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의 한 장면. 시댁에서 아내 사린(박하선)이 사과를 깎을 때 구영은 아버지, 작은 아버지와 함께 담소 나누기 바쁘다. 아내 옆에 가서 함께 과일을 깎거나, 자신이 직접 칼을들 만한 센스가 안타깝게도 그에겐 아직 없다. 무구영을 연기한 권율은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며느라기>를 보고 나서 구영에게 ‘남편이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야’라고 핀잔을 주면 성공한 작업”이라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보이스3> <해치> 등 최근 장르 시리즈에서 특화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그에게 이번 시리즈는 “가장 일상적인 면모를 드러낸 작업”이었다고 한다.
-원작 웹툰을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구영은 눈치가 없지 않나. 언젠가 결혼하면 아내와 어머니의 관계에서 구영보다는 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눈치가 없지만 악의 또한 없는 것이 구영의 특성이다.
=여러 상황에서 센스가 부족해 답답한 면모가 있는데 그렇다고 악의나 편협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진 않았다. 결혼 생활, 고부 관계가 그에게 새로운 상황이다보니 다소 미숙하다. 그러다 보니 그의 진심이 아내에게 잘 전달되기 위한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며느라기>는 신혼부부가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을 가진 채 일상에서 쌓였던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성숙한 대화 방법을 찾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가정환경도, 생각도 각기 다른 까닭에 부부 중에서 누가 옳고 그르고를 얘기할 수 없다.
-신혼부부의 일상을 다룬 작품에 출연해야겠다고 판단한 이유는 뭔가.
=젠더 이슈를 가진 작품이지만 그 시각만으로 시나리오를 본 건 아니다. 보편적으로 봤을 때 이야기가 매우 현실적이고, 막힘 없이 술술 전개돼 재미있었다. 더불어 보통 남자를 연기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최근 장르영화나 드라마에서 특별한 직업이나 신분을 가진 인물을 주로 연기했던 까닭에 구영처럼 평범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다.
-일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게 관건이었겠다.
=아주 세세한 리액션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극적이거나 연기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연기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발성, 동선, 리액션을 일상처럼 편하게 하려고 했다. 설령 뒷모습이 나오더라도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움직였다.
-구영과 사린이 연애하는 20대 시절도 등장하는데.
=대학 신입생 엠티를 갔던 스무살 때부터 결혼한 현재까지 10년에 걸친 세월을 담아내는 이야기라 20대 특유의 풋풋함을 잘 살리는 게 중요했다. 그 시절의 설렘을 찾는 게 쉽지 않았는데 영화 <라붐>의 O.S.T인 <Reality>를 들으며 감정을 잡았다. 또 더벅머리 헤어스타일을 조금씩 잘라가면서 직장인이 되어가는 과정과 시간의 흐름을 묘사했다.
-<며느라기>를 작업한 경험이 나중에 실제로 결혼을 하게 된다면 도움이 될 수 있겠다.(웃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남편들이 아내가 시댁에서 겪는 일에 대해 무언가 잘못됐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중에 집에 가서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 무언가를 해주면 되지’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런 다짐들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이번 작품을 통해 알게 됐다. 남자들은 ‘(아내가) 힘들다고 (내게) 얘기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세심한 소통이 필요한 것 같다.
-영화든 드라마든 연기에 집중하는 스타일인 걸로 알고 있다. 최근 유튜브 방송 <두율라이크>를 시작한 건 다소 의외다.
=배우로서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할 때마다 최대한 작품에 집중하려고 한다. SNS 소통이 활발한 시대인데 그동안 나를 잘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늘 있었다.
-<서칭 포 슈가맨>의 컨셉으로 정재권, 김병지 등 왕년의 축구 선수들을 찾아가는 내용이 재미있더라.
=내게 스포츠는 일상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미국 프로 농구를 본 뒤 밖에 나가 농구하고, 주말 밤마다 유럽 축구를 챙겨보고. 이런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팬들과 소통하면 어떨까 싶어 시작하게 됐다. 스포츠 팬으로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시도하고 있어 사심 방송이나 다름없다. (웃음)
-차기작인 영화 <경관의 피>(감독 이규만)는 촬영이 다 끝났나.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 드라마 <보이스3>에서 맡았던 악역 방제수와는 또 다른 악역이다.
-되돌아보면 <며느라기>는 어떤 작업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나.
=구영은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지만 그를 통해 나의 20, 30대 모습을 기록해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앨범 같은 작업을 한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나.
=결혼한 또래들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나는 무구영보다 낫겠지’라고, 여자들은 ‘내 남편이 무구영만 되어도 원이 없겠다’고 생각할 것 같다. 드라마가 공개되면 남성과 여성, 양쪽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