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의 아내>는 오롯이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지만 곳곳에서 다른 영화와의 연결고리들이 발견된다. 여기 <스파이의 아내>의 동지라 부르기에 손색없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주제, 스타일, 캐릭터 등 여러 측면에서 함께 보면 좋을 영화들을 통해 한층 입체적인 감상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스파이 브릿지 2015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톰 행크스, 마크 라일런스
1957년 냉전시대,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모든 사람은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신념으로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일런스)의 변호를 맡는다. 미국과 소련의 스파이 교환을 위한 첩보 작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냉전의 초상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스필버그의 클래식한 연출 미학이 빛을 발하는 영화로 신념과 고뇌를 드라마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사건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상황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데 집중한다. 함부로 판단하기 전에 다리의 이쪽과 저쪽, 영화와 현실의 거리를 고민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스파이의 아내>와 닮았다.
아사코 2018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히가시데 마사히로, 가라타 에리카
첫사랑 바쿠와 똑같은 외모의 남자 료헤이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여성 아사코의 방황을 다룬 영화다. 삼각 로맨스라는 외피를 한 꺼풀 벗기고 나면 동일본 대지진 이후 믿음이 사라진 일본 사회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 녹아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스파이의 아내>의 각본을 통해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하마구치 류스케 특유의 멜로드라마적 감성은 <스파이의 아내>의 사토코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돌아온 여군 1965
감독 이만희 출연 문정숙, 류구선, 구봉서
<7인의 여포로>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이만희 감독의 문제작. 중공군의 포로로 잡힌 7명의 간호장교가 겁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북한군 장교가 한민족으로서 이들을 구해준다. 이후 여성들의 설득에 따라 북한군이 귀순하는 과정을 그리는데,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이전까지 타자이거나 적으로 그려졌던 북한군의 심리를 내부자의 시선에서 따라가는 접근방식이 돋보인다.
우게츠 이야기 1953
감독 미조구치 겐지 출연 모리 마사유키, 교 마치코
<오하루의 일생>(1952)에 이어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한 미조구치 겐지의 대표작. 전국시대 설화를 바탕으로 돈에 눈이 멀어 집 밖을 떠도는 남편과 그를 기다리는 아내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초현실적으로 그린다. 멜로드라마의 거장답게 여성을 다루는 섬세한 시선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일본 전통의 미의식 속에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생존해온 여성들의 영혼을 그린다. 롱테이크와 롱숏의 관조적 스타일, 특히 화면을 한폭의 두루마기처럼 활용하는 트래킹숏은 <스파이의 아내>의 담담하고 우아한 거리감에 여러 측면에서 영감을 남겼다 할 만하다. 특히 <스파이의 아내> <우게츠 이야기> 모두 배를 타고 가는 모티브가 주요하게 활용된다는 점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