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화제의 팟캐스트 '씨네마운틴'의 장항준 감독, 송은이 컨텐츠랩 비보 대표를 만나다①>에서 이어집니다.
“어떤 분들은 왜 이렇게 영화랑 관련 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느냐고 하는데, 영화랑 관련된 거 보고 싶으면 <씨네21>을 읽으세요!” (<씨네마운틴>스페셜 2편 중 장항준 감독) 팟캐스트 방송 <씨네마운틴>은 제목 그대로 영화라는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 토크를 시작하지만 계속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대부>의 원작 소설 작가 마리오 푸조가 태어난 1920년부터 시작하다가 용훈이의 셋째 형 용필이 형이라든지 차승재, 장원석, 강우석 등 충무로 영화인들에 대한 ‘썰’로 이야기가 급회전한다. 최근 <박하사탕> 회차를 녹음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모인 장항준 감독과 송은이 대표를 만났다. <씨네마운틴>처럼 가끔 샛길로 새기는 했지만, 끊임없이 웃음이 터지는 수다 속에 잔잔한 감동이 있던 시간을 전한다.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모두가 즐거운 방송을
-예전에 장항준 감독과 인터뷰할 때 그런 말을 들었다. 사람이 존중받으면서 즐겁게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악에 받쳐서 애를 물에 빠뜨리고 울리면서 찍거나 배우들의 메소드 연기 같은 걸 안 좋아해서 거장이 되기엔 글렀다고. (웃음) 그런데 컨텐츠랩 비보가 지향하는 지점과도 겹치는 것 같다.
송은이 우리는 특히 예능이니까 현장이 즐거워야 한다. 디지털 콘텐츠는 포커스가 나간 분량은 오디오만 쓰면 된다든지 하기 때문에 TV 예능처럼 이런저런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부분도 있다. 방송을 만들면서 출연자만 즐거운 게 아니라 스탭까지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 이 방송이 잘되면 나도 즐거운 일이 생기겠다는 목표를 함께 갖고 가야 한다.
장항준 우리 둘 다 돈 욕심이 크게 없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자본에 얼마나 집착하느냐가 절대적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 같다. 근데 어느 정도 비슷한 스탠스를 갖고 있으니까 우리는 같은 이데올로기를 가진 셈이다.
송은이 오빠도 잘돼서 돈을 더 많이 받으면 스탭들하고 나누잖아.
장항준 그런 걸 내 입으로 얘기할 때 너무 수치스러워~.
송은이 그래서 이번엔 내가 했어. (웃음) 그래야 이 토크의 한 세트가 완성되거든
-두분이 각자의 영역에서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를 지키면서 크게 성공하는 모습까지 보고 싶다. 뭐랄까…. 좀 짜릿할 거 같다.
송은이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완전 성공하기는 힘들지 않나.
장항준 인생은 모르지. 어쩌면 미래의 송은이는… 문화부 장관 송은이. (일동 환호하며 박수)
송은이 너무 싫다. 끔찍하다.
장항준 너는 청문회 가면 탈탈 다 털려. 웬만한 놈들 거기 들어가면 다 박살나.
송은이 안돼. 난 롤렉스 시계 사고 싶단 말이야~.
장항준 은이가 이런 거 되게 싫어한다. 사실은 젊은 여성들의 워너비처럼 보인다거나 하는 걸 싫어해서 원래 인터뷰도 잘 안 한다.
송은이 각자 자기 인생 재밌게 살아야지 누굴 보고 따라 하나. 자꾸 그렇게 만들어주니까 너무 부담된다. 난 그런 모습을 지향한 적이 없다. 나이 들수록 가벼워지고 싶다. 다만 내 나이에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정도? 사실 김혜리 기자님이 저번 인터뷰 기사를 잘 써주셔서 그것도 너무 부담됐다.
-사실 두분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그 대척점에 있는 이들을 비판할 때 상대적으로 더 돋보일 수 있다. 더군다나 비보티비의 여러 콘텐츠는 남성 중심의 TV 예능의 한계에 대비되는 다양성 면에서 호평받기도 하지 않았나. 그런데 평소 두분 방송을 보면서 느낀 건 무언가를 비난하며 자신을 추켜세우는 타입은 아니라는 거다.
장항준 원래 은이는 술자리에서도 누구 욕은 안 하는 타입이긴 한데.
송은이 오빠 앞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던 거다. 나도 사람인데 화가 나면 누군가를 심하게 욕할 때도 있다. 우리가 가진 색깔을 더 사랑받기 위해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내가 잘되니까 “왜 여자 개그맨들하고만 일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친하니까 하는 거다. 친하니까 지금 항준이 오빠랑도 하는 거고. 나랑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내 주변에 있고 가장 얘기를 많이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또 뭔가를 같이해보면 재밌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거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고정 방송이 없는 다른 후배들과 성별을 떠나 함께일하고 싶다. 아직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가질 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먼저 앞서서 조금씩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했던 분들 덕분에 우리 역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맞다. 소신을 갖고 얘기할 수 있는 순간에는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 같았으면 남자가 돼 부인이 더 잘나가서 어떡하느냐는 말을 들었을 수도 있는데, 시대가 바뀌어서 장항준 감독이 ‘김은희 작가의 남편’이라고 소개하는 모습이 자격지심 없고 자존감 높아 보인다는 반응을 얻을 수 있는거 아닐까.
