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홈시어터 열풍 리포트- 집으로 극장을 끌어들이다
2021-02-10
글 : 남선우
집과 관련된 소비 급증하는 가운데 OTT산업과 가전산업의 동반 성장
삼성전자의 새 가정용 프로젝터

집이 곧 복합문화공간이 되는, 아니 되어야만 견딜 수 있는 나날이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홈루덴스족(유희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루덴스(Homo Ludens)의 첫 단어를 홈(Home)으로 바꾼 신조어로 집에서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편집자)은 과감하게 혹은 절박하게 소비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온라인 커머스 업체 위메프는 지난 4월, 3월 1일부터 4월 11일까지 전년 동기대비 보드게임 ‘부루마블’이 778%, DIY 명화 그리기 키트가 410%, 커피 머신과 와플 메이커가 230% 넘는 매출 급증을 보였다고 밝혔다.

집을 카페이자 취미 공간으로 꾸려나간 이들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자연히 빔프로젝터(392%), 홈시어터(59%), 블루투스 스피커(52%) 판매량 증가에 기여했다. 이들은 기꺼이 ‘거실 극장’ 또는 ‘내방 극장’을 구현하기 위해 투자한 것이다. 국내 가전전문점 내 점유율 1위 하이마트가 발표한 올해 2분기 실적 보고서 또한 성장 품목에 TV를 꼽으면서 “집과 관련된 소비가 부각되며 프리미엄 가전이 고성장 중”이라는 경향을 알렸다. 홈 디바이스 시장이 커지는 것은 OTT 플랫폼의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극장에 가지 않고도 쉽고 간편히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으니 OTT 가입률과 디바이스 판매량이 영향을 주고받는 건 당연한 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지난 5월 발간한 이슈페이퍼 ‘코로나19 충격: 한국 영화산업 현황과 전망’에서 코로나19를 통과하며 넷플릭스 이용자 수가 7.8% 증가했음을 알렸다.

한국엡손의 투사형 홈프로젝터
보스의 소형 사운드바

가전제품 업계에서도 팬데믹으로 인해 선명히 드러난 이 연결고리를 주목하고 있다. 김대연 한국엡손 이사는 “시장이 커지고 있는 걸 체감한다”면서 “올해 별도의 셋톱박스 없이도 OTT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장한 프로젝터를 다양한 라인업으로 선보였다”고 말했다. 김대연 이사는 “홈시어터 장비를 다 갖추는 데 비용이 크게 들고, 그래야 좋은 음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으나, 요즘엔 사운드바 하나만으로도 아파트 같은 일반적인 거주 공간에서 충분히 음향을 즐길 수 있다”고 전하며 홈시어터가 고가라는 편견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했다. A/V 기기를 비롯한 DVD, 블루레이 정보 커뮤니티 DVD 프라임의 박진홍 대표 또한 “설치의 편의성이 더해진 이동형 모델, 무선 스피커 등이 나오면서 홈시어터 구매 욕구를 더 자극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호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생활가전 담당자는 “코로나19 이전부터 OTT 등의 영향으로 증가 추세였던 홈시어터 수요가 코로나19로 가속화된 것”이라 짚으며 “75인치 이상의 초대형 스크린 TV 등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이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들의 신제품 공개와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9월 2일 공개한 홈시네마 프로젝터 ‘더 프리미어’는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올 하반기 주요 신제품을 선보이는 버추얼 프레스 콘퍼런스 ‘Life Unstoppable’에서 먼저 소개되었고, LG전자 또한 올해 4월 고해상도 비즈니스 프로젝터 ‘프로빔’을 출시한 데 이어 홈시네마 시장을 겨냥한 ‘갤러리 디자인 사운드바’와 ‘시네빔’을 각각 7, 8월에 공개했다. 야마하뮤직코리아, 보스, 뱅앤드올룹슨, JBL 등 헤드폰부터 스피커까지 아우르는 오디오 기기 전문 업체들은 코로나19 특수를 맞아 합리적인 가격대의 사운드바, 우퍼 등을 선보이며 홈시어터 입문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앞장서는 중이다.

왓챠가 돌비 시스템을 적용해 공개한 <블레이드 러너 2049>

영화 애호가들이 기기를 업그레이드하며 집에 극장 같은 시설을 갖추는 동안 OTT 업체들은 안방 1열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술 보강에 힘쓰고 있다. 2018년 11월 일찍이 LG유플러스와 IPTV 부문 단독 파트너십을 체결한 넷플릭스가 국내 제작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중 최초로 4K HDR 화질을 구현한 <킹덤> 시즌2를 돌비 비전과 돌비 애트모스로 제작한 것이 좋은 예다.

왓챠는 지난 9월 7일 ‘당신이 있는 그곳이 바로 영화관’이라는 카피를 내세우며 돌비와의 협업을 홍보했다. 고객에게 영화관급 화질과 음질을 선사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친 왓챠는 그 첫 타자로 <스파이더맨: 홈커밍> <베이비 드라이버> <쥬만지: 새로운 세계> <블레이드 러너 2049> <레이디스 나잇> 등 총 5편을 돌비 기술로 제공했다. 박태훈 왓챠 대표는 “고객의 감상 경험을 혁신할 고품질 콘텐츠 제공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넷플릭스가 4K로 제작한 <킹덤> 시즌2

국내 OTT 후발주자 웨이브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국내 각종 영화제의 온라인 상영관 역할을 도맡아 극장을 대신하고 있다. 제1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20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모두 웨이브에서 비대면 상영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극장은 물론 집에서 더 좋은 영화적 경험을 꿈꾸는 관객이 관심 가질 것이라 예상될 법한 DVD, 블루레이 시장에 더없는 위기다.

백준오 플레인 아카이브 대표는 “최근 홈시어터 시장의 성장은 전적으로 OTT의 확대 덕”이라며 “DVD, 블루레이를 판매하는 플레인 아카이브 입장에서는 타격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OTT 이용자 100만명 중 1%인 1만명이라도 더 좋은 화질과 음질을 위해 블루레이로 넘어온다면 반가울 것이라며 “영화를 소장하는 경험”까지 원하는 이들을 기다릴 뿐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영진위가 지난 4월 공개한 ‘2019년 영화산업 결산’에서 다국적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분석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전세계 DVD 및 블루레이 시장은 OTT 시장의 성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시장으로 평가되며, 연평균 성장률 –12.6%로 2023년이 되면 2018년의 절반 수준까지 시장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올해 4월 코로나19로 인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 빠르게 분석 및 예측한 저서 <언컨택트>를 출간한 김용섭 경영전략 컨설턴트는 책에서 언콘택트 트렌드의 핵심 배경을 ‘불안’과 ‘편리’로 정의했다. 불안이 편리함에 대한 욕망을 낳고 그것이 또 다른 불안을 야기하기에,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영역이 지금의 시장이라는 것이다. “일상이 바뀌면 욕망도 바뀐다. 욕망이 바뀌면 일상도 변한다. 언콘택트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욕망을 바꾸고, 사회를 바꾼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바꿔놓을 관객의 영화적 경험에 대한 욕망은 누가 선취할 것인가. 그 물음은 콘텐츠 플랫폼과 디바이스 업체의 합리적 부흥과 함께 이제 막 답안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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