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은 장르색을 구분하기 힘든 드라마다. 유품정리사라는 낯선 직업을 가진 이들의 작업은 단순한 ‘청소업체’가 행하는 물리적 행위 이상의 의미를 획득한다. 극중 유품 정리를 ‘마지막 이사’라고 표현하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듯 유품정리사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삶과 공간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을 유족들에게 전하는 일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에겐 여러 가지 장르적 재미 혹은 휴먼 다큐멘터리를 볼 때의 감동이 복합적으로 전해진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설계한 윤지련 작가와 사연에 의미를 더하는 연출 작업을 한 김성호 감독에게서 에피소드 곳곳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설정 뒤에 숨은 의미를 들어봤다. 드라마를 더욱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유품정리사 이야기의 출발
어느 날, <꽃보다 남자>(2009), <엔젤아이즈>(2014) 등을 집필한 윤지련 작가는 자꾸만 드라마를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유품정리사 김새별, 전애원이 쓴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게 됐고, 유품정리사를 통해 우리 주변의 관심이 필요한, 소외되고 무거운 죽음을 바라보게 됐다. 무언가 다시 써볼 용기를 낸 윤지련 작가가 제작사를 찾아다니며 기획을 시작했고 10부의 대본이 완성된 이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김성호 감독이 연출자로 합류했다.
윤지련 작가는 기획 단계에서 넷플릭스측에 “왜 누군가는 죽음을 선택해야 했는가 내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범인은 누구인가에 방점을 둔 장르물로 풀지 않겠다. 이들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집중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김성호 감독 역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만들 때도 그랬듯, ‘결국 어른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이번에는 ‘이들의 죽음을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독거노인, 동성애, 동반 자살, 고독사에 관한 이야기를 그루라는 캐릭터를 통해 담담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시청자들이 사회 이슈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떠난 이들의 마지막 이사
<무브 투 헤븐>에 모티브를 제공해준 원작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는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유품정리사가 겪는 곤혹스러운 순간들을 담은 글이다. 유품정리사란 어찌 보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광경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닦아내야 하는 극한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김성호 감독도 대본을 보기 전까지는 이 직업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원작에서는 유품정리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천국으로 이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라 표현했다.
극중 유품정리사 정우(지진희)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아들 그루(탕준상)와 함께 유품정리업체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는데 이들은 단지 고인의 흔적을 수습하고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공간과 삶의 흔적이 남긴 메시지를 갈무리하고 이를 남겨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까지 한다. 실제 유품정리사들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상상력을 통해 ‘마지막 이사’의 의미가 배가된다. 극중 그루는 아빠로부터 유품 정리 전에 항상 인사를 하고 예를 갖춘 다음 일을 시작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데 그때 이렇게 인사한다. “이제부터 00님의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그루가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이유
실제 유품정리사가 일하는 모습을 면밀하게 취재한 윤지련 작가는 극중 정우와 그루 부자가 유품을 노란 상자에 담아 유족들에게 전달하는 이야기가 “어찌 보면 민폐인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인의 죽음을 서둘러 봉합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의 사연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심하면서도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이상적인 캐릭터로 정우를 창조해냈고, 그의 시선에서 아들 그루와 동생 상구(이제훈)에게 유품정리사란 직업을 물려주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에피소드를 이야기의 한축으로 설계했다. 정우는 망자의 슬픔도 유족의 슬픔도 받아들이면서 자기만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야 하는 인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루에게 현장을 읽어내는 법, 망자의 인생을 반추하며 그가 남긴 메시지를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윤 작가는 “상식적인 면을 뛰어넘어 유족에게 다가설 수 있는 인물로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지닌 아이로 설정”했다고 한다. 그가 의도했듯이, “망자와 그루 두 사람이 온전히 세상과 분리된 채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일종의 사인”처럼 헤드폰을 쓰고 클래식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 덕분에 <무브 투 헤븐>은 일종의 수사물로서의 장르적 특색도 지니게 됐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지닌 아이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수족관을 즐겨 찾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실제 있는 일이다. 어떤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상동 행동’이다.” 윤 작가는 특히 기하학적인 측면과도 연관이 있는 바흐의 음악을 즐겨 듣는 설정 등을 러프하게 만들었고, 김성호 감독이 여기에 살을 붙여 다양한 음악을 선곡했다. 김성호 감독은 클래식 음악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직접 만들어 매일 촬영 현장에 나갈 때마다 듣고 다녔다고 한다.
6개의 유품 정리 에피소드
<무브 투 헤븐>에서 정우, 그루, 상구가 ‘마지막 이사’를 행하는 유품 정리 사연은 모두 6개의 에피소드에 담겨 있다(사실 2개의 에피소드가 더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작업장에서 크게 다쳐 생을 마감한 청년, 고독사한 치매 할머니, 데이트폭력을 겪어야 했던 유치원 선생님, 사랑하는 이와 이별해야 했던 게이 의사,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을 견뎌내다 동반 자살한 노부부, 외롭게 세상을 떠나야 했던 입양아의 사연이 그것이다.
윤지련 작가는 이들의 사연을 처음에는 “3배수 이상 만들어 고민했”고 원작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 담긴 사연이 아니라 “대본을 쓰는 시점에 맞는 사회 뉴스면에서 접할 수 있는 인물들을 취재해서” 마지막 사연을 창조했다. 이들의 사연을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고 동시에 주인공들의 서사와 맞물려서 그들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배치를 하는 것”이 구성상 중요했다. 김성호 감독은 에피소드를 편집할 때도 작가의 의도를 염두에 두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사연을 시청자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편집점을 찾아나갔다”고 한다.
공간을 담는 촬영 방식도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나열하지 않아도 “고시원, 아파트, 오피스텔의 획일적이며 단절된 모습, 벽에 걸린 수도 계량기나 에어컨 등의 소품을 통해 이들이 살아온 환경이 야기시킨 것들”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고인의 공간에 도착하는 부감숏 하나에서도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