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김영덕·남종석·모은영·박진형 프로그래머, 충격(shock)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2021-07-08
글 : 배동미
사진 : 백종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가 올해로 스물다섯돌을 맞았다. 부천의 프로그래머들은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꾸리는 자리로 올해 영화제를 소개했다. 한편의 영화 같은 개막식을 꾸리기 위해 민규동·김태용 감독에게 연출을 맡겼고, 영화제 초반부터 금기를 다룬 영화들을 모아 상영했던 ‘금지구역’ 섹션을 없애야 하나 고민하면서, 장르영화 복원작을 모으는 ‘스트레인지 오마쥬’ 섹션을 론칭했다. 영화제 개막을 이틀 앞두고 아시아권 영화를 담당하는 김영덕 프로그래머와 영어권 영화와 산업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남종석 프로그래머, 한국영화 담당 모은영 프로그래머와 유럽영화를 맡는 박진형 프로그래머를 부천에서 만났다.

-예매창이 열리자마자 26초 만에 서버가 다운됐다.

김영덕 관객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박진형 코로나19로 인해 관객이 어느 정도 반응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인데 관객도 영화제에 대한 갈증이 있구나 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초청작의 경향은 어떤가.

남종석 영어권 영화들은 여성 장르 감독의 도전이 뚜렷하다. 코미디 호러에 대한 오마주도 하나의 경향으로 느껴졌고, 캐나다의 저예산 혹은 초저예산 장르영화도 두드러졌다.

모은영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한국 장편영화의 제작 수는 줄었지만 단편 수는 오히려 늘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주제 면에서는 청년 주거와 취업 문제가 장르영화 안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

김영덕 부천영화제는 과거부터 일본영화들을 많이 선보였는데 올해는 주류 일본영화보다 새롭고 참신한 작품을 선정하려 했다. 중화권은 역시 대만영화의 감성이 세련됐고, 모두 젠더적인 이슈가 들어 있었다. 중국의 장르영화는 이제 상업영화 같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올해는 인디영화쪽으로 초청했다. 이들 영화를 제외하고 아시아권 영화의 많은 비중을 동남아영화에 할애했다. 필리핀, 타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작품이 월드 프리미어로 여럿 소개된다.

박진형 현실 속 인터넷 폭력, 이주로 발생된 폭력과 연령간 갈등, 정치적 이념의 갈등이 영화보다 무섭고 공포스럽다. 과거 장르영화들이 이런 문제를 알레고리로 풀어냈다면 최근 유럽 장르영화는 사회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고 작가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단순히 연쇄살인마를 속 시원하게 잡는 방식으로 관습적으로 끝맺는 게 아니라 애매모호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둔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랑종>을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한다.

모은영 <랑종> 제작 소식을 알고 제작사, 배급사, 감독을 동시에 공략해서 부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하게 됐다. 나홍진 감독이 부천영화제를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김영덕 단편부터 해서 나홍진 감독의 모든 전작을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했고, 상을 받았다. 이후 극장 개봉했을 때 결과도 좋았다. 나 감독은 특히 부천영화제 경쟁부문에 각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부천 초이스에서 상을 받으면 ‘이 장르의 팬들이 알아줬다’라는 가치를 갖고 있다. 영화제 초청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빠르게 오케이했다.

-나홍진 감독은 초청작 <랑종>의 제작자이기도 하지만, ‘괴담 기획개발 캠프’의 마스터클래스 강사로도 활동했다. 멘티들이 사전에 질문을 많이 준비했었는데 나홍진 감독이 말한 첫문장 때문에 이후 질문할 것들이 다 무너져버렸다고 하던데. (나홍진 감독이 멘티들에게 말한 첫 말은 “너의 피를 믿어라”였다. -편집자)

김영덕 나홍진 감독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보다 어린 세대인데, 현자 같은 느낌이었다. 1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강의하고 1시간20분 가량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나홍진 감독이 강의를 하겠다거나 가르침을 주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현자처럼 답했다. 광고계에서 일하다가 어떻게 영화를 하게 됐는지,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등 멘티들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에 나홍진 감독이 어렵지 않고 쉽게 대답했다.

-심사위원장인 토니 케이 감독은 마스터클래스 강사로도 활약한다.

