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토니 케이 감독, 한 번도 장르를 의식한 적 없다
2021-07-09
글 : 김소미
‘부천 초이스: 장편’ 심사위원이자 마스터클래스로 부천 찾은 토니 케이 감독
토니 케이 감독, 사진제공 SHUTTERSTOCK

과연 기인이었다. 에드워드 노튼을 네오나치로 등장시킨 데뷔작 <아메리칸 히스토리 X>(1998), 학교를 배경으로 냉담한 단절과 고독의 세태를 담은 <디태치먼트>(2011)를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진 토니 케이 감독은 일찍이 할리우드의 별종 취급을 받았던 영국 감독이다. MTV 뮤직비디오와 광고에서 보여준 비상한 비주얼 감각으로 주목받았지만, <아메리칸 히스토리 X>를 작업할 당시 스튜디오와 벌인 편집권 분쟁으로 그보다 더 크고 음울한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할리우드에서 추방당하다시피 한 세월을 지나 그는 지금 4~5개의 다국적 프로젝트를 동시에 작업하며 영화의 새로운 물결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이자 NAFF 환상영화학교 마스터클래스를 선보이는 토니 케이 감독을, 그의 70세 생일이자 영화제 개막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화상 통화로 만났다.

-올해 ‘부천 초이스: 장편’ 부문과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게 됐다. 오랜만의 대외 활동인데 간단히 소감을 들려준다면.

=솔직히 말해도 되나. 지금껏 어떤 영화제에서도 나를 심사위원으로 초청한 적이 없었다. (웃음) 내가 또 어떤 사고를 칠지 다들 두려운 모양이다. 이번에 부천에서 심사와 함께 마스터클래스도 하게 되어 기쁘다. 7월 8일이 개막인데 마침 내 생일이기도 해서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맞이하려고 한다. 아참, 오늘 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내가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 <험프티 덤프티>의 일부로 촬영하려 하는데 당신이 카메라에 찍혀도 괜찮을까?

-영광이다. (웃음)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는 주로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 예정인가. 장르에 순응하지 않고 스튜디오와 타협하지 않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기에 젊은 창작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 같다.

=장르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가? 난 도통 모르겠다. 영국에서 할리우드로 처음 건너왔을 때 나는 액션 영화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내게 흔히들 비주류의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건 내 바람이 아니라 산업이 날 원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LA의 날씨, 공기, 분위기 모든 것이 좋았지만 딱 하나 그곳의 비즈니스가 나를 힘들게 했다.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편집권을 놓고 스튜디오와 불화한 이후 투자자들, 프로듀서들이 나와의 작업을 기피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영화를 거울삼아 당대 미국인들이 숨기고 싶은 모습을 비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를 할리우드는 물론 인디신에서도 아웃사이더라고 규정해왔다. 최근 10년 사이 영화 산업이 특히나 급변했는데, 지금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체화하고 있나.

=나 역시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다. 창작자의 자유라는 측면에선 영화 산업의 상황이 오히려 좋아진 것 같다. 국가적인 개념이 무너진 에픽 디지털의 세계, 초세계화된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나 또한 변했다. 내 나이가 올해 69세인데 과거에 비해서 많이 순하고 무해해진 게 아닐까 싶다. (팔뚝 보여주며) 여기 Idiot이라고 새긴 문신이 보이나? 어렸을 때의 내가 크레이지 영 이디엇이었다면, 지금은 소프트 이디엇이다. 데뷔작 이후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쳐온 것 같다. 그게 며칠 정도로 끝났다면 좋았을텐데 20년이나 넘게 걸렸네. (웃음)

-데뷔작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 인종주의, <레이크 오브 파이어>에서 낙태 문제, <블랙 워터 트랜싯> 불법 총기 수집, <디태치먼트>에서 교육의 붕괴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회 문제를 매우 독창적으로 시각화하는 감독인데, 이전 인터뷰들을 보니 스스로를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는 예언자라고 생각하는 듯하더라.

=<아메리칸 히스토리 X>를 만들 때 나는 예언자가 될 거라고 했더니 영화사에서 “그런 건 영화로 하는 게 아니다. 목요일까지 편집 기한이나 잘 지켜주길 바란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하지만 내가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 그린 네오나치 데릭 빈야드(에드워드 노튼)를 떠올려 보라. 얼마 전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미국인 경관 데릭 쇼빈과 얼마나 겹치나. 그것이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예언을 하는 방식이다.

-어쩌다 과작의 감독이 되어버렸다. 지금 현재도 촬영 중인 다큐멘터리 <험프티 덤프티>와 더불어 다른 차기작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4년째 만들고 있는 <트레멘덤>이란 영화가 있다. 러시아의 여성 배우에 관한 이야기인데, 연기법을 새롭게 발명하고픈 바람에서부터 출발한 영화다. 지금껏 영화는 그 스타일과 플랫폼, CG-조명-카메라 등의 기술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어왔는데 유일하게 연기 스타일만이 변하지 않았다. 그 부분을 파고들어 보고 싶다. 홍콩의 가수 겸 배우인 조시 호와 함께 <조시 호 & 더 홍콩 사운드>라는 작품도 준비 중이다. 마지막으로 <커크 마이어스>라는 다큐멘터리도 촬영하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깨어난 미국인 퍼스널 트레이너의 이야기로 수많은 셀럽들이 그에게서 운동을 배워나가는 이야기다.

-유튜브, OTT 플랫폼 등의 영향으로 영화의 존재론은 복잡한 한편 희미해졌다. 1990년대에 MTV 뮤직비디오와 광고, 그리고 영화의 간극을 좁힌 장본인 중 한 사람으로서 질문하고 싶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1980년대에 MTV가 막 개국했을 때 업계에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완전한 충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사운드(노래)가 이미 정해져 있고 배우(가수)는 그에 맞춰 연기하니까 나는 비주얼만 담당하는 한계를 느꼈다. 그렇게 영화로 넘어간 것이다. 물론 현재의 상황을 그때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세상의 모든 창작자들, 시를 쓰거나 노래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조차도 일단 무조건 주목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영상이나 SNS로 자기를 노출해야 하는 것에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건 카메라 앞에 무엇이, 누가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내 생각에 핵심은 배우다. 누구나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지만, 훌륭한 배우는 드물다. 이 생각을 <트레멘덤>에 담으려 한다.

사진제공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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