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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월' 주현숙 감독 - 위계 없는 공동의 슬픔을 향해
2021-04-01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4월 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을 만든 주현숙 감독은 사회적 참사로 구획 지어진 객관의 역사로부터 혼자 숨죽여 울던 사람들의 가장 개인적인 시선을 발굴해낸다. 사고 당일 쓰러져가던 배를 바라보던 어느 교사, 수험생 시절에 교실에서 소식을 들었던 청년, 해역에서 시신을 수습했던 진도 어민, 유가족 곁을 지킨 인권 활동가, 장시간 시위 중인 유가족들을 대접한 카페 사장 등 세월호 참사에 얽힌 거리와 각도가 제각각인 보통의 초상들이 등장해 비밀스러운 슬픔을 고백한다.

<계속된다-미등록 이주 노동자 기록되다>(2004)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가난뱅이의 역습>(2012)에서 소외된 청춘의 희망을 살피는 등 언제나 낮은 자리에 카메라를 위치시켰던 다큐멘터리스트 주현숙 감독. 세월호 7주기를 앞둔 어느 날, 그를 만나 여전한 슬픔의 자리를 더듬어보았다.

-<당신의 사월>은 지금은 해체된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의 4주기 옴니버스 프로젝트 중 단편 <이름에게>를 확장한 결과물이다. 작업에 참여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참사 초기에 언론 지형이 좋지 않았기에 유가족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들려줄 만한 집단이 필요했고, 독립다큐멘터리신을 중심으로 영화인들이 모여 집회 영상, 프로젝트 영상 등을 만들었다. 초창기에 나는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바라볼 에너지가 없었다. 너무 큰 슬픔이어서 도저히 작업으로 소화할 수가 없었달까. 4주기 무렵이 되자 내 안에 있는 슬픔의 덩어리를 조금은 끄집어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거리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중일까 궁금해지더라. 그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어서 단편 <이름에게>를 시작했고, 장편까지 확장했다.

-진상을 규명하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시선과 달리 세월호 참사에 얽힌 일반 시민들의 트라우마는 그동안 전면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다. 사고 당일에 뉴스 화면에서 가라앉는 배의 모습을 지켜본 우리 모두가 참사에 연루되어 있으나, 각자의 슬픔은 덜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제 공개 이후 관객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보통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상 혹은 감독의 생각에 대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인데, <당신의 사월>에 관해선 영화와 별개로 그날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자신이 어떠했는지 개인적인 기억을 들려주는 관객이 많았다. 그날 그 시간에 어떤 상황에서 뉴스를 들었는지, 이를테면 무슨 옷을 입고 있었고 텔레비전은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아주 자세히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날의 기억을 아주 힘들게, 그리고 선명하게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나 또한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슬픔의 위계를 느끼며 산다. 당사자와 목격자가 겪는 슬픔의 차이 속에 짓눌려져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이번 작업을 하는 동안만큼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의식했다. 이야기하지 못할 아픔이란 없다.

-5명의 인터뷰이들은 어떻게 선정했고, 어떻게 가까이 다가갔나.

=사건을 중심으로 물리적인 거리를 고려하며 인터뷰이들을 만났다. 사람을 범주화하면 안되는데, 제한된 시간 내에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다큐멘터리스트의 작업이란 게 어쩔 수 없이 이런 속성을 품게 된다. 평범한 사람, 자신의 일상에서 그 소식을 들었던 사람들을 만났고 저마다 미안함과 죄의식을 품고 ‘내가 과연 슬픔을 말해도 되는 것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자기는 세월호 참사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하는데, 막상 들여다보면 달랐다. 그날의 영향을 품고서 자기 삶을 성실히 일궈나가는 모습이 내게는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정말 그렇다. 괴롭고 슬픈 마음과 삶을 잘 살아가려는 노력이 공존하고, 그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날의 광경이 일종의 씨앗처럼 자리해 있다가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삶의 어느 시점에 피어나는 것 같다. 고통 앞에서 우리는 완전히 매몰되거나 혹은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기 쉬운데, 진정한 성찰은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면서도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1년 365일 슬퍼하지 않아도, 식음을 전폐하지 않아도, 울다가 갑자기 웃거나 밥을 먹어도 된다. 유가족들도 그렇다. 인간답게 이런저런 모순을 품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같은 기억과 감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느꼈다.

-인터뷰이들의 진술에 따라 기록 푸티지들이 이어지는 구성이다. 제작 당시에 이미 자료가 무수한 상황이었을 텐데 사건과의 거리감이나 시각적 일관성 등을 유지하며 솎아내기가 쉽지 않았겠다.

=이미지가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았으면 했다. 감정을 조심스레 길어 올려보는 시도였다고 표현하고 싶다. 인터뷰에 이미 감정이 흥건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지는 건조하게 추렸다. 난제는 세월호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우리 안의 트라우마와 관계된 죽음의 현장이지 않나. 배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조금의 스펙터클도 끼어들지 않길 바랐다. 3년 만에 배가 인양되어 아주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으로 영화 속에 세월호를 처음 등장시킨 것도 그래서다. 주변에서 작게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헬기 소리로 감정은 간접적으로만 존재한다. 세월호 전체의 모습이 보이는 건 후반부에 눈내리는 풍경 속에서다. 마치 커다란 고래가 누워 있고 그 위로 눈이 쌓이는, 차갑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이미지로 나온다. 아무 장치 없이 세월호의 모습을 보는 게 우리에게 가능할까, 아직까지도 너무 힘든 일이 아닐까 고민하던 찰나에 기적처럼 눈이 내렸다.

-이민휘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후반부에 처음으로 노랫말이 있는 음악이 등장하는데 그 가사가 무척 슬프고 인상적이다.

=우리 안에 있는 참사에 대한 공포, 몸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그런 감각이 이민휘 음악감독의 낮고 느린 멜로디 속에서 전달되었으면 했다. 또 시작과 끝 부분에선 자신의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생기를 경쾌한 톤으로 담으려 했는데 이런 부분까지 무척 세심하게 표현해줬다. 이민휘 음악감독에게 정말 고마운 게, 사운드 믹싱 작업 직전에 갑자기 가사가 있는 노래를 하나 넣자고 제안을 해주었다. 나보고 가사를 쓰라고 하도 닦달해서 처음엔 힘들었다. (웃음) 처음엔 막막해하다가 결국 우리 영화에 마지막 모습이 등장하는 세월호 희생자 고 문지성양을 떠올리며 썼다. 구체적인 생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렸으면 해서 그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보냈을 사소한 일과를 써내려갔고 쓰면서 많이 울었다.

-노동과 가난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앞으로 계획 중인 작업이 있나.

=내게 보통 사람들의 일상은 매우 중요한 주제다. 인간이 태어나서 매일 눈뜨고 밥먹고 이런저런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는 것, 정말이지 권태롭고 힘든 일 아닌가. 그 반복을 다들 어떻게 견디고 살아가는 건지 자주 궁금하다. 특히 그 일상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크기는 얼마나 큰가. 그 위대함을 계속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세월호의 슬픔을 안고 매일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계속 인터뷰해볼 요량이다. 304명을 채워보면 어떨까,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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