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대한민국 영화산업 주제로 열린 ‘동시대 한국에 대한 관점 2020-21’ 온라인 콘퍼런스 현장
2021-05-13
글 : 임수연
해외 학자들, 한국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말하다
<최민식, 액터에서 액티비스트로>

지금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해외 학자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온라인 콘퍼런스가 열렸다.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미시간 대학교 남한국학연구소 (Nam Center for Korean Studies) 에서 열린 한국영화산업 ( The South Korean Film Industry) 컨퍼런스는 이상준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 커뮤니케이션과 교수, 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 교수, 조준형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이 함께 조직하고 남한국학센터와 싱가포르 기반의 버추얼 영화 연구소인 아시아영화연구 랩 (Asian Cinema Research Lab) 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주최했다.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미시간 대학교 출판부에서 책으로 편집되어 출판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 영화산업을 연구하는 캐나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영화 및 미디어 연구 분야의 학자들이 모인 이번 학회는 한국영화의 제작, 전시, 배급, 정책, 검열, 공동 제작, 영화제 및 시네필리아, 독립영화, 한류 등 다양한 주제를 포괄해 눈길을 끌었다.

콘퍼런스 둘째 날인 4월 13일에는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박은경 더램프 대표, 임순례·민규동 감독의 라운드 테이블이 열려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학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허철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 예술대학 교수가 모더레이터로 참석한 대담의 내용은 이어지는 기사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콘퍼런스의 마지막 날인 4월 16일에는 <벌새>의 김보라 감독과 영화평론가 매기 리의 온라인 토크가 약 1시간30분 동안 열려 김보라 감독이 동국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며 받았던 영향, <벌새>의 주인공이 중학생 여자아이였어야 했던 이유 등을 공유했다. 5일간 열린 학술대회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키워드를 정리해보았다.

보다 세분화된 연구 주제

김보라 감독

더이상 한국영화는 봉준호와 박찬욱, 홍상수의 이름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21세기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감독 중심의 연구를 넘어서서 한국 애니메이션, 단편영화 같은 보다 세분화된 주제들이 등장했다. 한국영화에 대한 글로벌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학술적인 관심 또한 총론에서 각론으로 확장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니얼 마틴 카이스트 인문과학부 교수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해, 줄리언 스트링거 노팅엄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단편영화 제작에 관한 발표를 준비했다.

그 밖에 스타 아이콘으로서 송강호만 집중적으로 분석한다거나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 받았던 비평적 평가와 20세기 말 한국영화계를 분석한 시간도 있었다. 에리얼 셔드슨 필름 아키비스트는 한국영상자료원의 <오발탄> 등 필름 복원에 대해 언급했으며, 싱가포르국립대학교의 시몬 정은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시가 어떻게 협력하며 해안 도시의 경관을 축제 고유의 개성으로 발전시켜왔는지 분석하면서, 주제를 아카이브와 영화제로까지 넓혔다.

검열과 스크린쿼터의 시대로

매기 리 영화평론가

지금까지 한국영화사에 관한 해외 학자들의 연구는 90년대 이후 작품에 집중돼 있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거대 스튜디오가 한국 영화산업을 이끌기 이전 정치적 맥락을 짚고 그 역사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이 다수 등장했다.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기에 관련 발표와 강의에는 한국 학자들이 앞장섰다. 콘퍼런스 첫째 날, 조준형 선임연구원은 할리우드영화의 직접 배급에 맞서 한국 필름메이커들이 분투했던 80년대를 지나 1990년대부터 2020년까지 한국영화 정책이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발표했다. 같은 날 기조연설자 초청된 김홍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해외 연구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한국의 스크린쿼터 역사에 관한 키노트 강의를 진행하며, 스크린쿼터에 관한 이훈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최민식, 액터에서 액티비스트로>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둘째 날에는 제이슨 베셔베이스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가 한국 영화산업과 스튜디오 시스템의 양면적 관계를 짚었는데, 삼성의 영화 지원 등 90년대부터 한국 재벌이 충무로에 끼친 영향을 놓치지 않고 조망했다. 2000년대 들어 CJ·롯데·쇼박스 중심으로 구축된 스튜디오 시스템과 스크린독과점, NEW·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에이스메이커 등 신생 투자배급사들, 이십세기 폭스·워너브러더스의 한국영화 제작 진출 및 최근 넷플릭스의 공격적인 투자는 신자유주의와 떼놓고 논할 수 없다. 셋째 날, 콜로라도주립대학교의 정혜승 교수는 한국의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냉전 시대 체제와 검열이 영화의 내용과 형식에 미친 영향을 <오발탄>을 중심으로 분석했고, 호주 맥쿼리 대학교의 이승애 교수는 <하녀> <만추> 등 리메이크의 역사를 소개했다.

트랜스내셔널리티(초국가성)

<아름다운 시절>

국제 콘퍼런스인 만큼 한국영화의 트랜스내셔널리티는 5일간 열린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중요한 핵심 테마 중 하나였다. 첫째 날 진달용 교수는 한류 시대 한국 영화산업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한국영화가 한류를 대표하는 주요 문화상품이 되고 넷플릭스가 한류와 결합되는 방식을 소개하며 트랜스내셔널리티가 동시대 한류영화를 분석하는 좋은 프레임임을 언급했다. 노팅엄트랜트대학교의 니키 J.Y. 리 교수는 한국 영화산업과 중국영화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한한령으로 인해 한중간 협업의 끈이 끊겼던 점을 언급하며 한국과 중국의 영화산업은 정치 및 지형적 파워 게임에 종속되어 있음을 전제했지만, 대신 덱스터가 완다픽쳐스 등 중국 투자를 받고 중국에 지사를 둬 중국 영화 작업을 꾸준히 하는 등 최근 VFX 업계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협업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렸다.

마드리드카를로스3세대학교의 소냐 두에나스와 라구나대학교의 루이스 미구엘 머신 마틴은 유럽과 한국 영화산업의 교류를 정리했다. 주로 한국과 유럽의 공동제작은 프랑스와 이루어졌으며, 영화제 서킷을 도는 경우가 많고, 디아스포라나 투어리즘, 북한 관련 주제가 많았다. 아시아 대중영화의 미국 배급과 상영을 위해 설립된 단체인 서브웨이 시네마의 고란 토팔로비치는 <춘향전>부터 <기생충>까지 한국영화의 미국 배급, 마케팅, 수용에 대한 역사를 훑었다. 영화제를 중심으로 인지도를 높여갔지만 박스오피스에서는 어떤 벽을 넘지 못했던 한국영화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기점으로 매출 100만달러의 고지를 넘어섰고, 2009년 CJ엔터테인먼트가 미국에 CGV를 진출시키며 직접 배급을 시작했으며, 뉴욕 아시안 영화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짚었다.

아리 애스터 등 미국의 떠오르는 감독들이 한국영화의 팬이라고 밝힌 것 역시 <기생충>으로 이어지는 한국영화 붐의 원동력으로 지목됐다. 2년 연속 오스카에서 활약한 한국영화에 관한 트랜스내셔널 비교 연구에 관한 관심은 둘째 날 원동연·박은경 대표, 임순례·민규동 감독, 허철 난양공과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프로그램 디렉터가 참여한 라운드 테이블에서 특히 뜨겁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필름메이커들에게 세계화가 콘텐츠의 내용이나 제작 방식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지, 감독이 직접 자막 검수를 하는지 등 실제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해 묻는 질문들이 등장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