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며느라기' 박하선 - 결혼 이후의 삶과 연기
2020-11-18
글 : 남선우
사진 : 최성열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시기. 남편의 가족들에게 마냥 잘 보이고 싶은 시기. 평균 지속 기간은 2년 안팎이나 사람에 따라 10년도, 평생도 걸린다는 무시무시한 시기. 수신지 작가는 SNS에 연재한 만화 <며느라기>에 이와 같은 한때를 ‘며느라기(期)’로 명명했다. 11월부터 라디오 <박하선의 씨네타운> DJ로,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둥이맘’ 은정 역으로 활약하며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 방영을 앞둔 배우 박하선은 이제 그 시절에서 벗어나 “웃으며 할 말 다 하는” 며느리가 되었다. 자신이 주인공 민사린 같았던 때를 떠올리며 연기했다는 그는 “기혼자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드라마 <며느라기>를 소개했다.

-원작 웹툰의 팬이었다고.

=지금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에도 출연 중인데, 실제로 출산 후 산후조리원 동기들이 알려줘서 처음 보기 시작했다. 슬프고, 설레고, 공감도 가고… 너무 재밌었다. 그래서 드라마 제작 소식이 알려졌을 때 함께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했다. <며느라기>의 ‘찐팬’이었는데, 성덕이 됐다!

-난생처음 시월드에 고통받는 사린에게 공감한다는 독자들도 많았지만 사린이가 답답하다는 반응도 꽤 있었다. 원작 팬으로서 어떤 입장이었나.

=사린이가 너~무 착하다고 생각했다. 고구마 같다는 말을 들을 만했다. (웃음)

-그런 사린을 어떻게 연기하고자 했나.

=직장을 비롯해 어디서든 완벽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이상하게 시댁만 오면 작아지는, 무언가 잘못한 것 같고 부족한 것 같다고 느끼는 젊은 기혼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린이 머리를 장착하고 상황에 몰입하면 정말 그렇게 연기가 나오더라.

-‘장착’이라는 표현이 재밌다. 처음부터 원작을 그대로 구현한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나.

=처음엔 좀더 예뻐 보이게 하려고도 했는데 그림대로 하는 게 더 귀엽고 자연스럽더라. 이 머리가 되게 매력 있다고 생각했다. 파트너 권율 배우를 비롯해 현장에서 많은 분들이 이 머리를 놀리면서 친해졌다.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사린이 머리를 하고 출연한 것도 화제가 됐다.

=<며느라기>를 모르는 분들은 머리를 보고 많이 놀란 것 같다. 나름 ‘만찢녀’다. (웃음)

-드라마 촬영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드라마에는 사린과 구영의 연애 시절 장면들이 많이 추가됐다. 사랑에 빠지는 찬란한 순간들이 잘 표현돼서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더 속상했다. 이렇게 좋았던 둘이 시월드를 겪으면서 서로에게 실망하고 싸우게 되다니 슬프지 않나. 이틀을 연달아 찍은 추석 명절 신도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 우리 집은 제사를 안 지내는데, 하루 종일 전을 부치면서 이게 진짜 힘든 일이라는 걸 느꼈다.

-<며느라기> <산후조리원> 모두, 그런 식으로 배우의 실제 경험을 계속해서 꺼내보게 하는 작업이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일련의 경험들이 있으니 이야기에 좀더 공감할 수 있었다. 미혼일 때 대본을 봤으면 이렇게까지 끌리지 않았을 거다. <며느라기>도 ‘실제로 다 해본 일이니 연기도 잘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촬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나는 이미 ‘며느라기(期)’를 벗어 났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웃으면서 할 말 다 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말 그대로 ‘연기’를 해야 했던 거다. ‘이제는 방법을 아는데 저때는 몰랐지’, ‘나도 저런 시기가 있었지’ 하고 많이 생각했다.

-지난해에 드라마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에서 금기된 사랑에 빠진 인물 지은 역으로 2년 만에 복귀한 이후 산후 우울증을 다룬 영화 <첫 번째 아이>를 찍었고, 드라마 <산후조리원>과 <며느라기>를 차례로 소화했다. 근래 박하선 배우의 행보는 30대 한국 기혼 여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모두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로 뿌리내린 여자가 아니라 그 위치에 대해 온몸으로 고민하고 적극적인 선택을 내리는 캐릭터다.

=알아주셔서 감사하다. 결혼과 출산 연령대가 점점 늦어지고 비혼을 택하는 경우도 많은 시대인데,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미리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그런 부분을 연기로 표현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때로는 배우로서 나이 들어가는 게 아까울 때가 있는데, 지금이 내 인생의 피크라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활동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너무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생각도 한다. 결혼 이후의 이야기들, 다양한 연령대의 이야기들이 많이 다뤄지고 있어 감사하다.

-그 밖에도 욕심나는 캐릭터가 있나.

=한번쯤 반삭 머리로 액션을 해보고 싶다. <소년시절의 너>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삭발을 하고 나오는데,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남고 애들을 보면서 반삭 머리를 해보고 싶었다. 당시엔 내가 그걸 하면 반항이 되지 않나! 그래서 한이 생겼다. (웃음) 작품으로라도 일상에서 못해본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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