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6월 27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마인>의 결말을 보고 나면 주 집사(박성연)의 행적을 되짚고 싶어진다. 효원가에서 10년 동안 일하면서 이 집안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아들은 효원호텔, 동생은 효원미디어에서 일하는 인물. 그런 사람이 효원그룹 둘째 아들 한지용(이현욱)을 죽인 진범이었다. 드라마 첫회, 효원가 저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녹음하고 몰래 찍어왔던 주 집사는 첫째 며느리 정서현(김서형)에게 이를 들킨다.
주 집사와 서현이 짜고 다른 메이드에게 이 일을 뒤집어씌우는 것으로 일을 수습했지만 주 집사가 서현의 성 정체성을 지용에게 폭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그리고 주 집사와 서현의 거래로 시작한 드라마는 서현이 주 집사의 살인을 덮는 또 다른 거래로 마무리된다. 중요한 것은 서현의 사생활을 약점으로 삼던 주 집사가 왜 살인까지 불사하며 둘째 며느리 서희수(이보영)와 서현을 지키게 됐는지에 있다.
<마인>의 한줄 로그라인은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진짜 나의 것을 찾아가는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드라마에서 원래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진짜 나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일차적으로 던질 수 있겠다. 여기에 보편타당성을 가진 것 같은 주제를 두고 여성들의 이야기로 각을 좁힐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게 된다. 희수는 초반부터 자기 것을 지켜왔다고 스스로 믿는 인물처럼 보인다. 상류층이 선호하는 고급 운동이 아닌 야외 줄넘기로 체력을 관리하며 기존의 루틴을 고수한다. 레즈비언인 서현에겐 연락도 하지 못할 만큼 벽장 속에 묻어둔 첫사랑 수지최(김정화)가 ‘나의 것’이기를 갈망한 존재였고, 강자경(옥자연)은 “내 아이, 내 남자, 내가 잃어버린 시간”에 분노하며 자신의 아들 하준(정현준)의 튜터로 위장해 효원가에 발을 들인다. 낯선 외부인의 등장에 희수는 남편과 하준을 자기 것으로 규정하며 엄마로서 침범받지 말아야 할 영역을 주장한다.
문제는 ‘나의 것’을 독점적 소유와 병치하다 보면 같은 것을 갈망하는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건 인간의 질투심을 자극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한데, 이성애 기반의 정상 가족을 기본값으로 내세우는 세계에선 애인 혹은 부인의 자리를 침범하는 자가 특히 위협적이다(정작 <마인>의 재벌가 남성들은 “퍼스트는 비즈니스, 세컨드가 실제 부인, 서드가 진짜 애인”이라는 엄청난 전통을 갖고 있다). 남성에게 선택되기 위해, 남성에게 귀속되기 위해 여성들간에 벌어지는 악의는 일종의 자장처럼 의식을 조장한다.
한지용은 이러한 남성 지배 구조 사회를 인간화한 것 같은 캐릭터다. 그가 강자경을 튜터로 들인 건 자신의 아들이 더 완벽해지기 위해 두 엄마가 필요하다는 논리에서 비롯됐다. 타자들의 폭력을 유희로 관전하는 악취미를 가진 그는 여성들의 질투가 성장의 동력이라고 믿는, 흔한 여성 멸시자다. 한쪽이 살고 싶으면 다른 한쪽을 죽여야 한다며 여성들을 세뇌하지만 정작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먼저 적극적으로 드러내면 내친다. 남성의 성애적 선택과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레즈비언 서현 역시 가진 게 많을수록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진심을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진짜 나의 것을 찾아서
각자가 ‘진짜 나의 것’을 직시하기 위해 서로를 도와야 한다면, 그것은 지배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관계가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부계 혈통 가부장제 사회에서 주입된 여성의 소유욕은 언제나 남성 중심 지배 구조를 견고히 하는 기능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희수와 자경의 ‘엄마 싸움’은 하준이 한지용의 뒤를 이을 최적의 인재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고, 서현이 자신의 사랑과 그룹의 안위를 양자택일 문제로 각인할수록 이는 그룹을 차지하려는 지용의 야심에 유리해진다. 세 여자가 힘을 합치는 계기는 한지용을 향한 분노, 그리고 하준을 그런 아빠 밑에서 키울 수 없다는 공감대에서 시작된다.
<마인>이 그리는 모성이 배타적 소유가 아닌 자식 세대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는 자각으로 바뀔 때, 비로소 여성은 서로를 적이 아닌 보완과 연대의 상대로 받아들인다. 더불어 희수 개인은 배우로서 욕망이 남아 있다면 그의 과거 커리어를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하는 효원가와 필연적으로 인연을 끊어야 한다. 서현이 자신의 성 정체성 폭로를 두려워하지 않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는 남성의 선택을 거부한 레즈비언을 향한 사회적 멸시로부터 당당해진다. 특히 서현이 커밍아웃한 이후에도 수시로 바람을 피우던 남편 한진호(박혁권)와 이혼하지 않는 전개가 신선한데, 비즈니스로 결혼한 섹스리스 부부에게 여전히 윈윈 효과가 있다면 굳이 성 정체성을 이유로 결혼을 깰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를 착취하지 않는 이상적인 연대는 여성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진다. 처음부터 예고된 흐름이다.
무너져야 할 것이 하나씩 무너졌던 이 드라마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모든 사건은 희수가 유치원에서 무례한 일을 겪는 김유연(정이서)을 구해주면서, 서현이 자경을 튜터로 들이면서 시작된다. 마치 평온한 가정을 깨뜨리는 위험한 팜므파탈을 들인 것 같은 착시를 보이지만 이 선택은 결국 겉으로 드러난 패악보다 더한 병폐가 집안에 숨겨져 있음을 폭로하는 계기가 된다. 백미경 작가의 전작 <품위있는 그녀>는 사실상 박복자(김선아)가 우아진(김희선)을 너무 사랑해서 일어난 파국이었다. 우아진은 그의 ‘품위 있는’ 천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류사회 진출을 향한 욕망을 멈출 수 없었던 박복자의 인생을 연민하며 유일하게 혼자가 된 그를 도와줬다.
<마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여성들의 사랑이 해낼 수 있는 일을 긍정적으로 목도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찾아준 ‘진짜 나의 것’은 가부장제 시스템에서 벗어난 여성의 자립과 정체성 찾기다. 유일하게 ‘자기 것’이 무엇이었는지 모호하게 남은 유연은 공교롭게도 유일하게 상류층과의 이성애 로맨스 결말을 맺는 인물이다. 메이드 출신으로 재벌3세 수혁(차학연)과 결혼한 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또 다른 메이드를 자르며 갑질은 반복되고 잔류한다.
그러니 카덴차 살인사건의 범인이었던 주 집사의 욕망은 어디 가서 팔지도 못할 만큼 값어치가 높은 ‘블루 다이아’가 아니다. 주 집사는 그냥 자신을 독립된 주체로 봐주는 이들의 편에 섰을 뿐이며, 자신을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대한 이들을 본능적으로 도왔다. 재산과 혈통, 성별에 따른 카스트 구조를 누구보다 의식하고 가장 악랄하게 존립시켜온 남자는 그의 손에 죽었다. 그리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돕는 것은 마지막 회 부제처럼 ‘빛나는 여성들’이다. <마인>은 통속극의 뼈대 안에서 여성 연대의 필연성을 가장 흥미롭게 보여준 사례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