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life]
4·3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장편극영화 당선작에 오라리사건 다룬 <내 이름은…> 선정
2021-04-19
글 : 씨네21 취재팀
4·3의 아픔, 젊은 관객도 공유할 수 있도록
4·3 당시 미육군통신대가 촬영한 제주도 메이데이 필름 중 불타는 오라리 마을의 영상. 사진제공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제주4·3사건(이하 4·3)의 역사적 진실과 평화·인권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 등을 영화로 제작하여 4·3의 전국화·세계화에 기여하기 위해 처음으로 기획된 ‘4·3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이 결정됐다. 본 공모전은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이사장 문대림, JDC)의 업무협약에 따라 제주4·3문화학술사업 지원으로 추진됐으며 4·3 대중화의 기폭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3월 11~12일 양일에 걸쳐 ‘4·3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본심사위원회를 개최해 장편극영화 부문 당선작으로 (주)렛츠필름이 응모한 <내 이름은…>을 선정했다. 장편다큐멘터리 부문에서는 당선작이 나오지 않았다.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해 11월 15일부터 올해 1월 15일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장편극영화와 장편다큐멘터리 두 장르에 대해 시나리오 공모를 진행한 바 있다. 공모 결과 모두 72편(장편극영화 65편, 장편다큐멘터리 7편)이 접수됐다. 이후 약 2개월에 걸쳐 장편극영화 부문에 대한 예심과 본심사가, 장편다큐멘터리 부문은 응모편수가 적어 단심으로 심사가 진행됐다.

장편극영화 부문 당선작 <내 이름은…>은 4·3 당시 ‘오라리 방화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4·3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오라리 방화사건은 1948년 5월 1일 우익청년단이 당시 제주읍 오라리 마을의 다섯 세대 민가 12채를 불태우면서 시작됐다. 무장대의 4·3 봉기 이후 제주주둔군 9연대의 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4월 28일 무장대 사령관 김달삼과의 평화협상을 이뤄냈다.

하지만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협상은 사실상 결렬됐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5월 3일 미군이 경비대에 총공격을 명령, 4·3은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충돌과 민간인 학살로 이어졌다. 오라리 방화사건은 미군 촬영반에 의해 입체적으로 촬영됐다. 미군 비행기에 의해 불타는 오라리 마을이 공중에서 찍혔으며, 오라리로 진입하는 경찰기동대의 모습도 촬영됐다. 해당 영상이 담긴 필름은 ‘제주도의 메이데이’(May Day on Cheju-do)라는 제목으로 현재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돼 있다.

4·3영화 시나리오 당선작 <내 이름은…>은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다루며 4·3의 아픔을 드러낸다. 4·3 당시 트라우마로 70년을 남의 이름으로 살아온 할머니와 18년을 여자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손자의 이름 찾기 과정을 다룸으로써 4·3을 마주하는 전개로 이어진다. 특히 슬프고 무겁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할머니와 손자가 70여년의 간극을 뛰어넘고 함께 미소 지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구성됐다. 심사위원들은 “4·3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빠지기 쉬운 회상 장면의 지나친 사용을 절제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드러냈다”라며 “현재의 학교 폭력과 과거의 역사적 폭력을 절묘하게 병치시킨 점도 4·3의 정서적 진실을 현재의 젊은 관객에게 가깝게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당선작을 내지 못한 장편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들은 “심사에 올라온 작품 모두 4·3 문제에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기획 구성의 핵심인 4·3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인 화법으로 전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흡했다”라며 “다큐멘터리는 4·3의 비극을 겪은 증언자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메시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국 고민 끝에 당선작 없음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역사의 진실이 널리 알려지길”

문대림 JDC 이사장, (주)렛츠필름 김순호 대표, 김성현 작가,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왼쪽부터).

제주4·3평화재단과 JDC는 3월 30일 4·3평화기념관에서 4·3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을 개최해 장편극영화 부문에 선정된 (주)렛츠필름(김순호 대표, 김성현 작가)에 상패와 상금(5천만원)을 수여했다. 이번 시상식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 문대림 JDC 이사장, 오임종 4·3희생자유족회장, 허영선 4·3연구소장 등 최소 인원만 참석했다.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이번 수상작이 4·3 당시 오라리 방화사건을 다루고 있는 만큼 미디어가 갖고 있는 영향력으로 역사의 진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라며 “이번 대중영화 제작은 4·3의 전국화를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대림 JDC 이사장은 “영화 제작진이 제작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4·3의 진실을 알고 평화·인권의 감수성을 키워내는 작업에 각 부처에서 고민하는 분들이 많으니 제작하는 데 외롭지 않을 것”이라며 “JDC와 4·3기관·단체가 마중물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함께하는 데에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수상자 김순호 (주)렛츠필름 대표는 <이끼> <은교> <순정만화> 등 국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이력이 있으며 2010 대종상영화제 감독상, 2012 부일영화상 최우수작품상 수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성현 (주)렛츠필름 작가는 “이번 수상이 개인의 영광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라며 “모든 이들이 4·3과 관련해 상처와 치유, 회복을 이야기하기에 조심스럽고 두렵기도 하지만 보듬고 회복해야 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제작될 4·3영화가 선물하는 게 아닌 함께 만드는 영화가 돼야 한다”라며 “참여자 모든 이들이 주인인 영화를 꿈꾸고 있으니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주최측 관계자들에게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제주4·3평화재단과 JDC는 (주)렛츠필름을 통해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돌입할 계획이다. 또 당선작이 나오지 않은 장편다큐멘터리 부문에 한해 오는 4월부터 7월까지 공모 기간을 연장, 재공모를 실시할 계획이다. 재공모 계획은 추후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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