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캐릭터 알리스는 어떤 인물인가.
=내가 맡은 알리스는 프랑스인 법의학자다. 최근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이제 막 한국에 도착한 인물로, 예기치 못하게 어두운 범죄에 얽히게 된다. 영화 자체는 장기 적출과 거래란 무거운 소재를 다룬다. 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는데, 내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조사에 나선 한국인을 돕는 역할이다. 수사와 관련됐지만 그는 본래 의사다. 알리스는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관객은 극이 진행될수록 그의 과거를 알게 된다. 그는 목숨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 위해 교육받았지만 한 생명을 구하지 못했고, 그때 살리지 못한 아이의 혼이 그녀를 따라다닌다. 피 흘리는 환자를 구하지 못했다면 의사로서 큰 죄책감을 느낄 것 같다. 내 생각에, 알리스가 생명을 살리는 의사에서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법의학자로 변신한 건 그 때문인 것 같다.
-알리스는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나.
=알리스는 처음엔 작은 정보를 주며 진호(유연석)를 돕다가 완전히 수사에 빠지게 되고 진호에게 강하게 끌린다. 알리스는 예상치 못하게 한국이란 타국에서 사랑을 찾는다.
-법의학자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 외적으로 어떤 변화를 줄 예정인가.
=오늘은 인터뷰를 위해 너무나도 내 모습이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법의학자를 표현하는 의상을 입어야 한다. (웃음) 컨퍼런스 현장에서는 법의학자로서 프로페셔널해 보이기 위해 보수적인 옷을 입어야 했다. 영화 속 몇몇 신은 의학적으로 찍어야 했는데, 외과 수술 현장과 같이 자르고 꿰매는 과정도 담겼다. 파란 의사 가운과 헤어캡, 수술 장갑을 끼고 의사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영화의 특수효과가 훌륭했는데 심장을 뛰게 만들어야 하는 수술 장면도 잘 표현됐으니 기대해달라.
-한국에서 촬영하는 프랑스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야기에 끌린 것인가, 한국 스탭들과의 협업에 끌린 것인가.
=둘 다. 첫 번째 이유는 모든 영화 현장이 그렇겠지만 좋은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나의 마음을 끄는 건 언제나 좋은 이야기다. 대본을 읽었을 때 영화 속 미스터리가 좋았고 영화 마지막에 내가 발견하게되는 사랑과 영화가 이야기하는 주제가 좋았다. 그리고 한국 스탭과 협업한다는 사실에도 끌렸다.
-한국 스탭들이 섞여 있는 <고요한 아침> 현장은 프랑스 제작 환경과 어떻게 다른가.
=한국 스탭들은 영화 현장을 잘 구성하는 것 같다. 잘 준비돼 있고 디테일에 강한데, 그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스탭들은 배우가 말하기도 전에 배우가 원하는 걸 알아차린다. 이건 유럽이나 할리우드 현장과는 다르다.
-한국에 와서 인상 깊게 본 문화와 풍경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은 의료 시스템이 매우 발전해 있는 것 같다. 유럽과는 완전히 다르다. 몸 상태가 안 좋으면 걸어서 병원에 가기만 하면 되는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던 런던과는 사뭇 다르다.
-당신은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를 유창하게 하고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도 한다. <고요한 아침>을 위해서 가장 먼저 배운 한국어는 무엇인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잘한다. <고요한 아침>에서 한국어 대사는 많지 않다. 한국어로 이름을 지칭하는 신은 있다. 알리스가 떡볶이를 먹을 때 ‘떡볶이’를 여러 번 따라 말하는 장면이 있다. 신 촬영에 앞서 떡볶이를 직접 먹어봤는데, 맵긴 했지만 마음에 들었다. (웃음)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우 유연석과는 촬영 전에 어떻게 함께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2주간 나 홀로 격리해야 해서 배우뿐만 아니라 누구와도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웃음) 친구도, 한국인 스탭도 만나지 못한 채 모두 세트에서 만나야 했다. 마침 어제는 유연석 배우가 자신이 하고 있는 뮤지컬 <베르테르>에 초대해줘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무대 위 유연석을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식사를 했다. 한국 뮤지컬을 보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었다. 노래도 연기도 모두 한국어로 이뤄졌는데, 한국이 아니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적인 경험이었다. 유연석의 연기와 감정 표현도 매우 감동적이었다. 노래도 잘하고 목소리도 좋더라.
-지난 3월 영국 런던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람들과 연결되지 못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 같다.
=처음엔 무서웠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저 죽나요?” 하고 의사에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이었다. 열이 높아 활동하기 어렵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고열로 머리가 아팠을 뿐, 다른 증상은 없었고 며칠 지나자 다 나았다. 처음엔 확진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친구가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를 두려워하고 있으니 SNS를 통해 공유하라고 했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걸 위로할 수 있고 나의 회복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질병 앞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코로나19는 더더욱 그런 병이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 바로 사람들과 단절해야 하는데, 회복할 때까지 정말 외롭고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코로나19 확진 소식을 알렸던 건, 확진되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괜찮은지 어떤지를 사람들이 궁금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여러분, 저 회복하고 있어요” 하고 말하면서 희망을 주고 싶었다. 실제로 내 소식을 본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올해만 5번째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는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배우로서 올해는 정말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딜 가지도 못하고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많은 일터가 문을 닫고 중단됐으며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걱정스러운 해다. 하지만 올해 사건으로 동시에 삶의 리듬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내 생활도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그동안 늘 바쁘게 살아왔다. 코로나19가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시간을 갖고 쉬면서 과거 내가 걸어온 삶을 돌아보게 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내가 이 삶에서 정말로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코로나19 사태가 준 긍정적인 면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영화계는 어떤가.
=오, 프랑스 영화인 중 누구도 일하지 않는다. 올해 여름에 촬영을 준비 중이었던 많은 영화들이 제작을 멈추거나 제작 준비 속도를 늦췄다. 그마저도 제작 편수가 많지 않다. 영화를 만들기 쉽지 않은 시기다.
-극장에서 본 마지막 영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 마이 갓! 심지어 기억도 안 난다. 정말 오래됐다.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격리됐던 3월 이전에 봤을 텐데… 뭘 봤더라….
-체감상 12년도 더 된 것 같지 않나?
=맞다. 정말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가장 최근에 팝콘을 먹으면서 관객과 함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본 기억이 난다. 근래에 홈시네마 시스템을 갖춘 친구의 집에서 <기생충>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