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예능 대부’ 이경규…“대단한 악역을 한번 해보고 싶다”
2021-06-09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찐경규>로 전성기 이어가는 ‘예능 대부’ 이경규

*본 기사는 <‘예능 대부’ 이경규…“코미디는 내 직업, 영화는 내 꿈”> 에서 이어집니다.

<복수혈전>의 이경규, 그 이후의 이경규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가장 정상에 있을 때 늘 새로운 걸 도전했더라. 자주 자랑하셨듯이(웃음) 오랜 무명 끝에 90년대 초 어떤 설문조사에서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도 하지 않았나. 그리고 바로 <복수혈전>의 제작과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경규가 간다-양심 냉장고’ 편으로 또 다른 정점에 올랐을 땐 김밥전문점 체인 사업을 시작했다. <복수혈전>을 만들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

=(한참 허탈한 듯이 웃더니) 내가 미쳤었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때 들어간 돈이 한 4억원 됐다. 당시 강남에 빌딩을 살 수 있는 돈이다. 그게 다 내가 광고하고 방송해서 번 출연료였다. 홀라당 다 부어넣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그게 성공했다면 난 코믹 배우, 희극 배우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매주 해야 하는 TV 코미디가 너무 힘들었다. 조금씩 자기 관리도 해가면서 가끔씩 작품 들어가는 배우의 길을 생각했는데, <복수혈전>이 망하면서 바로 돌아왔다.

-그런데 당시 자료를 좀 찾아보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망하지는 않았던데. 적어도 수십년 동안 예능 프로그램에서 후배들이 공격하고 놀리고, 쫄딱 망했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에는 관객수가 얼마로 찍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2만~3만명은 들어온 걸로 안다. 그때는 관객수 10만명 넘으면 대박이었으니까 사실 관객만 보면 그렇게까지 망하진 않았는데, 지방에 영화를 팔았을 때 받은 어음이 부도가 많이 났다. 그쪽에 있는 분들은 내가 또 영화를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영화 만들고 비디오판권 말고는 번 돈이 한푼도 없다. 그래도 비디오 판권은 좀 많이 받았는데….

-4억원 들여 2억원 수익 올린 걸로 아는데, 예능에서 그렇게 우려먹을 정도로 망한 건 아니지 않나.

=어음을 못 받아서 망했다는 게 아니라! 아니, 망했어. 망했다니까? (웃음) 일일이 다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그냥 망했다고 결론내린 거다. 후배들이 놀릴 때 ‘어음이 부도가 났네’ 이런 사정을 어떻게 다 얘기하나. 그냥 망한 거야. 절반은 성공했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작품성? 망했다. 그냥 쫄딱 망한 거다. 그때 당시에는 영화 촬영 기법의 수준이 낮았다. 지금은 촬영 분량을 다시 볼 수 있지만 당시엔 필름으로 찍었기 때문에 연기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촬영감독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잘 찍을 수가 없었다.

-<복수혈전>은 당시 서울 지역에서는 스카라극장이랑 씨네하우스에서 개봉했다.

=그때 비디오 판권을 파는 조건이 국내 7대관에서 개봉하는 거였다. 개봉관에서 개봉하지 않으면 그 비디오 판권은 부도가 날 수 있다고 계약이 돼 있었다. 7대관 중 하나인 스카라극장 사장 아들이 대학교 후배다. 흥행에 상관없이 제발 일주일이라도 걸어달라고, 아니면 비디오 판권이 날아간다고 막 부탁을 했다. 씨네하우스는 원래 영화를 잘 안 걸어준다. 아시아영화제 할 때 홍콩 배우들이 참석한 회식 자리에 갔다. 거기서 씨네하우스 사장님과 술을 먹으면서 제발 개봉해달라고 물밑작업을 했다. 몸으로 뛰어서 부도를 막았다.

-<복면달호> 캐스팅 과정이 험난하지 않았나. 시나리오만 3년 돌린 걸로 아는데, <복수혈전>이 잘 안됐다고 그간 예능 소재로 쓰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한 적은 없나.

