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페어웰' 룰루 왕 감독 - 언젠가는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해야 하니까
2021-02-02
글 : 조현나
룰루 왕 감독(왼쪽). ⒸA24

-첫 번째 장편 <러브 인 베를린>을 작업하는 도중 할머니의 시한부 소식을 접했고 <러브 인 베를린>을 완성하기도 전에 그 사건을 주제로 두 번째 장편을 기획했다던데.

=미국에서 이런 종류의 영화가 펀딩받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페어웰>이 두번째 장편이 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유머와 파토스가 뒤섞여 있는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실제 삶에서 이 문제로 갈등이 많았는데 각본을 쓰면서 내가 마주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빌리 친척들의 출신지가 다양하기 때문에 중국, 일본, 미국의 문화가 겹쳐지며 여러 갈등이 연출된다.

=내 사촌과 그의 아내가 실제로 일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연출한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문화가 다양하다는) 사실이 가족 안에서 ‘왜’ 흥미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질문했다. 저널리스트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 이야기에 접근했고, 실제 내 삶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뉴욕과 창춘, 두 도시다. 특히 영화에서 묘사되는 창춘은 빌리의 기억과 달리 고층 빌딩과 세련된 건축물들이 등장한다.

=중국의 모습이 내가 어릴 때와 많이 달라졌더라. 중국의 현실을 포착하면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연회장이나 묘지 등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택해 촬영을 진행했다.

=내 할아버지가 묻힌 묘지, 실제 내 사촌이 결혼한 연회장에서 촬영한 것은 맞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작품을 위해 가장 영화적인 공간을 택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가족들이 할머니에 관해 논하는 장소는 대체로 어둡게, 연회장은 형광등 조명을 이용해 밝게 연출하는 등 상황에 따라 조명과 색감도 달리 연출했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유머가 말이 아닌 상황적인 면에서 비롯된다. 내가 배우들에게 극적인 상황을 주문했기 때문에 조명 역시 (보통의 가족 코미디에 비해) 더 드라마틱하게 설정했다. 연기와 프레이밍, 미장센에서 코미디가 발생할 수 있도록 말이다. 결혼식은 더 밝고 강렬한 색을 사용했는데 극중 행복한 척하는 가족들의 ‘연기’가 극에 달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할머니가, 그리고 식당에서 마작을 하던 여인이 뒤돌아 빌리를 바라본다. 유사한 구성의 두 장면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그 장면들은 두 여성을 잇는 관계를 보여준다. 우리 모두가 어떻게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연기’하거나 ‘거짓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랄까.

-빌리가 중국에 들어오고 나갈 때 같은 건물들을 바라보는데, 이때 사용된 음악의 분위기가 상반된다. 그 밖에도 가족사진 시퀀스에 <피아노 소나타 8번>을 편곡해 넣는 등 음악을 세심하게 사용했다.

=<페어웰>의 음악은 어떤 순간에는 불길하면서도, 또 다른 신에선 천상의 소리처럼 초월적으로 느껴졌으면 했다. 그리스 합창의 개념에서 영감을 얻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개인을 상징하는 독창과 병치하고 싶었다. 여러 고민 끝에 알렉스 웨스턴과 작업하게 됐고 그가 정말 멋진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들어줬다.

-배우나 스탭들의 국적이 다양하기 때문에 촬영 내내 여러 언어를 사용해야 했다던데.

=그렇다. 어떨 때는 헷갈려서 아콰피나에게 중국어를 쓰기도 했다. 아콰피나가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을 때까지 아콰피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결혼식 장면 촬영 때는 150명의 현지 엑스트라를 고용했고, 때문에 대부분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디렉션을 했다. 정말 혼란스러웠지만 재밌었다.

-영화를 제작할 때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이 있나.

=의식적으로 레퍼런스를 삼은 감독들은 마이크 리와 루벤 외스틀룬드, 그중에서도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이었다. 유머와 파토스 혹은 긴장감 사이에서 섬세하게 균형을 잡아낸 영화들을 주로 참고했다.

-할머니와 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본 적 있나.

=영화가 성공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 무슨 내용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정말 자랑스러워하셨다. 내게 감독으로서 커리어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하셨다.

-<페어웰>이란 제목의 의미에 관해 말해준다면. 극중 할머니가 여전히 살아 계시기 때문에 <페어웰>이란 제목이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제목 자체도 거짓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한 것이기도 하다.

-<페어웰>은 특정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가족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분명 그렇다. 하나의 관점에 치우친 답안을 주기보다는 나와 내 가족 양쪽의 입장을 보여주는 게 중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 서로 분명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때조차도 어떻게 여러 진실을 가질 수 있는지 탐구해보고 싶었다.

사진제공 A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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