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겨울밤, 한칸의 방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 영화 '겨울밤에' 리뷰
2020-12-14
글 : 남선우
장우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겨울밤에> 남선우 기자의 리뷰와 장우진 감독 인터뷰

차갑고 어두울지라도 아련하다. 아니, 차갑고 어둡기 때문에 애타는 감정이 더욱 또렷하게 빛난다. 장우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겨울밤에>는 이 계절, 이 시간의 힘을 스크린에 이식한 다음 그 위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떠난 여행기를 써내려간 결과물과 같다. 주인공은 결혼한 지 30년이 되어가는 중년 부부 은주(서영화)와 흥주(양흥주). 은주가 휴대폰을 잃어버리면서, 춘천 청평사를 찾았던 그들은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전 좋아했던 사람(김선영)과 재회하고, 스님(박명훈)을 만나 대화하고, 꼭 청년 시절의 본인들 같은 젊은 커플(우지현, 이상희)과도 인사한다. 부부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보려 한다. 분실과 상실의 기로에서, 서로 다른 모양의 자취를 남긴 이들이 영화에 남긴 흔적을 들여다보았다. 장우진 감독과의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여행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흔히 이들이 함께 여행하면 목적지를 상기하며 걷는 사람이 걸음의 주도권을 갖기 마련이다. 이동의 목적이 휴식이든 관광이든, 계획을 가진 사람이 계획이 없는 사람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걸음의 주도권을 가진 이가 관계에서도 우위를 점한다고 볼 수 있을까. 도달하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움직이는 사람은 마음이 급하다. 때로 길을 잃을까봐, 차를 놓칠까봐, 그러다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까봐 종종거린다. 영문을 모른 채 두리번거리는 일행은 그의 속을 더 태울 뿐이다. 상대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사람은 애가 탄다.

<겨울밤에> 속 은주와 흥주의 동행도 비슷한 꼴을 하고 있다. 해질녘에서야 휴대폰을 잃은 사실을 깨달은 은주에겐 가야 할 곳들이 분명하다. 오후에 찾은 식당, 보트, 청평사까지. 그에겐 떠나온 곳을 다시 방문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반면 흥주에게는 은주의 사정이 미약한 효력을 가진다. 적어도 그는 은주와 달리 자신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없다고, 그러니까 자신은 잃어버린 것이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흥주는 은주를 재촉하고 내일을 기약하려 한다. 흥주의 착각은 기어이 청평사 초입을 나선 두 사람을 엇갈리게 만든다.

첫 번째 엇갈림은 부부가 30년 전에 왔었던 식당 겸 민박집 앞에서 싱겁게 끝난다. 언젠가 너와 여기에 왔었던 것만 같다는, 사실이어도 간지럽고 사실이 아니어도 민망한 대화를 나누며 어색한 공기를 풀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런 그들 뒤로 연인 사이가 아니라 주장하는 군인 남자(우지현)와 학생 여자(이상희)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들이 부부의 눈에 띄지 않고 식탁과 안방에서 다정히 조잘거리는 동안, 부부는 각자의 여행을 시작하며 젊은 남녀의 메아리를 듣는다.

여기서부터 <겨울밤에>는 장우진 감독의 전작 <춘천, 춘천>의 공간적 배경과 더불어 복수의 서사적 층위를 쌓아 영화의 구조를 만드는 설계법까지도 계승한다. 영화가 가진 육체와 정신을 교묘하게 뒤섞으며 인물의 심연 속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것이다. <춘천, 춘천>은 서울 상경을 바라는 춘천 청년과 춘천으로의 도피를 꿈꾼 서울의 불륜 커플을 따로 또 같이 영화에 불러들여 그 오묘한 중첩을 들여다봤다. 반면 <겨울밤에>는 부부에게 닥친 현실을 영화의 외피 삼아 처음과 끝에 배치하고, 남편과 아내가 각자 꾸는 꿈을 중반부에 삽입함으로써 이들의 진심이 오도 가도 못한 채 깊은 어둠을 견디고 있다고 속삭인다.

먼저 펼쳐지는 흥주의 밤에는 난데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환영들이 많다. 무의식중에 벗은 장갑을 두고 길을 떠난 줄도 모르는 흥주에게 해란(김선영)이 불쑥 튀어나온다. 흐린 기억 속의 옛사랑은 고함을 지르며 흥주를 피하다가도 괜한 말들로 흥주의 볼을 붉어지게 한다. 하지만 해란은 경찰의 등장과 함께 간데없이 지워진다. 해란과 헤어진 흥주는 뜬금없이 젊은 여자를 보지만 오히려 그 창에 비친 자기의 얼굴만 선명히 마주하게 된다. 반면 은주의 여정은 보다 차분하다.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밤길을 헤매는 은주가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 스님도, 젊은 여자와 남자도 마찬가지다. 은주는 그런 그들에게 눌러왔던 이야기를 꺼내고 정중히 감사를 표한다. 부부의 다른 여행. 다른 경험. 너무나 다른 두개의 밤은 상실의 예감을 해석하는 다른 능력으로부터 왔다.

이들의 다름은 감정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두개의 여행 스타일처럼 아프다. 판이한 시간을 통과한 두 사람에게 찾아온 새벽. 열풍기 앞에서 인공의 따스함을 쬔 그들은 옆방에서 즐거이 수다떠는 젊은 남녀를 남겨두고 숙소를 나온다. 얼어붙은 폭포에서, 아늑한 찻집에서, 부부는 각자 이 청년들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 있는 민박에서만큼은 그 옆방 문이 열리지 않는다. 네명은 같이 있어도 공존할 수 없다. 그렇게 은주와 흥주는 서로가 왜 어긋났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끝난대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겨울밤에>는 이들이 방황을 공유한 공간을 관객 앞에 주마등처럼 펼쳐 보이며 이 오래된 커플에게 남은 일말의 기회를 가늠해보게 한다. 분실과 상실의 기로에 선 은주와 흥주에게, 남은 밤들은 좀더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이들이 맞을 봄의 온도는 어떠할까. 그 대답이 관객에게 남겨졌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