남종석 지난해 11월 대만 금마장 프로젝트 마켓에서 토니 케이 감독을 만났다. 토니 케이 감독은 단순한 영화감독이 아니라 아티스트다. 뮤지션이고 화가이며, 연출한 뮤직비디오로 그래미 시상식 후보 지명을 6번이나 받았다. 토니 케이 감독의 작품 색깔이 부천영화제와 맞다고 생각했고, 마스터클래스 강사로 초청하고 싶다고 제안을 먼저 던졌다. 토니 케이 감독이 먼저 “부천영화제에서 다른 역할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해왔다. 그에게서 아시아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열망이 느껴졌다. 토니 케이 감독은 지금 막 홍콩에서 다큐 작업을 끝냈고 그의 부인도 아시아인이다.

-고 이춘연 씨네2000 대표를 추모하는 ‘한국영화의 큰 별, 이춘연을 기리며’ 섹션도 마련했다. 개막식은 이춘연 대표가 제작한 <여고괴담>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개막식 연출은 민규동·김태용 감독이, 사회는 김규리가 맡는다.

모은영 올해로 부천영화제 25주년이다. 스물다섯번의 개막식을 치르면서 개막식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마를 가진 개막식을 꾸리기 위해 회의를 많이 거쳤는데, 이춘연 대표에 대한 추모의 마음도 함께 표현하고자 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연출한 민규동·김태용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했고, 두분 다 흔쾌히 받아주었다. 특히 김태용 감독은 신작 <원더랜드> 후반작업으로 바쁜데도 낮에는 편집하고 밤 10시부터 줌으로 부천영화제와 만나서 개막식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올해도 해외 인사를 초청할 수 없는 상황인데, 산업 분야는 어떤 변화를 시도했나.

남종석 게더타운이란 버추얼 플랫폼을 사용해서 해외 영화인들이 부천영화제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게더타운에서 영화인들이 1980년대 게임 캐릭터와 닮은 아바타를 생성해 가상공간에서 직접 움직이면서 다른 영화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파티에 참석할 수 있다. 게더타운은 올해 선댄스영화제와 베를린국제영화제,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도 도입한 버추얼 플랫폼인데, 한국영화제에 도입한 것은 부천영화제가 처음이다. 스페셜 이벤트나 파티를 게더타운으로 진행하고, 댄스 파티와 가라오케도 진행할 예정이다.

-시네마란 스펙트럼에서 장르영화가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김영덕 편견을 깰 수 있다. 관용도 생긴다고 생각한다. 현실엔 이상한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다. 이들을 규범적인 생각으로 배제하지 않으면서 감싸는 포용력이 장르영화를 많이 보면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르영화에서 사회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경향도 읽어낼 수 있다. 우리 시대에 지금 어떤 것이 공포스러운 대상인지, 또 대중이 원하는 욕망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고찰할 수 있는 기회다. 내가 장르영화 찬양론자일지 모르지만 장르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오하다.

박진형 흔히 팬들이 ‘부천스러운 영화’라고 말하는 이미지나 토픽은 대범하고, 논쟁적이고, 폭력적이다. 장르영화는 스크린 폭력, 젠더 불평등 등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편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장르영화는 예민하고 변화가 빠른 영역이다. 올해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왜 금지구역 섹션이 예전만큼 세지 않지?’였다. 이제는 일반 섹션 영화들의 수위나 세기도 평균적으로 그만큼 올라가 있다. 그렇다면 이게 뭘 의미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남종석 이제는 익스트림이라고 일컬을 영화도 없다. 미국에서는 총기 살인이 일년에도 숱하게 일어나고 있고, 미투 운동 이래로 과거 감독들이 추구했던 주제와 소재를 재정립해야 하는 시기다. 충격(shock)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영덕 그런 의미에서 팬덤과 밀고 당기면서 ‘스트레인지 오마쥬’란 섹션을 신설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섹션인 ‘스트레인지 오마쥬’를 소개한다면.

박진형 복원 시장이 세계적으로 커져 있고 최근 전설의 괴작들이 복원되고 있다. 예전에는 B급영화나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는 복원의 우선순위부터 밀렸기 때문에 이들 영화를 모아서 한해 특별전으로 꾸리는 것도 어려웠다. 전설로만 들었던 장르영화와 B급영화를 부천영화제 25주년인 올해를 기점으로 방출할 예정이다. 올해 스트레인지 오마쥬는 로저 코먼의 <버켓 오브 블러드>를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고,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놀이 공원>도 볼 수 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과 전혀 다르면서도 닿아 있는 굉장히 독특한 영화다. 윤종찬 감독의 <소름>은 4K로 복원해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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