=지나서 보니 <복면달호>는 차태현이 하게 될 운명이었다. 정말 많은 배우들에게 책을 줬지만 다 임자가 있었다. <복면달호>는 차태현이 제일 잘 소화할 영화였다. 그리고 내가 <복수혈전>이 안됐다고 예능에서 말을 했든 말든 책만 좋다면 상관이 없다. 다만 그때 당시에 <복수혈전>하고 <복면달호>, ‘복’ 자가 똑같다고 <복수혈전> 비슷하게 이 영화도 망하겠다고 한 건 있었지.

-<복면달호> 무대 인사를 120번 넘게, 거제도까지 갔다는 얘기를 듣고 개인적으론 감동적이기까지 하더라. 그렇게까지 홍보 활동에 열심히 뛰어든 영화인은 처음 봤다.

=극장에서도 나한테 얘기했다. 그만 좀 오라고. (폭소) 내가 가면 한명이라도 더 볼 수 있겠다는 마음, 스코어가 중요한 것도 있었지만, 내가 제작자니까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다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 컸다. 극장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다 갔다. 내가 이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차태현씨도 합류해서 80번 정도 무대 인사를 다녔다. 내가 무대 인사를 하면서 말을 너무 많이 하니까 극장에서 그랬다. “이제 영화 상영하니까 그만하세요.” (웃음)

-이렇게 영화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데, 고등학생 때는 시인이 꿈이었다고 어디서 본 것 같다.

=내 친구가 문예창작전에 당선돼서 그 친구랑 시화전 같은 데를 많이 다니면서 생각한 거다. 원래는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려고 했는데, 그 꿈은 접었다. 영화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서 내 손으로 영화를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다. 그러다 배우가 뭔지도 모르면서 대학교에 가게 됐다.

-그렇게 입학한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고 유현목 감독을 만났다.

=교수님이 만든 <사람의 아들>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문열 소설을 영화화한 건데 소설도 참 좋다. 기술 시사회 할 때 학생들을 데리고 영화진흥소에 가서 영화를 보여줬다. 영화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그때 당시 <십계> <쿼바디스> 같은 종교영화들이 많았다. 그 영화들보다 2배, 3배 뛰어넘는 영화라고, <십계>는 게임도 안된다고 교수님 앞에서 말씀드렸더니 굉장히 좋아하셨다.

-유현목 감독에게서는 어떤 걸 배웠나

=자기 일에 정말 몰입하는 분이다. 하루는 강의 중에 담배를 피우셨다. 음, 옛날에는 그랬다. (웃음) 그런데 분필을 피우고 계시더라고. 담배인 줄 알고 뻐금뻐금.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난다.

-교수님에게 뭘 배웠냐고 여쭤봤는데 왜 그런 일화를…. (웃음)

=그만큼 몰입을 했다는 거지! 강의 도중에 몽타주는 뭐다 하시면서 얼마나 집중하셨으면 분필을 뻐금뻐금 하셨을까.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열정적인 영화 정신을 교수님에게 많이 배웠다. 학교 다니면서 연극도 많이 했고, 선배들이 영화 찍을 때 현장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그런 경험이 내가 나중에 영화를 하게 되는 밑바탕이 됐다.

-원래 연기 전공이라서 그럴까, 연기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간간이 밝혔다. <한끼줍쇼>에서 인생 마지막 영화에서는 조폭 두목 역할을 맡아 욕이나 실컷 해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진담이었나.

=그렇지. 대단한 악역을 한번 해보고 싶다. 사람들이 내가 악역을 한다고 먼저 웃지 않도록, 나를 잘 모르는 외국 사람들이 있는 해외에서 먼저 개봉하고 싶다. 아니면 독립영화에서 악역을 연기하고 싶다.

