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그 남자와 그 여자. 대학생 무기(스다 마사키)와 키누(아리무라 가스미)는 천생연분인 줄 알았던 자신들의 사랑도 5년이라는 청춘의 긴 시간 앞에서 서서히 시들고 만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드라마 <뷰티풀 라이프> <굿 럭!!> <오렌지 데이즈> 등 2000년대 초반에 일본 TV드라마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도이 노부히로 감독이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로 여전히 건재한 기량을 알려왔다. 스크린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 <눈물이 주룩주룩>(2007) 같은 최루성 멜로드라마로 활약했던 그는 이번 신작을 통해 트렌디한 일본 청춘 멜로물의 부활을 점치게 만든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2015) 이후 약 5년 만에 영화 신작을 작업했다. 사카모토 유지 작가의 시나리오가 스크린 복귀의 결정적인 계기였나.
=그렇다. 사카모토 유지 작가와 손 가호 프로듀서가 사카모토 작가가 집필한 새 영화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드라마 <콰르텟> 이후 사카모토 작가와 일해보고 싶다는 강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 커플이 함께 취업을 준비하고 직장 생활을 하기까지 삶과 연애의 격랑을 다루는 이야기다. 각본을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
=일기처럼 쓰여진 이번 각본은 흔한 젊은이의 흔한 사랑 이야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세대에 전해지는 보편성이 있었다.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그다지 본 적 없는 영화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TV드라마를 배출했다. 미디어가 재현하는 청춘의 러브 스토리에 있어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젊음의 낭만만큼이나 취업난 같은 각박한 현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연애’를 그리는 것은 동시에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를 그리는 것이기도 하다. 나 또한 지금은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기 힘든 시대라고 느끼고 있다. 다만 현대를 무대로 작품을 만드는 이상 언제나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고 싶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내레이션을 통해 같은 순간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상태를 분리, 반복해서 보여준다. 아무리 열렬히 사랑하더라도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연출이다.
=내레이션을 사용하는 데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물들의 독백이 이 영화만의 독특한 리듬이나 문체를 만들고, 주인공들의 감정을 다면적으로 표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겠다고 각본을 읽는 단계에서부터 확신할 수 있었다.
-나가사와 마사미, 쓰마부키 사토시, 다케우치 유코 등 일본 톱배우들의 명연기를 수집해온 감독이기도 하다. 두 배우 아리무라 가스미와 스다 마사키는 어떤 면면을 보고 캐스팅했나.
=아리무라 가스미, 스다 마사키 배우 모두 틀림없이 지금의 일본을 대표하는 20대 톱배우들이다. 스타로서의 화려함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리얼리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캐스팅 단계부터 확신했고, 촬영하면서도 계속 느꼈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에 이어 다시금 아리무라 가스미를 주연으로 발탁했다. 청순한 이미지로 부각되던 아리무라 가스미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로 기존 이미지를 깼는데, 이번에는 어떤 점에 주목했나.
=아리무라 배우와는 5년 만의 작품이다. 그사이 마냥 올곧지만은 않은 인생의 생생하고 복잡한 감정을 주눅 들지 않고 표현할 수 있게 됐더라. 그 지점에서 매일매일 놀랐고, 많은 자극을 받았다.
-무기는 그림에 소질이 있지만 결국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한다. 영화가 무기의 스케치북을 액자 미장센으로 사용하고 있고 엔딩 크레딧에는 연인의 한때가 무기의 그림으로 등장해서 한결 더 슬프게 느껴진다.
=무기는 일상의 한 장면을 일기 대신 스케치북에 그림으로 담는 인물이다. 각본에도 구글 스트리트뷰의 화면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이 무기의 일러스트로 변주되어 끝난다고 마지막 장면이 묘사돼 있었다. 그것을 읽고 지금까지 무기의 스케치북에 그려져 있을 법한 두 사람의 일상을 엔딩 크레딧에 반영하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두 사람의 일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처럼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스케치북으로 시작하는 구조가 됐다.
-이별하기로 한 두 사람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한때의 자신들 같은 젊은 커플을 보면서 조용히 눈물 흘리는 장면이 강렬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눈물이 주룩주룩> 등 배우들의 멜로드라마틱한 눈물 연기가 도이 노부히로표 멜로의 인장처럼 느껴진다.
=내게는 배우들이 연기하기에 최고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때는 세세하게 연기를 디렉션한다기보다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배우와 스탭이 높은 집중력으로 임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대부분 시간 순서대로 작업해서 패밀리 레스토랑 장면은 정말로 프로덕션의 종반부에 촬영했다. 두 사람 모두 무기와 키누로서 긴 시간을 보내온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연기의 퍼텐셜이 높았고 대부분의 컷이 원 테이크로 오케이됐다.
-무기가 구글 스트리트뷰를 보다가 과거의 두 사람의 모습이 찍힌 것을 발견하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두 사람의 관계와 앞날에 관해 결말을 열어두고 싶었나.
=단순한 추억의 조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각자의 인생에 확실하게 존재했던 소중한 시간이고, 그런 시간의 축적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무기와 키누의 앞날을 비추는 듯한 어떤 밝음을 가진 엔딩을 만들고 싶었다.
-다음 작품도 멜로드라마를 구상 중인가.
=내년에 촬영 예정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50대 남녀의 연애를 그린 이야기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