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작품을 필모그래피에 넣고 싶었다.” 그 짧은 대답만으로도 지현우가 이 영화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빛나는 순간>에서 배우 지현우는 다큐멘터리 PD 경훈을 연기한다.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지현우’ 이후로 다시 한번 PD 역을 맡은 셈이지만, 경훈은 바다에서 연인을 잃은 슬픔을 지녔다는 차이가 있다. “그 아픔을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드라마 <메리대구 공방전> <도둑놈, 도둑님> <연애는 귀찮지만 외로운 건 싫어!>,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2> <살인소설>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그는 자신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데뷔작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꼽으며 초심을 되새긴다. “매일매일 지금 이 순간을 가장 빛나게 살고 싶다”는 배우 지현우와 나눈 대화를 전한다.
-<빛나는 순간> 시나리오를 읽고 감탄과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던데,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진옥과 경훈의 이야기가 흔한 스토리는 아니잖아요. 감독님이 그걸 글로 정말 잘 옮기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사람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임팩트가 있었고, 그만큼 내가 느낀 감정을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함께 생겼어요.
-출연 여부를 결정짓기 위해 바로 제주도로 떠나 한라산에 올랐다고요.
=원래 한라산을 좋아해요. 고민이 있을 때 산행하며 생각하길 좋아합니다. 당시 겨울이었고 날이 좋지 않아서 사람이 적었는데, 신기하게도 제작사 분들이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한라산에 다녀오니 ‘괜찮을 것 같다,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빛나는 순간> 메이킹북을 보니 시나리오 필사 노트를 따로 썼던데, 작품마다 필사를 하나요?
=작품 들어가기 전에 거치는 루틴이에요. 쓰면서 작가님이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쓰셨고, 왜 캐릭터를 이렇게 배치했는지 차분히 생각하게 되고, 쓰고 나면 작품에 대한 생각들이 확실히 잘 정리돼요.
-경훈은 상실의 아픔을 겪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밝게 생활하는 인물입니다. 그 내외면의 차이를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나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년 같은 어른이랄까, 그런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사실 경훈이 제주도로 향한 건 진옥을 인터뷰하기 위함도 있지만, 사랑하는 이를 바다에서 잃었다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거든요.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경훈의 노력, 감정들을 잘 드러내고 싶었어요.
-소준문 감독님이 경훈을 떠올리면서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주셨다던데요.
=인물의 감정선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대신 노래를 보내주셨어요. 리스트에는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조용필의 <걷고 싶다>, 최백호의 <바다 끝> 등이 있었고요. 촬영하는 동안 보내주신 노래를 계속 들었고, 노래에 담긴 감정들을 해석하고 연기로 표현하려 했습니다.
-촬영 기간 내내 식단 관리를 철저히 했다면서요.
=감독님이 원하시는 이미지가 있었고 저 역시 경훈이 소년과 어른의 중간에 있는 느낌이 들었으면 해서 다이어트를 감행했어요. 펌을 한 이유는 ‘서울에서 온 이상한 애’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웃음) 또 바닷가라 바람이 많이 불 테니 여러모로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어울릴 거 같다고 감독님과 상의를 거쳐 결정했어요.
-평소엔 밝은 경훈이 진옥과 있을 땐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유채꽃밭에서 슬픈 감정을 삼키는 순간엔 말 한마디 없어도 과거의 상실을 되새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고두심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감정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현장에서 저를 굉장히 많이 이끌어주셨거든요. 워낙 편하게 해주시니 저도 상황에 물 흐르듯 몰입해 들어갈 수 있었어요.
-바다에 빠진 신을 촬영할 땐 깊은 물속에 가만히 있어야 해서 고생이 많았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수영을 잘 못해요. 간신히 떠 있는 정도라 수중촬영 전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앞이 보이지 않는 8m 깊이의 물속에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연습 없이 임하면 수중팀에 피해가 가겠더라고요. 그래도 연습하니 좀 덜 무서웠어요. (웃음) 편집됐지만 사실 40~50초 정도 물속에 있어야 해서 쉽지 않았죠.
-경훈의 마지막 웃음엔 여러 의미가 담겨야 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경훈이 한층 성장했다는 걸 잘 보여주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감정을 잘 쌓아야 할 것 같아서 실제로도 마지막에 찍었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렸어요. 제가 허공 보고 연기하는 걸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고두심 선생님에게 제 앞에 있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생님의 손을 잡고 마지막 촬영을 마쳤습니다.
-작품 밖의 이야기도 해볼까요. 지난해 1월에 ‘사거리 그 오빠’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올해 2월엔 디지털 싱글도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드라마 O.S.T에는 여러 번 참여했지만 밴드로 활동하는 건 ‘더 넛츠’ 이후 오랜만이라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드라마는 정말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만드는 작품이지만 음악은 소수의 사람들과 하는 개인 작업에 가까워요. 제가 창작자의 위치에 서기도 하고, 배우가 아닌 원래의 지현우를 보여준다는 느낌이 강하죠. 연기와 음악을 동시에 하는 건 정말 힘들지만 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음악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음악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요.
-현재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촬영 중이죠? 이번 작품에서 맡은 이영국은 어떤 인물인가요.
=이영국은 한 기업의 회장이고, 아내와 사별하고 아이 셋을 키우는 인물이에요.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빠져 있고 혼자 아이들을 기르다보니 이따금씩 아이들과 트러블이 생기기도 해요. 아직 저도 캐릭터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라 제목처럼 신사 같은 인물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