-진짜 자기 얘기 하는 사람은 못 이긴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이경규의 예능 인생을 다 안다. 굴곡이 있었다는 것도, 40년 동안 이 업계에서 버텨왔다는 것도.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최고의 자리에 있다가, ‘이경규 위기론’이 대두될 만큼 미끄러진 적이 있었다.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이 재미있었던 것은 자신의 위기와 과거에 대한 반성을 직접 캐릭터화시켰다는 거였다. 방송에서도 직접 말한 적 있지 않나. “내가 참는 걸 못하니까, PD도 떠나가고 여자 작가들은 내가 걸어가면 마치 모세가 홍해 가르듯 피하고,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기 시작했고, 프로그램이 하나둘씩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이 프로그램엔 우리가 아는 이경규의 절박함과 성장이 드라마처럼 녹아 있어서 큰 울림을 줬다. 이런 면이 직접 연기하는, 혹은 연출하는 캐릭터에 녹아 있다면 어떨까 싶은데.

=원래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제일 불쌍하게 만드는 게 또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제일 괴롭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가 많은 다른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거다. 나이를 먹으면 얼굴이 좀 바뀐다. 일부러 보톡스 같은 걸 안 맞는다. 자연스럽게 주름살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내가 내면에 갖고 있는 악이 영화에 잘 표현됐으면 좋겠다. 언젠가 <씨네21>과 영화 주인공으로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 최민식이랑 한석규가 내 후배다. 그러니까 나도 연기를 잘하지 않겠나? (웃음)

-고현정과 김혜수도 있다!

=그렇지. 동국대 출신 배우들이 참 연기를 잘한다. 그러니까 나도…. (웃음)

-그럼 배우로서 꿈꾸는 캐릭터가 있나.

=<그랜 토리노>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역할? (웃음) 남을 위해 크게 희생하는 노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영화에서 늘 아프기만 하다. 그런 거 말고 쓸쓸하지만 뭔가 해내는 노인을 연기하고 싶다. 내가 방송계에서는 롤모델이 송해 선생님(1927년생), 외국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1930년생)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전기도 사서 쭉 읽어봤고, 어렸을 때부터 그의 영화는 거의 다 봤다. 어쩌면 연출을 그렇게 잘하는지 부럽더라. 소재 선택도 잘하는 것 같고. 평범한 이야기를 위대하게 만드는 감독이다.

-언젠가 다시 연출을 하고 싶다는 말도 꾸준히 해왔는데 언제쯤 감독 이경규를 만날 수 있을까.

=10년 안쪽으로는 할 거다, 감독과 주연을(이경규는 현재 62살이다.-편집자).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가 70대다. 윤여정 선생님이 이번에 아카데미에서 상 받았다. 그렇게 나이 먹고도 이 일을 꾸준히 하는 분들이 있다. 지금 오락 프로그램을 몇개 하고 있어서 이걸 다 하고 나면 꼭 해야지. 부지런히 연출 공부도 해야 한다.

다음 작품에서도 인간의 ‘꿈’을

-영화계는 지금 OTT 때문에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의 흐름을 어떻게 보나.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사람들은 다시 극장에 가게 될 거다. 왜냐하면 극장은 그냥 영화만 보러 가는 곳이 아니다. 극장 근처 가서 밥 먹고 데이트하고 하는 모든 코스가 포함되는 문화생활이다. 뮤지컬이나 연극처럼.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정서적인 면이 있다. 그리고 “야, 나 IPTV로 <복면달호> 봤어!” 하는 거랑 “야, 나 극장 가서 <복면달호> 봤어!” 하는 거는 느낌이 다르지 않나? (웃음) 원래 영화는 3~4명이 같이 봐야 재밌다. 그러고 극장 나와서 막 씹고 이래야 재밌지. “야! 이 영화 돈 아까워 죽겠어!” (갑자기 특유의 버럭 하는 목소리로) “야, 임마, 니가 왜 이걸 보자고 해가지고!” 이런 재미가 있지. 아니면 소주 한잔하면서 이 영화는 감독이 어떠하고, 연출이 어땠고 뭐가 좋지 않았니? 그 배우는 어쩜 연기를 그렇게 잘하냐며 커피숍 가서 할 얘기들이 있다. 방바닥에 앉아 혼자 보면 어디 씹을 데도 없다. 누구한테 전화 걸어서 갑자기 막 씹을 거야? (웃음) IPTV나 OTT에서 혼자 맥주 먹으면서 영화 보면 헬렐레 취해서 그 영화 봤는지 안 봤는지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그렇다. 돼지갈비, 삼겹살 구워가면서 극장에서 봤던 영화 얘기를 하는 낭만이 없어진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씨네21>을 위해서라도 극장 영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웃음)

