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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몬스터' 봉준영 감독 - 인간의 억눌린 이면을 표현하고 싶었다
2020-12-03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막다른 길에 몰려 환청까지 듣는 남자가 로또에 당첨되면 삶이 달라질까. <럭키 몬스터>는 위장이혼 후 집을 나간 아내를 찾는 남자의 걸음을 따라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B급 누아르의 정서 위에 블랙코미디, 그로테스크한 액션, 복잡다단한 심리극, 심지어 슈퍼히어로영화까지 여러 색깔이 녹아 있다.

봉준영 감독은 첫 장편영화에서 개성을 뽐내며 유일무이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매끈한 장르로 포장된 불쾌한 현실의 단면들. 색깔이 강한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봉준영 감독의 답변은 명쾌하다. “복잡한 걸 단순하게 바꾸고 싶지 않다. 복잡한 건 복잡한 대로 두어야 한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의 내면을 따라가는 과정이 불편할 수 있지만 그런 감정을 일부러 파내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내가 사랑해온 영화들이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던지고 돌아올 다양한 반응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데뷔작을 앞둔 신인감독이라기보다는 선물 포장을 뜯기 직전 설레는 아이 같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대학에서 중국어와 심리학을 전공 후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생계 등 현실적인 이유로 영화 연출을 주저했지만 결국엔 창작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고 뒤늦게나마 결심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여러 번 낙방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감사하게도 내 영화를 들고 여기까지 왔다. 지난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TH상을 수상했을 때도 무척 기뻤는데 이제 정식 개봉을 앞두고 다양한 관객층을 만날 수 있다는게 즐겁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라 부산국제영화제 때도 관객 반응이 다이내믹했던 게 기억난다.

-환청을 듣는 남자라는 소재는 익숙하지만 그걸 풀어가는 방식이 독특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재학 시 만든 단편영화 <헤르츠>(2016)에서 환청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적 있다.

=맞다. 하지만 <럭키 몬스터>의 출발이 <헤르츠>는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헤르츠>와 <럭키 몬스터>는 시와 소설 정도의 간극이 있다. <헤르츠>는 두 남녀가 같은 환청을 들으면서 소리의 정체를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적은 예산으로 찍어야 해서 사운드와 환청이란 방식을 적극 활용했었다. <럭키 몬스터>는 사운드보다는 파편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을 찍어보고 싶었다고 할까.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해서 찾아본 적이 있는데, 충격이었다. 감정이 요동쳐 그림 자체가 움직이는 기분이랄까. 얼굴이 짓이겨진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억눌린 이면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딱 한장의 이미지를 설명한다면 ‘남색 가면을 쓴 사람이 차창을 내리고 담배를 뿜는데, 일그러진 가면의 작은 구멍을 비집고 연기가 새어나오는 모습’을 찍고 싶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런 파편적인 이미지를 모아서 이야기를 짜나갔다고 할 수 있다.

-<럭키 몬스터>는 ‘장르색이 강한 영화’라는 평만큼이나 매우 다채로운 장르가 뒤섞여 있다. 감독이 생각하는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하드보일드 누아르라고 생각한다. B급 영화의 맥락 위에 있지만 그 밑에는 싸늘한 정서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님의 <복수는 나의 것>, 코언 형제의 영화들, 존 부어먼 감독의 <포인트 블랭크>처럼 하드보일드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럭키 몬스터>의 초중반 유머가 상당해서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도 있고, 이야기 구조로 보면 전형적인 납치극이다. 개인적으로는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오프닝에서 도맹수(김도윤)가 방방(트램펄린)을 타면서 인상적인 대사를 한다. “내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는 막걸리, 그리고 이것(방방). 날아오른다. 히어로처럼.”

=도맹수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아내를 구하려는 슈퍼히어로영화다. 로또가 당첨되어 돈이라는 슈퍼파워를 얻은 남자가 아내를 구하려는 이야기. 그런데 알고 보면 구출 대상인 아내가 최종 빌런이었을 때, 부서지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도맹수는 열등감과 집착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고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아내를 이용한다고 볼수도 있다. 그래서 아내를 넘어서고 아내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지켜야 할 목표를 공격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게 도맹수로 상징되는 비틀린 세상, 망가진 인격이 잠재된 폭력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창작자로서의 나는 그런 자기 안의 폭력성과 본성을 다룬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다.

-하드보일드 누아르라곤 하지만 초중반엔 유머 코드가 상당하다. 그러다 후반에 억눌린 본성이 기묘하게 뒤틀린 채 표출되면서 영화의 톤이 완전 달라진다.

=처음 구상했을 땐 좀더 장르적인 영화였다. 납치에 재납치, 등장인물도 사건도 좀더 많았다. 현실적으로 규모를 맞추면서 인물의 심리쪽으로 집중하며 이야기를 좁혀나갔다. 물론 그게 내가 더 바랐던 방향이기도 했다. 유머는 이야기에 안착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초중반에 인물에 호감을 느끼다가 후반부에 튕겨져 나갈 때의 쾌감 같은 것. 처음에는 동정심을 가지고 있던 관객도 나중에 불편해지는 상황이 오는데, 그런 인물을 접했을 때 엉거주춤한 상태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도맹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유아적인, 동시에 복잡다단한 캐릭터다. 쉽지 않은 역할인데 김도윤 배우가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소화했다.

=주인공의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 빨리 확정을 짓고 싶어서 부지런히 찾았다. 그러다 <곡성>(2016)을 봤는데 한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가 있었다. 물론 워낙 좋아하는 영화이고 연기로는 더할 나위 없는 영화지만 김도윤 배우가 가진 캐릭터가 한눈에 들어왔다. 소심한 가운데 날카롭고, 사실적이면서도 신선함이 있다. 게다가 <7호실>(2017)에서 보여주는 폭발력이라니! 바로 제안을 했는데 흔쾌히 응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도맹수의 디테일이 인물에 부피를 더해준다.

=도윤이 형이 매우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회의 때도 매번 와서 아이디어를 내고. 술도 막걸리로 설정돼 있었는데 도윤이 형이 제일 좋아하는 술이 또 막걸리라고 했다. 원래 도맹수를 훨씬 무미건조한 톤으로 그렸는데 도윤이 형이 그 옷을 입고 다이내믹하게 살려주었다. ‘인물이 광기로 치달아갈 때의 속도감이 저런 거구나’ 싶어 거꾸로 배운 느낌이었다.

-환청이 들릴 때 먹는 용각산, 토끼 인형 등 직관적인 상징물이 많다.

=낭비를 싫어한다. 작은 소품이라도 무의미하게 쓰고 싶지 않았다. 영화는 현실을 고스란히 옮기는 게 아니라 일종의 무대니까 이야기 구조적으로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자본에 쥐어짜이는 인물이 파는 녹즙기처럼. 가령 <럭키 몬스터>의 세계관은 ‘동물의 왕국’이다. 초반에 방방을 타는 장면도 초식동물이 초원에서 뛰어노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방방장이 녹색이라는 점이 매우 중요했다. 어떻게 보면 영화는 일종의 도피다. 다만 도피함으로써 거꾸로 현실 속에서 살아 있다는 걸 자각한다.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는 느끼지 못할 이상한 감정을 느끼길 원한다. 그래서 장르적으로 미스터리물이나 공포에 더 끌리나 보다. 차기작도 그런 방향으로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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