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 제작 화성영화주식회사 / 감독 강대진 / 상영시간 97분 / 제작연도 1961년
1961년은 한국영화의 이정표가 된 해라고 할 수 있다. 훗날 한국영화사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성춘향>(감독 신상옥), <마부>(감독 강대진), <오발탄>(감독 유현목), <삼등과장>(감독 이봉래), <노다지>(감독 정창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감독 신상옥), <현해탄은 알고 있다>(감독 김기영), <서울의 지붕 밑>(감독 이형표) 같은 영화들이 연이어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들은 한국영화라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후시녹음을 기반으로 한 흑백영화였지만 제작환경이 허락하는 한 최고의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줬고, 오랜 모색 끝에 서구영화의 여러 요소들을 한국영화의 것으로 소화해낸 작품들이었다. 특히 그 영향의 대상은 전후 한국영화의 정신과 미학을 형성했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와 대중과 가장 효율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방법론인 고전 할리우드영화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신상옥, 김기영, 유현목 같은 50년대 초중반에 영화를 시작한 거장감독들의 초기 필모그래피에서 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세대인 김수용, 강대진 같은 감독들의 60년대 초반 작품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청년 감독이 포착한 서민 가족의 삶
강대진(1933~87)은 현장이 아닌 학교에서 영화를 배운 첫 세대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1953년에 개교한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신상옥을 시작으로 권영순,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를 거쳤다. 코미디 영화 붐을 타고 <부전자전>(1959)으로 비교적 빨리 감독 데뷔한 그는 두번째 작품인 멜로드라마 <해 떨어지기 전에>(1960)가 히트하며 상업영화 감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두 작품은 이화룡(유명한 조직폭력배였지만 선구안 좋은 영화제작자이기도 했다)의 화성영화사에서 만들었다. 바로 강대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박서방>(1960)과 <마부>다.
김영수 원작의 HLKA(KBS 제1라디오 전신) 연속방송극을 영화화한 <박서방>은 배우 김승호가 제8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마부>는 제1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을 수상하며 당시 한국영화계가 새로운 지평을 구상하는 데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수상 직후 한 일간지 지면의 인터뷰에서 강대진은, 두번째 작품이 성공한 후 코미디와 멜로드라마 같은 흥행 지향적인 영화의 의뢰가 많았지만 “우리 영화가 버텨왔던 영역, 나의 심성에 맞는 서민, 그것도 토착적 서민의 세계를 그린 작품을 고집”했다며 20대 감독다운 열정과 패기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때 그의 머릿속에는 학교에서 공부한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 같다. 이후 그는 역시 김승호를 홀아버지 역으로 맡긴 <어부들>(1961)을 연출하며 서민-가족드라마 3부작을 완성한다. 이 영화는 <마부>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는데, 제7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출품작으로 신청했지만 베를린국제영화제 때와는 반대로 <오발탄>이 가게 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사랑과 미움의 세월>(1962)을 시작으로 멜로드라마 장르에 집중하며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를 채웠다.
