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100년 역사 다룬 다큐멘터리 '족벌 두 신문 이야기'
2021-01-15
글 : 조현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한국 언론의 생태계를 추적하다

광화문 한복판에 우뚝 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건물. 언론사 사옥이 도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을 만큼 두 언론사의 역사는 오래됐고 영향력도 막강하다. 이 두 언론사의 화려한 외관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시작해 정경계로 영역을 넓혀 미디어 재벌로 거듭난 두 신문사의 기원을 파고드는 영화가 개봉했다.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일등신문’, ‘민족정론지’를 자칭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100년 역사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자백> <공범자들> <김복동> <월성> 등 다큐멘터리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온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다. 방대한 양의 신문 기사, 영상과 당시 기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영화는 두 신문의 과거와 현재를 세세하게 파헤친다.

“언론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권력이 될 수 있습니다. 언론은 날이 잘 드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그게 정의를 위해 쓰일 때에는 역사를 진전케 할 수도 있지만 잘못 쓰이면, 권력에 결탁하면, 그 폐해는 엄청날 수 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 뒤로 여전히 건재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이 이어진다. 한 대통령은 언론 개혁을 외쳤고, 다른 한 대통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론을 이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나. 기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1970~80년대 언론 자유를 외치던 기자들은 해직됐고, 독재 언론을 찬양한 기자들은 높은 자리에 올랐다. 해직 기자들과 전 대통령이 언론 자유와 개혁을 외친 시점부터 현재까지, 과연 무엇이 변화했을까.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더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 변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밀어내왔다. 영화는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다큐멘터리지만 영화의 주연배우는 확실하다. 바로 1988년 국회 청문회에 참석한 방우영 전 <조선일보> 사장과 김상만 전 <동아일보> 명예 회장이다. 특히 방우영 전 <조선일보> 사장은 한껏 억울한 표정으로 청문회에서 자신들은 ‘왜놈의 앞잡이’가 아님을 밝힌다. 방우영 전 사장이 이토록 ‘친일’이라는 말에 단호하게 선을 그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방우영 전 사장의 발언에 의문을 품고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본이라는 권력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앞잡이’, ‘밤의 대통령’, ‘악의 축’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소제목에서 드러나듯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오랜 시간 권력의 편에 서왔다. 일제강점기부터 살펴보자.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일왕 부부의 사진을 걸고 그들을 찬양하고, 지역별로 경쟁을 붙이듯 육군 지원병 제도의 지원자가 속출한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장병들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소설 같은 미담 기사도 적잖았다. 독재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고 독재 권력을 지지하는 기사가 신문 지면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오늘날, 당시 찬양 기사를 쓴 기자들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뉴스타파> 기자들의 전화를 매몰차게 끊는다. “모독과 매독”이라며 친일 행위란 말에 발끈하던 방우영 전 사장의 모습과 겹친다.

한때 변화의 불씨도 타올랐다.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이 외부간섭을 거부한다는 ‘언론자유실천선언’을 발표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기사의 방향성이 달라지는 듯했지만, 1974년 12월 광고 탄압으로 다시 주춤한다. 시민들이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빈 광고란을 채워주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해직 기자들은 ‘그 순간,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변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내뱉는다.

그리고 오늘날, 두 신문사가 주목하는 권력은 자본이다. 광고주가 원하는 기사를 생산하고, 언론과 관계없는 다양한 계열사를 파생시켜 몇십배의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영화는 언론이 돈벌이에 몰두할 때 반사회적 흉기가 될 수 있으며 이미 일부 사건의 촉매제가 됐음을 경고한다. 영화 후반부, 두 신문사의 창간 100주년을 맞아 해직 기자들이 시위를 벌인다. 그 뒤로 보이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건물은 영화 초반보다 더 거대하게 느껴진다. 대사 한마디 없이 이어지는 해직 기자들의 묵묵한 시위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두 신문사를 중심으로 한국 언론의 지형을 파악하고 묻힌 사건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라는 거대한 스피커가 의도적으로 배제한 목소리와 증거들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부 자료는 교과서에서도 확인하기 어려운 자료들이다. 김용진 감독은 2020년 1월 1일, 100년 역사의 성과만을 외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신년호를 보고 <족벌 두 신문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후, 2021년 1월 1일 개봉한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말한다. 당신들이 외면해온 문제들은 바로 이것이라고. 몇십년째 외쳐왔던 언론 개혁을 이제는 정말로 시작해야 할 때라고.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민족지 논쟁

1985년에 벌어진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민족지 논쟁은 세간의 화제였다. 1980년대, 부동의 1위였던 <동아일보>는 자신의 자리를 <조선일보>에 내준다. “신군부와의 결탁”으로 <조선일보>의 힘이 막강해졌기 때문이다. 1985년 4월 1일, <동아일보>는 ‘65주년 특집호’에서 “자신은 민족지, 조선은 친일기회주의 신문”이라며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이에 <조선일보>는 “논쟁이 격화되면 궁극적으로 인촌(김성수) 선생까지 욕보이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지 않느냐”며 반격 기사를 냈다.

이후 <조선일보>는 ‘<동아일보> 초대 사장 박영효의 친일 논란’을 제기하고, 이후 <동아일보>가 한발 물러서며 논쟁은 일단락됐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1937년, 히로히토 일왕 부부의 사진을 1면에 먼저 게재한 신문은 어디일까.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일왕 부부를 칭송하고, 제호 위에 일장기까지 실은 신문은 어디일까. <족벌 두 신문 이야기>를 통해 확인해보자.

사진제공 엣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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