장항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변화가 필요하기에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다. 급진적이든 아니든, 방향이 저쪽이 맞다는 건 우리가 알고 있지 않나. 어느 정도 속도로 갈 것이냐의 문제지. 그런데 한쪽에서 급진주의자가 쭉 당겨줘야 어느 정도 위치를 잡아갈 수 있다. 반대편에 반동 세력이 있으니까. 그래서 다 필요하다. 우리 집안이 굉장히 가부장적이었는데 어렸을 땐 그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그분들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며 속으로 통쾌함을 느꼈다. 옛날부터 권위적인 세대에 저항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송은이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사회가 바로 가정이다. 난 선입견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아빠 밑에서 자랐고, 여자가 밖에 나가서 뭐 그런일을 하냐며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한 적도 없었다. 아빠가 카센터 일을 하셨는데 내가 궁금해하면 직접 가르쳐주기도 하고 여자는 이런 데 오는게 아니라는 말은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가정환경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다 영향을 미친 거다.
장항준 인생에서 가장 큰 운은 좋은 가족을 만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말 어려운 운은 좋은 아빠를 만나는 거고. 우리가 방송에서 소개하는 영화감독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버지가 폭력적이었다거나 엄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잖나. 그런데 삼촌이나 할머니나 어머니 덕분에 어떤 영향을 받았다는 식의 스토리가 있지.
-그래서 <씨네마운틴>이 감독이 태어난 해부터 토크를 시작하는 거라는 당위가 생긴다. (웃음) 지금까지 두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자연스럽게 미래로 화제를 옮겨보자.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나. 비보티비의 다음 라인업이 궁금하고, 장항준 감독님은 빨리 연출작으로 만나고 싶은데.
장항준 나야말로 그렇다. (웃음)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투자배급사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원래 준비하던 예산이 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은 스톱됐다. 대신 다른 배우가 역제안한 시나리오의 연출을 제안받았다. 이 배우가 하면 무조건 투자가 되거든. 난 말이야, 시나리오를 보기 전부터 벌써 재밌었어! (일동 폭소) 지금은 그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는 중이다.
송은이 오빠는 전천후라서 좋은 것 같아. 예산이 커도 좋고, 작아도 좋고.
장항준 난 예산이 큰 게 별로야. 그러면 신경 쓸 게 많아서 싫어.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이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는 진짜 잘써야 하고, 상업적인 메리트도 없지 않나. 그런데 나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만들 법한 걸 하기보다는 내가 잘하는 걸 하고 싶다. 돈은 와이프한테 달라고 하면 된다. (웃음)
송은이 콘텐츠 내용 면에서는 원래 우리 색깔을 낼 수 있는 것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규모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빠 말대로 약간 봉급 받는 동아리 같은 느낌이 있다. 좀더 회사다운 모습을 갖추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 앞으로 3년을 더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부 조직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있다.
장항준 사옥도 좀 큰 데로 가자. 건물은 작아도 되는데 주차장이 큰 곳으로. 주차하기가 너무 불편해.
송은이 그럼 주차장을 살까? (웃음)
장항준 주차장을 사서 텐트를 몇개 치면 되겠다. (웃음)
<씨네마운틴>은?
팟캐스트 방송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을 시작으로 <북유럽> <밥블레스유>등을 제작한 컨텐츠랩 비보가 만드는 영화 토크쇼. 2020년 8월 17일 론칭 이후 빠르게 입소문을 타 2020년 12월 아이튠즈 팟캐스트 전체 1위, 코미디 카테고리 1위를 차지했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새 에피소드가 업데이트되며, 팟빵과 팟캐스트는 물론 유튜브에서 편집본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다.
<씨네마운틴> 베스트 에피소드3
① 7회 <살인의 추억>편 2부 24분50초부터 31분까지
“준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라!” 장항준 감독의 운전면허 시험장까지 따라갈 정도로 아들을 사랑하고 언제나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아버지가 대입 시험 아침 우렁차게 외쳤던 말. 커닝도 하라는 의미다.
② 8회 <델마와 루이스>편 44분58초부터 51분15초까지
듣다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김은숙 작가의 성공기. 판잣집에서 어렵게 살던 시절 “반드시 성공해서 동생들을 진짜 잘살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는 에피소드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들이 모두 백마 탄 왕자로 그려지는 이유를 알 수 있다.
③ 15회 <박하사탕>편 2부 58분30초부터 1시간6분10초까지
하나님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해결하는 군산 삼촌 이야기. <박하사탕>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우 문소리를 위해 고모가 아는 목사님의 동생이 촬영장에 나타나 단숨에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장항준, 송은이가 뽑은 인생 영화
장항준 감독 <정복자 펠레>. 얼어붙은 바다를 종종걸음으로 건너가는 어린 펠레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익스트림 롱숏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송은이 대표 <사운드 오브 뮤직>. 음악 때문에 30번은 봤다. 실제로 모든 O.S.T를 외우고 있다. 처음으로 종합예술의 맛에 푹 젖어들게 된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