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웰>은 “중국계 미국 교포인 빌리의 시선에서, 중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를 비주얼적으로 드러내는 데 집중한 영화”다. 빌리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에 가장 주요하게 활약한 인물이 바로 이용옥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그는 <페어웰>뿐만 아니라 오스카 시상식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미나리>까지 화제의 아시안 콘텐츠마다 자신의 족적을 뚜렷하게 남긴, 현재 가장 주목해야 할 한국 출신의 영화인이다.
패션계에서 바이어, MD, 에디터로 일한 이용옥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독립영화감독인 친구의 작업을 도와주며 처음 영화 현장을 접했다. 이후 영화미술에 관심이 생겨 한국에서 <세븐 데이즈> <평행이론> <초능력자> 등에 참여하고, 미국영화연구소(AFI)를 졸업한 뒤 <팬데믹> <페어웰> <미나리> 현장에서 활약했다. 미국 영화 현장에 발을 들인 지 어언 8년차. 이용옥 감독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처음 어떻게 <페어웰>에 합류하게 됐나.
=룰루 왕 감독과 그전에 단편영화 작업을 같이했었다. ‘필름 인디펜던트’라는 미국 독립 영화 단체에서 만든 단편영화였는데 AFI를 졸업한 후 인연이 되어 참여하게 됐다.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LA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점이 <페어웰>을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페어웰>은 중국계 미국인의 시선으로 본 중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 등을 비주얼로 보여주는 데 주력한 영화였고 나는 중국인도 미국인도, 혹은 한국계 미국인도 아니었기 때문에 개인적 경험이 작업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 다만 한국과 중국 영화 현장 경험이 있어서 실무적으로 현장에 적응하는 데 훨씬 용이했다.
-<페어웰>의 주요 배경은 뉴욕와 창춘 두곳이다. 두 도시의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디자인적으로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나.
=창춘에 로케이션 스카우팅을 갔을 때 처음 본 광경이 온통 공사 중인 고층 아파트들, 그리고 좁은 골목길과 시장, 모여 있는 사람들의 풍경이었다. 옛것과 새것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고 그 속에서 소음과 담배 연기가 피어나는 상황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대가족 문화도 음식과 색감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두 도시의 문화적 차이는 뉴욕에서 성장한 빌리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그 차이를 색감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빌리에게 일상적인 공간인 뉴욕은 중간 톤의 차분한 색감으로, 창춘은 원색의 블루와 파스텔 톤 위주로 색감 차이를 주었다.
-할머니의 집은 화려하고 빌리의 집은 상대적으로 심플하게 구현했다. 인물들의 집 인테리어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준다면.
=빌리의 집은 모던하고 에지 있는 예술가의 공간으로 꾸몄다. 처음 디자인할 때에는 좀 더 심플하게 비어 있는 공간으로 생각했는데 빌리의 엄마가 소비 패턴을 바꾸라고 비난하는 부분을 보고 더 채워넣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빌리 부모님의 집은 미국의 전형적인 주택 구조와 차분한 색감이다. 1세대 이민자지만 중국적 장식은 최소한으로 했다. 반면 중국의 할머니 집 거실은 가족사진과 가짜 꽃, 옛날 장식품으로 화려하게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방은 정갈하다. 공산당 출신인 할머니의 성격을 보여주면서도 자본주의가 깊숙이 스며든 중국의 다소 과한 취향도 보여주고 싶었다.
-극중 빌리는 가족과의 의견 차이 속에서, 또 중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 속에서 고민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상황을 잘 드러내기 위해 미술적으로 신경 쓴 부분이 있나.
=극중 가족과의 갈등은 거의 대부분 식사를 하면서 발생한다. 다양한 음식의 종류, 끝없이 쌓아놓은 음식이 중국의 식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계속 음식을 권하는 것도 빌리에게는 무척 불편한 상황이지만, 그것이 중국의 가족관계이고 한편 빌리가 그리워하던 모습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연회장에 공을 많이 들인 게 느껴졌다. 특히 레드로 가득한 기존의 중국 결혼식과 달리 블루를 메인 컬러로 사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연회장은 많은 신을 커버해야 할 장소였기 때문에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블루는 영화의 메인 컬러였고 장소, 감정 등에 따라 톤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레드가 중국의 가장 전형적인 색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빌리의 시선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다르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감독도 그것에 동의했다. 벽지, 기둥, 큰 벽화 등도 모두 제작해 바꿔넣었고 천장의 카메라와 조명을 가리기 위해 천을 드레이핑해 장식했다. 조잡한 소품들을 차분한 배경색으로 눌러서 그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식사 신에선 룰루 왕 감독과 촬영감독인 안나가 킹크랩을 찍고 싶어 했는데, 창춘에서 공수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소품팀장이 겨우 10개를 구해왔는데 신선하게 유지할 수가 없어 오일과 물감을 계속 발라 다시 사용해야 했다. 음식 소품이 너무 많은 데다가 배우들이 식사하는 신이 많아서 신경을 많이 썼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프로듀서들이 킹크랩 이야기를 할 정도로 악몽이었다.
-<페어웰>을 제작하며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나.
=독일 작가 마이클 울프의 사진과 주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많이 참고했다. 초기에 룰루 왕 감독과 컨셉을 정할 때 구안 작가의 사진의 색감과 톤을 컨셉으로 가져가자고 결정했었고, 중국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하면서 영화에 맞게 맞춰갔다.
-제작에 참여한 <미나리>가 오스카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미나리>의 프로덕션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시한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국적 정서와 실제 로케이션이 중요했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아칸소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라 조사를 많이 했다. 주인공의 집이 위치한 공간적 특성과 영화에서 자세히 보여지지 않는 지리적 배경까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농장을 만들 수 있는 공간과 산의 위치, 모바일 집은 어떻게 자리 배치를 해야 하는지와 미나리가 자라는 계곡 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중요했다. 그외에는 80년대의 시대적 배경, 시골 마을의 고립된 시공간적 느낌,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 백인들에게 보여지는 이국적인 느낌 등을 고민해 디자인했다.
-영화 <초능력자>(2010) 이후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다. 미국으로 진출하게 된 배경은.
=<초능력자>에 참여했을 때부터 미국으로 가기 위해 준비중이었다. 미술이나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어서 한국에서 일하는 내내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경험을 쌓고 싶었고 그렇게 AFI에 지원, 합격해 미국에 오게 되었다. 미국에 올 당시에는 졸업 후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도 졸업 전부터 일할 기회가 생겨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앞으로의 계획이 매우 불투명해지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작품이 몇개 있다. 좀더 다양한 장르의 영화, 드라마를 해보고 싶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영화 일을 한 지 8년째가 되어간다. 아직 배우고 경험할 것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