계에 실제 종사하는 분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마치 진짜 CF 촬영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상황에 더 잘 몰입할 수 있었다.

-캠코더로 촬영하는 신들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혹시 스나다처럼 촬영이나 연출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

=전혀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여러 감독님들과 함께 작업해오면서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 맞아!”라고 외칠 정도로 스나다에게 깊이 공감했다고.

=스나다는 일적으로 나름의 성공을 거뒀고 가정도 있는 인물이다. 가족구성원이 독특하긴 하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일상에는 고독함과 초조함,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이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모호한 감정들이 자리한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그런 스나다의 상황과 감정이 크게 와닿았다. 남들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스나다의 감정을 잘 표현해보고 싶었다.

-스나다는 감정 표출을 굉장히 자제하는 인물이다. 그런 스나다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나.

=<블루 아워>가 하코타 유코 감독의 경험을 토대로 제작된 작품이기때문에 스나다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다 싶었다. 크랭크인에 앞서 하코타 유코 감독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감독의 고향집에 놀러가기도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과정에서 스나다라는 캐릭터가 자연스레 완성되었다.

-하코타 유코 감독이 특별히 조언한 것이 있다면.

=하코타 유코 감독은 “스나다를 연기하는 것에 관한 답은 감독인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가호가 갖고 있는 것을 이 역에 잘 녹여내주기 바란다”라고 부탁했다. 결과적으로 하코타 유코 감독과 나의 중간이랄까, 두 사람의 요소를 다 갖춘 캐릭터가 탄생했다.

-본인의 어떤 점이 반영된 것 같나.

=스나다와 나는 완전히 다르면서도 한없이 닮았는데, 특히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않고 엇나가는 모습들이 굉장히 비슷하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스나다와 기요우라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흥미로웠다. 함께 출연한 심은경 배우와의 합은 어땠나.

=심은경 배우는 지금까지 함께 연기한 그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매력의 소유자다. 일본어로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굉장히 많은 애드리브를 하며 영화를 이끌어줬다. 그런 그녀에게 의지가 많이 됐다. 심은경 배우 없이 나 혼자 출연하는 장면은 기요우라가 없는 스나다처럼 허전하고 불안했다. 반대로 그녀가 곁에 있어주면 마음이 놓였다. 그런 심은경 배우 덕에 기요우라를 내 곁에 가까이 있어주는 존재, 이렇게 되고싶다고 동경하는 존재, 그리고 또 하나의 나라고 생각하며 몰입할 수 있었다.

-도쿄로 돌아오는 길, 스나다는 차 안에서 고향을 돌아보며 눈물 흘린다. 이 눈물에 어떤 감정을 담았나.

=뒤돌아본 고향에는 어린 시절의 스나다가 보인다. 어린 시절의 스나다는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어른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초조함을 안고 있는 인물이다. 이 신에 관해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스나다가 자신의 유년기와 결별하고, 촌스럽고 꼴사나운 나를 받아들이고 앞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다짐으로 이해했다. 때문에 현재의 나를 마침내 인정하는 순간의 벅참을 담고자 했다.

-복도와 주방에서 오빠, 엄마를 연달아 마주치는 신이 인상적이었다. 경멸하는 눈빛으로 가족을 바라보지만 결국 별다른 마찰 없이 상황이 마무리된다.

=대본을 읽을 때부터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할지 가장 어렵고 고민스러운 장면이었다. 스나다의 가족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 동시에 그런 가족에 대한 스나다의 거부감이 상징적으로 잘 드러난 장면이라 생각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치카와 <블루 아워>의 스나다는 가족에 관해 고민하고, 굉장히 복잡한 감정을 가진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의 표현방식과 상대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완전히 다르다고 느낀다. 치카의 경우 가족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상대에게 잘 맞춰주고 주변 분위기를 환히 밝혀주는 인물이다. 연기할 때도 그 점에 초점을 뒀다. 반면 스나다는 앞서 말했듯이 가족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고 그게 외적으로도 드러난다. 본인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서 주변 사람을 배려할 만한 여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였다. 혹시 기회가 닿는다면, 다음 작품에서도 스나다와 같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

사진제공 오드(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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