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의 우정, 그것도 ‘여자’ 친구들의 이야기여서 관심이 갔다”는 배우 서영희의 말처럼,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여고 동창들의 하룻밤 로드무비로 즐겨도 손색이 없다. 광주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했다는 공통점 외에는 마땅한 접점이 없던 소희(이정현), 세라(서영희), 양선(이미도)이 오랜만에 한밤의 여정에 동행한 까닭은 한마디로, 죽이고 싶은 남자들 때문. 신혼을 즐기던 소희는 바람둥이인 데다 외계 생명체이기까지 한 남편 만길(김성오)에게 생명을 위협받게 되고, 정육점 주인 세라는 고된 결혼 생활 끝에 전남편‘들’을 죽였다는 소문에 휩싸여 있으며, 무명배우 양선은 학력도 직업도 속인 애인 닥터 장(양동근)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다.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세 여자가 남편의 비밀을 알게 돼 살인을 저지르는 미국 드라마 <와이 우먼 킬>처럼,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의 세 여자도 이별보다 제거를 택한다. 그것도 ‘죽지 않는’ 남자들을 상대로 말이다. 개인 유튜브 채널 <이정현의 집밥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영화 <리미트>를 촬영 중인 배우 이정현, 최근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다룬 영화 <균> 캐스팅 소식을 알린 배우 서영희, 드라마 <18 어게인>을 찍고 있는 배우 이미도에게 그 밤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예측 못한 상황 속 세 여자
야근이 잦은 남편 만길이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닐까 의심한 소희가 처음부터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아니다. 그가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각종 자격증을 벽에 붙여둔 허름한 탐정사무소에서 외도 의혹 사건을 처리하는 닥터 장. 그에게 만길의 외도 사실을 확인한 소희는 비로소 남편을 살해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한 옛 친구 세라를 찾아가 고민을 토해낸다. 이후 소희는 닥터 장으로부터 남편이 불사의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고, 세라를 보며 남편을 자기 손으로 없앨 수 있다는 상상을 시작한 뒤 두 조력자와 함께 만길에 대한 복수를 기획한다. 그러나 뜻밖의 사건들이 발생하며 계획이 꼬인다. 이를 두고 이미도 배우는 “엉뚱한 것은 물론 예측 못할 상황이 계속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이정현 배우는 어찌 보면 평범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지만 신정원 감독이 만들면 “분명 독특한 영화가 나오리라 기대”(이정현)했다고. “충격적으로 재밌게 본”(서영희) <시실리 2km>를 필두로 그의 전작들에 대한 만족과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대였다. “감독님은 현장에서도 배우나 스탭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며 혼자 키득키득 웃으신다. 감독님에게 일상에 숨어 있는 희비극의 포인트들을 잘 찾아내는 독특한 감성이 있는데 그게 전작들에 잘 드러난 게 아닐까.”(이미도)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역시 종잡을 수 없는 미스터리로 웃음이 유발되는 상황을 연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기기묘묘한 장르 색을 선보인다. 재미를 배가하는 건 배우들의 “진실되고 심각한”(이정현)연기. “밖에서 보면 웃기지만 영화 안에서 인물들은 모든 신마다 처절하게 상황을 모면하려 애쓴다. 그래서 더 진지하게, 진심으로 다가가려고했다. 그게 오히려 황당함을 자아낼 수 있도록.”(이미도)
자연스러운 황당함을 위해 소희 역의 이정현 배우가 택한 재료는 “순수함”이다. 집 밖에서는 약사로, 집 안에서는 요리에 서툰 신부로 발랄한 생활을 이어가던 소희가 남편의 부정을 안 지 얼마 안돼 외계 생명체로서의 정체성까지 접하게 되는 이 어이없는 상황. 소희는 눈을 반짝이며 순수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여버리기 때문에 도리어 거침없이 계획을 실행한다. 무시무시한 살인 전력이 있다고 알려진 세라의 존재가 그 실행에 한몫했다. 도끼에 가까운 칼로 서걱서걱 생고기를 써는 세라의 모습에서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2010)을 연상한 관객의 기대평이 있었다고 전하자 서영희 배우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이자 열심히 살아온 여자라는 점에서 세라와 복남이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굉장히 다른 캐릭터”라고 선을 그었다. “세라는 남자에게 사랑은 못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현재 삶에 자신감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관리가 안된 것처럼 보이지만 외모를 꾸미는 걸 놓지 않았을 것 같은 이미지를 생각해서 파마를 했고, 차갑고 강해 보이기 위해 가죽 재킷을 입고 워커를 신었다.” 이미도 배우 또한 의상으로 캐릭터를 설정했는데, 양선이 가진 “에너지와 약간의 허세”를 보여주기 위해 패턴이 화려한 옷을 입었다. 한편 캐릭터가 보여주는 행동의 빈칸을 메우는 미션 또한 배우들 몫이었다. 서영희, 이미도 배우는 세라와 양선이 왜 소희와 고된 여정을 함께하는지 내내 고민했다고. 두 친구에게도 명분이 있는지 배우 스스로 설득돼야 했던 것이다. 서영희 배우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들끼리의 공감대에서, 이미도 배우는 양선과 닥터 장의 관계에서 그 답을 찾았다. 두 사람 사이에 진한 로맨스가 있었기 때문에 양선이 이를 놓지 못하고 닥터 장의 의뢰인이기도 한 친구 소희를 따라갔으리라 생각한 이미도 배우는 양선과 닥터 장 커플의 애칭까지 만들었다. 바로 양송이와 브로콜리. 양동근 배우의 헤어스타일을 안다면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는 이 애칭은 여러 대사와 소품으로 깨알같이 등장해 웃음을 자아낸다.
많이 웃을 수 있는 영화이기를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생으로 이루어진 배우들의 앙상블이 빛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또래나 후배들보다는 선배들과 영화를 찍는 일이 더 많았다는 서영희 배우에게는 특히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이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준 영화가 됐다. “다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라 무리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촬영” (이정현)한 것은 물론 이정현, 서영희, 이미도 배우는 모두 기혼으로, 만나면 남편 이야기,육아 이야기로 바빴다고 한다. “안 그래도 배우들이 실제로 유부남, 유부녀라는 포인트로 영화가 홍보되고 있어 재밌다”는 이미도 배우는 예고편에도 나온 한 장면을 꼽아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만길이 샤워를 끝내고 나와 세 여자를 맞닥뜨리는 장면이 있다. 성오 오빠가 중요 부위를 공사 처리하고 등장했는데, 당연히 아무렇지 않게 연기를 하는 게 맞지만 우리가 다른 신 촬영할 때와 다름없이 너무나 태연히 그 장면을 찍어서 오히려 우리끼리 농담을 했다. 좀 부끄러워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웃음) 다들 나이도 있고 결혼도 해서 쑥스러움도 덜하고 더 재밌는 현장이었던 것 같다.”
이들은 관객도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그 재미를 만끽하기를 원한다. “답답하고 힘든 시기에 관객이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영화가 됐으면 좋겠다.”(서영희) SF적 상상력으로 캐릭터를 제시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탓에 조금은 어렵고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이 세계 자체가 거대한 뭔가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 비밀을 모르고 살아가지 않나.”(이미도) 그 빈틈을 상상하는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현재 CG 작업을 마무리 중으로, 10월 말 관객에게 도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