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휴가' 이란희 감독, 투쟁도 노동이다
2021-07-01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서 첫 공개됐고, 2020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장편부문 대상, 독립스타상, 독불장군상을 수상한 영화 <휴가>는 천막 농성장을 벗어나 휴가를 떠난 어느 장기 해고노동자의 시간을 따라간다. 그 궤적에서 우리는 도리와 책임을 다하려는 주인공의 인간적 표정을 여러 번 마주하게 된다. 단편 <파마> <결혼전야> <천막>을 만들고 첫 번째 장편영화 <휴가>를 완성한 이란희 감독을 만났다. <휴가>는 오는 10월 개봉예정이다.

-한국영상위원회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인천영상위원회에서도 제작지원을 받았다. 인천을 기반으로 영상 활동을 하고 있고, 영화가 인천을 배경 및 소재로 하고 있어 지원 사업의 요건에 맞았다. 기획개발비를 뺀 지원금 1억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지원금이 있었기에 영화를 만들 수 있었지만 1억원만으로 장편영화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로케이션, 배우의 수, 스탭, 회차를 최소화했다. 촬영은 10회차였고 현장 스탭은 나를 포함해 14명이었다. 인천독립영화협회 분들이 후원 및 장비 대여 방식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 <휴가>의 경우 기획부터 배급까지 거의 전 과정에서 지원을 받은 셈이라 운이 좋았다. 지원의 액수나 편수가 더 늘어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작품, 의미 있는 지역영화의 발굴이 더 이루어지면 좋겠다.

-<휴가>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하루를 그린 단편 <천막>을 발전시킨 영화다.

=장편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을 찾아갔는데, 취재 과정에서 아저씨들이 답변을 너무 짧게 해 난감했다. 계속해서 천막에 찾아갈 구실이 필요하기도 해서 “농성 프로그램의 일부라 생각하고 같이 영화 찍어보는 거 어때요?” 하면서 한달에 한편씩 즉흥극처럼 단편을 찍었고, 그중 <천막>은 제대로 스탭을 꾸려 찍은 단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만 끝내는 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리 엘리어트>처럼 아저씨들이 신나게 볼 수 있는, 해고노동자 밴드들이 쿵짝쿵짝 연주도 하는 그런 장편영화를 기획했다. 결국은 <휴가> 같은 조용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말았지만. (웃음)

-2012년부터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2015년에 카메라를 들고 천막 농성 중인 그들을 만나러 갔다.

=<휴가>의 배우이자 프로듀서인 신운섭씨가 인천 부평공원에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공연을 한다고 오라더라. 강화도에 있는 중학교에서 연극 수업을 하고 두 시간 동안 버스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라 피곤하고 귀찮아 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공연을 보러 갔는데 그 광경이 참 ‘웃펐’다. 연주를 하다 중간에 누가 실수하면 한꺼번에 실수한 사람 째려보고. 그런 식으로 연주가 중단됐다 다시 시작됐다가 그냥 다음 곡으로 넘어가곤 했다. 공연 막바지엔,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농성에 연대 공연하러 가야 한다면서 공연을 끝내버렸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멋있었다. 3년간 인터넷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봤고 2015년에 그들을 만나러 갔다. 중간에 미디액트에서 장편 시나리오 수업을 들을 때, 가장 간절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선에선 그들이 가장 간절한 사람들이었다. 연영석의 <간절히>라는 노래를 좋아해서 엔딩 크레딧에 그 노래가 쫙 흐르는 영화를 생각했다. 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가, 당사자들에겐 불편한 일일 수 있겠다 싶어 애초 시나리오를 수정해 지금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천막 농성 중인 3명 중 고공 농성까지 감행하는 리더가 아니라 그 옆에서 묵묵히 동료들의 끼니를 챙겨주는 재복(이봉하)이 주인공이다.

=천막에서 생활하는 세 사람 중 농성을 하지 않더라도 나랑 가장 비슷한 사람은 누굴까 생각했을 때, 그게 재복이었다. 농성장의 남성 노동자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가 있지 않나. 덩치도 크고 그을린 피부에 결연한 얼굴 같은 것. 그런데 재복은 계속 구시렁대고 사람들 밥을 챙겨주는 인물이다. 그 모습이 영화의 남성성을 줄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혼자서 두딸을 키우는 재복이 가장으로서의 아빠가 아니라 엄마이자 아빠인 부모로 그려졌으면 했다. 그는 어디서든 밥을 한다. 제목을 <휴가>로 짓기 전 가제는 <밥줄>이었다. 밥줄 끊긴 노동자가 동료들한테 밥을 해주다가 휴가를 받아 집에 가서 딸들한테 밥을 해주고 새로운 동료와 밥을 나눠 먹고 휴가가 끝나면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가 고공 농성 중인 동료에게 밧줄에 밥을 실어 올려주는 이야기라 ‘밥줄’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해고노동자가 휴가를 받아 집에 간다는 설정이 낯설다.

=휴가는 보통 임금노동자들이 쓰는 말이다. 그래서 유급 휴가, 무급 휴가라는 구분도 있고. 장기 농성자들도 매일매일 일을 한다. 그런데 그건 노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임금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가들도 그렇지 않나. 나는 30대까지 극단에서 연극을 했는데, 엄마 입장에서 그건 일이 아니라 취미였다. 장기 농성자들의 경우 체력적으로 힘든데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투쟁했으니 휴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강남역 8번 출구 앞 천막 농성장은 실제로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고공 농성을 했던 자리이기도 하다.

=촬영을 어디서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강남역 앞 삼성 농성장쪽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촬영 당시 김용희 선생님이 CCTV 철탑에서 고공 농성 중이었고, 목숨을 걸고 싸우고 계신 분이 있는 상황이었기에 촬영도 무척 조심스러웠다. 최대한 불편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찍었다.

-첫 장편영화를 만들고 난 뒤 든 생각은.

=두 번째 영화를 못 만들면 어떡하지? (웃음) 다음 주인공은 무슨 직업을 가진 사람일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계속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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