<박서방>과 <마부>는 짝과 같은 작품이다. 새롭게 주목받는 감독 강대진이 하고 싶은 영화를 이화룡이 밀어주는 그림이었고, 기획(박희백), 촬영(이문백), 조명(윤영선), 음악(이인권) 등 제작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출연진 역시 두 영화에서 함께했다. <마부>는 <박서방>과 같이 도시의 한서민 가족을 그리고 있지만 전작에 비해 과감하다 할 정도로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고 무엇보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의식한 미학을 보여준다. <박서방>의 경우 미장이 박 서방(김승호)과 삼남매 용범(김진규), 용순(조미령), 명순(엄앵란)의 이야기를 각각 비중 있게 다루는 편이고, 이를 위해 원작 라디오 연속극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펼쳐놓는 방식을 택하다보니 설명도 길어진다(러닝타임도 138분에 달한다). 임희재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마부> 역시 마부 춘삼(김승호)과 사남매로 구성된 서민 가족을 다루고 있지만 각 인물에 대한 이야기와 감독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것 사이의 균형이 근사하게 잡혀있다. 감독은 도시의 서민 가족이 겪는 비참한 현실과 불행, 그 사이 들꽃처럼 피어나는 소박한 일상이 근대화와 자본주의적 효율성,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 새롭게 형성된 계급구도 속에 놓인 것임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시대를 초월한 영화적 공감
영화는 교복을 입은 학생(막내 대업)이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는 장면(말 그대로 ‘자전거 도둑’)으로 시작한다. 역동적인 무빙 숏으로 촬영되어 눈길을 사로잡는 이 장면은 영화 초입 디제시스(영화적 시공간) 속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역할을 해낸다(이는 <박서방>의 도입부에서 박 서방이 물지게를 지고 마을을 관통해 언덕 위의 집으로 올라오는 장면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 영화는 초반 10여분을 할애해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환경을 짧게 스케치해간다. 부러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내려는 듯 툭툭 붙여나가는 장면들이 쌓이고 나면 우리는 이것이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세련되게 설명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마부 춘삼은 사이드카와 트럭에 밀려 점점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고 언어장애가 있는 장녀 옥례(조미령)는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도망오기 일쑤며 작은딸 옥희(엄앵란)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인생을 바꿔보려 헛심을 쓰고 그 와중에 막내 대업(김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친다. 춘삼이 집안의 기둥으로 생각하는 장남 수업(신영균)은 고등고시에 3번이나 낙방해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중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서민들에게 잔존한 전근대와 자본가의 근대가 갈등하는 모습을 마차와 자동차가 마주치는 세번의 장면들로 설명하는 것이다. 먼저 영화 초반, 마차를 끄는 마부 무리가 일당을 계산받기 위해 마주 집으로 가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부감의 롱숏으로 마차를 끄는 마부 무리를 사선으로 잡고, 그 전경에는 군용 지프차를 개조한 차량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마주를 만난 춘삼은 사이드카 때문에 자꾸 일을 빼앗긴다며 넋두리한다.
두 번째는 옥희가 사귀는 남자와 택시를 타고 가다 춘삼의 마차에 가로막혀 멈추는 장면이다. 선거 현수막이 어지럽게 붙어 있는 교차로에서 차에 부딪힐 뻔한 춘삼은 딸이 타고 있는지도 모르고 눈을 흘긴다. 마지막은 마주 집의 횡포로 마부 일을 못하게 된 춘삼이 다리를 절며 수업과 같이 말을 반납하러 가는 장면이다. 춘삼은 길에서 마주친 마부 동료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그들의 마차는 하나씩 후경으로 사라진다. 이때 가마니를 가득 실은 화물 트럭이 그들을 앞질러간다.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탁월하게 포착한 장면이다.
이 영화가 지금의 관객에게도 공감받을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포착하고 묘사해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장면은 영화 <춘향전>(감독 홍성기, 1961)의 극장 구경부터 설렁탕집으로 이어지는 춘삼과 수원댁(황정순)의 데이트 시퀀스다. 시종일관 모자 쓰기를 고집하는 춘삼의 모습, 영화를 처음부터 못 봐서 서운하다고 말하는 수원댁의 대사 등 꼼꼼한 디테일이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든다.
영화 마지막 함박눈이 오는 거리, 마차를 멈춘 수업은 고등고시 합격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확인한다. 뒤이어 도착한 춘삼이 멀리서 “수업아, 붙었냐?”라고 물어보고, 수업이 춘삼과 부둥켜 안고 눈물로 기쁨을 나누는 장면들이 줌인하는 카메라로 강조된다. 이어 새롭게 가족이 된 수원댁을 포함해 춘삼의 가족이 걸어가는 모습을 크레인 위에 올라간 카메라가 넉넉히 잡아낸다. 영화의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구도를 조금 범박하게놓고 얘기하자면, <마부>는 <박서방>보다는 영화적 미학이 돋보이고 같은 해의 <오발탄>보다는 대중적 감성이 두터운 작품이다. 이 영화가 당시 대중과 비평의 고른 지지를 받고 6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