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차 보냈으니 새 차 타야지.” 조소과 4학년 실기실에 틀어박힌 유나비(한소희)에게 과 동기가 술자리 참석을 권하는 말이다. 나비의 첫 연애 상대는 똥차로 불러도 지나치지 않은 자였다. 연인과의 사적인 상황을 동의 없이 조형물로 제작해 전시했고, 콘돔을 쓰지 않아야 관계의 진실성을 증명할 수 있다며 나비를 평가하고 조종했다. 나비의 회고 속 가스라이팅 장면들에 몸서리치다 친구에게 전화해 “어제 <그것이 알고 싶다> 봤어?”라고 잘못 말했던 드라마.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알고있지만,>이다.
한국 드라마가 다루는 연애담 대부분이 똥차 다음 새 차의 희망을 말해왔다. 매력적인 ‘나쁜 남자’들이 여성주인공을 특별한 상대로 인식하고 갱생하던 흐름을 지나 <알고있지만,>은 현실의 연애로 방향을 튼다. 나비가 ‘너무 많이 떠드는’ 전 애인에게 코웃음을 날리며 헤어진 날, 바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 박재언(송강)은 새 차이긴 한데 나비만 타는 차가 아니다. 여럿을 홀리면서 연애 관계는 부정하는 부류를 두고 언젠가 임자를 만날 거라 한다. 나비는 그 임자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 게이트’로 걸어 들어간다.
여성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끌어가는 연애 드라마가 혼탁한 마음을 분석해 사랑을 정의하는 통찰의 비중이 컸다면, 나비의 그것은 ‘차라리 사랑이면 좋겠는데 아닌’ 지점에서 출발한다. 성적인 긴장을 해소하려 만나봤다가 중심을 잃고 휘둘리고 답 없는 관계의 손절매 타이밍을 노리기도 한다.
안전한 관계를 담보할 수 없다는 위험부담. 혹은 들어가는 자원에 비해 얻는 것이 적다는 판단 때문이든, 통계는 뻔한 진창에 발을 들이고 열정에 휘말리는 시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설레는 순간만큼 번뇌도 만만찮은 드라마. 헬 게이트를 열고 ‘현타’를 맞는 모험이 판타지로 소구되는 세상이 왔을까? 고용불안이 극심한 시대에 회사에서 생존하는 직장 드라마가 찾아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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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트>
왓챠
연애를 거부하고 썸만 탄다고 소문난 박재언은 목뒤에 나비 문신을 하고 집에서 나비들을 키운다. <메이트>에서 “연애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하던 사진사 준호(심희섭)도 집에서 기르는 반려 생물이 있다. 그가 소라게를 키우는 이유는 비용이 적게 들고 가성비가 좋아서란다. 잡지사 객원 에디터 은지(정혜성)와 사귄다는 말만 없을 뿐, 할건 다 하는 사이가 되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좋아하면 울리는> 시즌1, 2
넷플릭스
오는 나비들을 마다하지 않는 조소과의 꽃, 박재언은 상대방의 진심이 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배역을 맡은 송강이 안달복달하는 모습을 봐야 후련할 것 같아서 <좋아하면 울리는>의 시즌2를 다시 보았다. ‘좋알람’ 앱을 통해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시대. 황선오(송강)는 예전에 자신의 좋알람을 울리던 김조조(김소현)가 알람을 울리지 못하게 된 이유를 알고 폭주하지만, 때는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