=당연하지! <씨네21>이 살아야 한다! 영화 잡지도 사람들이 많이 봐야 한다. 사람들이 영화를 알고 보는 거랑 모르고 보는 거랑 천지 차이다. <씨네21>을 통해 이 감독이나 제작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고 봐야 더 재미있다. 미술관에 큐레이터가 왜 있을까? 큐레이터 빼고 보면 재미 하나도 없다. 이야~ 내가 고갱 전시를 보러 갔는데 큐레이터가 이런 설명을 해줬는데 이런 의미가 있더라고! 이래야 있어 보이지 않나? 인스타그램에도 올리고, 그런 것들이 다 문화생활이다. 전염병은 21세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존재했다. 우리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분명 다시 극장에 와서 영화를 볼 것이다. 그리고 한국만큼 스토리가 풍부한 나라도 없다.

=전세계에서 분단국가가 우리밖에 없지 않나? <공동경비구역 JSA>나 <국제시장>은 한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영화다. 여기엔 너무 많은 소재들이 있다. 내가 <조선시대 호랑이>라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영조 때 호랑이가 너무 많아서 1년에 한 500명씩 물려 죽었단다. 그래서 호랑이를 잡아오면 나라에서 상을 줬다. 호랑이가 부모를 잡아먹어서, 호랑이를 잡기 위해 활을 연습하고, 결국 그 호랑이의 배를 갈라서 어머니의 뼈를 꺼내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다. ‘효’까지 담았다. 그래서 (최)민식이한테, 민식이가 내 후배거든, 술자리에서 얘기해줬다. 민식아, 영조 때 호랑이가 말이야~. “형, 술이나 먹어.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호랑이를 어디서 구해서 찍어?” 그리고 그 기획은 날아갔다. 근데 한 3년 후에 <대호>를 했더라. 내 스토리가 훨씬 좋은데! (웃음)

-지금까지 작품을 보면 누군가를 향한 편견, 지지 않는 꿈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복면달호>는 트로트에 대한 편견이 주된 소재였고, <전국노래자랑>에는 노래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 주인공이 나온다. “코미디는 내 직업이고, 영화는 내 꿈이다. 꿈을 안고 살아가야 인생이 행복하고 즐거워지지 않을까”라고 했던 영화인 이경규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아마 다음 작품도 인간의 ‘꿈’을 다루게 될 것 같다. 이 영화가 내 세 번째 영화가 될 것이다.

-…. 그게 왜 세 번째인가.

=네 번째, 네 번째 영화! (주변 폭소) 나는 그 영화는! 정말…. 정말 잘 만들 거다. 인간의 불멸의 의지를 보여주는 그런 영화. 소재를 잘 선택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실화 바탕인데 그 인물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공부를 했다. 시나리오는 거의 다 썼고 지금 대사를 정리하고 있다. 내년 초에 100% 들어갈 거다. 진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나저나 이종필 감독이 아주 충격적이네. 흠…. 작품상을 받아…? (주변 스탭에게) 나 핸드폰 좀 줘봐. 이종필 감독이랑 통화 좀 해보게. 그사이에도 자주 만났다. 애가 참 괜찮아. (진짜로 전화를 건다.) 이 감독! 축하해! 너 백상 받았더라? 작품상! 축하해. 기자님하고 인터뷰하는 도중에 네 얘기가 나왔어. 내가 바다낚시하고 있어서 백상을 못 봤어. 축하해~. 내 영화도 한번 해야지. 내가 준비하는 게 많아~ 권(지원) 대표랑 한번 만나서 소주 한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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