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영미권에서 스릴러의 대가로 사랑받는 젊은 작가 마이클 코리타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2021-05-12
글 : 김소미

대형 산불은 가장 미국적인 재앙 중 하나다. 한번 제대로 불씨가 붙으면 걷잡을 수 없는 화마로 번지는 광활한 산악 지대에는 그래서 일명 스모크점퍼라 부르는 산불 진압 전문 소방대원들이 산다. 이들은 헬기를 타고 화재 지역으로 이동해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위험천만한 숙명에 익숙하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의 배경은 로키산맥을 품은 서부 산악 지대인 몬태나주. 베테랑 스모크점퍼인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일선에서 물러나 감시탑에 배치된 상태로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멀지 않은 과거, 한나는 대화재 당시 바람의 방향을 잘못 읽는 바람에 마을 주민인 어린아이 세명을 눈앞에서 보고도 구하지 못한 전력이 있다.

한편 도시에서는 산불 대신 킬러들이 죽음을 부른다. 정부 고위급 간부의 비리를 밝혀낸 회계사는 어린 아들 코너(핀 리틀)와 시골로 도망치던 중 킬러들에 의해 결국 살해당한다. 비리 내역이 적힌 쪽지 한장을 들고 숲속을 헤매던 코너와 정찰 중이던 한나가 조우하고, 도시의 킬러들이 도착하면서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의 서바이벌 게임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미권에서 스릴러의 대가로 사랑받는 젊은 작가 마이클 코리타의 소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자인 마이클 코리타가 직접 제작에도 참여했다. 메가폰은 <윈드 리버>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하고 <시카리오> 시리즈의 각본을 쓴 배우 출신 감독 테일러 셰리던이 맡았다. 설원을 배경으로 야생동물 헌터와 FBI 요원의 살인사건 수사극을 담았던 <윈드 리버>처럼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역시 미국의 대자연을 내러티브의 근간이자 가장 중요한 미장센으로 삼는다. 현지인과 외지인의 명백한 대비 속에서 스릴러적 요소를 강화하고 압도적인 자연이 부르는 경외감을 장르적인 뉘앙스로 활용하는 기지도 여전하다.

캐릭터들 역시 미국 장르영화의 기호들로서 흥미로운 구도를 이룬다. 정부 비리를 알게 된 회계사와 아버지의 임무를 대신 지게 된 어린 아들, 정체불명의 고위급 인사로부터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두명의 킬러, 시골 마을을 지키는 소방관과 보안관이 등장해 추격과 도주의 굴레를 맴돈다.

다만 코리타의 원작 소설은 제각기 원형이 뚜렷한 군상을 불타는 밤의 숲속에 가둬둠으로써 사회비판과 심리극적 성격을 뚜렷이 성취한 데 반해 테일러 셰리던의 영화는 전반적으로 무딘 인상을 준다. 문학적 아우라를 살려내거나 영화적으로 재창조하는 갈림길에서 안전한 중립지대를 택했다. 한나를 괴롭히는 죄의식은 인물의 동기로서 기능적으로 머무르고, 자연에서 제 힘을 쓰지 못하는 킬러들의 정신적 붕괴는 모호한 묘사에 그친다. 재난영화의 스펙터클을 답습하는 산불 장면과 항공 촬영의 남용도 영화의 총기를 떨어뜨리는 요소다. 미국적인 광활함과 공간적 당위를 위해 남용되는 롱숏이 리듬감을 되레 성글게 만든다.

화끈한 대중영화와 미학적 성취 사이에서 테일러 셰리던이 주저하는 사이 안젤리나 졸리만큼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액션 스타로서 안젤리나 졸리가 가진 연륜은 물론 다부진 외형적 조건까지도 영화의 빈구석을 메우는 요소로 빛난다. 직업적 트라우마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베테랑이 어린아이와의 새로운 교감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는 서사는 자칫 지루한 전형이 될 수 있지만,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서는 유엔난민기구 친선 대사로서 특히 아동 구호 활동에 힘썼던 안젤리나 졸리의 현실과 연장선을 이루며 의외의 생기를 자아낸다. 마을 보안관의 아내이자 만삭의 몸으로 두명의 킬러들을 따돌리는 다크호스를 연기한 메디나 생고르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5월 5일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로 개봉했다.

CHECK POINT

액션 히어로, 안젤리나 졸리

안젤리나 졸리는 코너와의 교류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한나를 연기하면서 스스로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한나를 연기하며 나 자신이 힐링되는 기분을 느꼈다”는 졸리는 <체인질링> <마이티 하트> 등에서 보여준 짙은 상실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툼 레이더> <원티드>의 주역다운 거친 액션도 무심히 소화한다. 특별한 무기 없이 도끼 한 자루로 적과 대결하는 후반부의 건조한 액션이 특히 매력적이다.

밤의 숲과 킬러

캄캄한 밤의 숲속에서 단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킬러와의 추격전은 광기와 의심으로 가득하다. 시커먼 어둠이 사람을 미치게 할 무렵, 화마까지 숲을 삼키면서 인물들은 점점 궁지에 내몰린다. <윈드 리버>의 설원과 마찬가지로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의 자연은 한없이 열린 공간인 동시에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강력한 통제력을 지녔다. 도시를 손쉽게 지배했던 킬러들은 그 힘 앞에서 점차 이성을 잃더니 어느새 아이처럼 “난 이곳이 정말 싫어…”라고 울먹인다.

마이클 코리타 입문하기

몬태나주의 자연과 현지인들의 강력한 반격 속에서 서서히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킬러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마이클 코리타의 소설을 당장 찾아서 읽고 싶어진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이전에 <오늘 밤 안녕을> <죽음을 보는 눈> 등에서 초자연적인 설정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했던 스릴러 작가 마이클 코리타는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전공하고 직접 사립 탐정으로 활동한 바 있는 매력적인 이력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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