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해 많이 상상해요. 5년 뒤쯤,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게 행복이겠죠.” 2001년 <엽기적인 그녀>로 <씨네21> 312호 커버를 장식한 전지현은 이처럼 말했다. 고작 5년뿐인가. 지난 20년 동안 그는 아찔한 와이어 액션을 선보이는 예니콜(<도둑들>)이었고, 독립운동가이자 실력 있는 저격수(<암살>)였으며, 생사초의 비밀을 품은 여진족 여인(<킹덤: 아신전>)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엽기적인 그녀> 속 ‘그녀’처럼 타임캡슐을 묻는다면 출연작 대본과 비디오테이프를 간직하고 싶다고 말한 그를 대신해 <씨네21>이 전지현의 타임캡슐을 꺼내보았다.
01
2003년 408호 기획 전지현에 대한 3가지 보고서
“<엽기적인 그녀>가 요즘 여성 캐릭터를 주도하는 영화의 시발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누구보다 먼저 그런 영화를 통해 저를 선보일 수 있었다는 데 뿌듯함이 있죠. 다시 세월을 돌이킬 수 없는 거니까, 누가 따라 한다 해도 내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 <엽기적인 그녀>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사이, 전지현은 충무로에서 나온 대본의 80%가 향하는 대세 배우가 되었다.
02
2003년 389호 <4인용 식탁> 촬영 현장
스물셋의 전지현은 기면증을 앓으면서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가정주부 연에 도전했다. <엽기적인 그녀> 때와는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였다. “정말 내가 스릴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항상 <엽기적인 그녀> 같은 것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하기로 했지만, 너무 낯설고 부담스러워서, 한 보름 동안 시나리오를 밀쳐두고 생각을 안해버리기도 했어요.” 사진 속 그는 특유의 쾌활함을 모두 걷어낸 모습이다.
03
2001년 312호 <엽기적인 그녀> 커버스타
세기말의 기운이 넘실대던 1999년 나우누리 유머란에 연재된 PC통신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엽기적인 그녀>는 테크노댄스를 추는 CF 스타였던 전지현을 단숨에 영화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술주정하다가 윽박지르고, 싱긋 웃었다가 울어버리는 솔직한 청춘 ‘그녀’는 전지현에게 더없이 잘 맞는 옷이었다. 함께 <씨네21> 표지를 장식한 배우 차태현이 “이거 전지현의 영화예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전지현은 후에 자신의 페르소나가 될 캐릭터 ‘그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자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걸 몸소 실천하는 그녀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엽기까지 사랑스럽죠.”
04
2003년 413호 <4인용 식탁> 커버스타
천송이(<별에서 온 그대>), 안옥윤(<암살>), 아신(<킹덤: 아신전>)…. 지금이야 전지현이 연기한 많은 캐릭터들이 줄줄 떠오르지만, 한동안 그는 ‘그녀’ (<엽기적인 그녀>)로 통했다.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캐릭터는 <4인용 식탁>의 연이었다. “부자연스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어서 “다른 영화보다 서너배는 더 힘들었다”는 <4인용 식탁> 촬영. “다시는 이런 영화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걸 그는 곧 깨달았다. 기존에 그가 보여주지 않은 면면을 가진 연은 한마디로 그에게 “자신감을 준 캐릭터”다.
05
2004년 455호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인터뷰
싸이더스HQ의 자사인 아이필름이 기획· 제작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와호장룡> <영웅>의 프로듀서 빌 콩이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고 한국, 중국, 홍콩에서 동시 개봉한 영화였다. <엽기적인 그녀>를 연출한 곽재용 감독이 또 한번 메가폰을 잡고 전지현이 다시 한번 그와 호흡을 맞췄다. 교복 대신 폼나게 경찰복을 입은 경진(전지현)을 두고 <엽기적인 그녀>를 언급하자 정작 전지현은 “비슷하다고요? 그래요?”(갸우뚱)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다운 솔직하고 당당한 답변. “물론 그렇게 보실 수도 있는데요, 이번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하고는 전혀 다른 영화고요, 그 자체로 충분히 완성도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06
2012년 863호 <도둑들> 커버스타
전지현이 5년 만에 출연한 한국영화 <도둑들>에서 그가 연기한 예니콜은 줄타기 전문 도둑이다. “<도둑들>의 비주얼”이란 그의 설명처럼 예니콜은 화려한 와이어 액션을 선보인다. 단지 액션뿐만 아니라 예니콜은 여러모로 그에게 애착이 가는 캐릭터였다. “땅 위에 서 있는 다른 도둑들과 달리 예니콜만 공중에 붕 떠 있더라. 나 역시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 점에서 예니콜은 나와 닮은 캐릭터다.”
07
2006년 535호 신년호 표지
<씨네21>은 왕단추에 품이 넉넉한 니트를 입고 멋스럽게 베레모를 쓴 전지현의 사진으로 2006년을 열었다. “5년 뒤쯤,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말한 5년이란 시간이 흘러 그는 네덜란드에서 정우성, 이성재와 함께 멜로드라마 <데이지>를 완성시켰다. 이후 <블러드>와 <설화와 비밀의 부채> 같은 해외 프로젝트에 주연으로 등장했다.
08
2012년 882호 기획 현장 B컷으로 돌아보는 올해 우리가 사랑한 한국영화 13편
<도둑들>은 약 130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역대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에 올랐다. 그 기록을 깬 건 2014년 <명량>이었다. <도둑들>의 흥행이 있기까지 전지현의 액션 연기가 한몫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사진 속 전지현은 예니콜의 완벽한 줄타기를 위해서 열심히 연습 중이다. 5층 높이의 건물에서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발코니 사이를 뜀박질해 오가는 모습이 아찔하다.
09
2011년 제64회 칸국제영화제 현장
2011년 칸국제영화제를 찾은 최성열 사진기자가 레드카펫에 오른 전지현을 담았다. <설화와 비밀의 부채>의 프로모션을 위해 뤼미에르 극장의 레드카펫을 밟은 그는 연한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10
2013년 890호 <베를린> 커버스타
련정희(전지현)는 북한 비밀요원 표종성(하정우)의 아내이자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의 통역관이다. 분명 직업은 통역관인데 많은 액션 신 탓인지 전지현은 부상을 입었다. “탄피가 터지면서 파편이 얼굴에 튀었”던 것. 울고 싶었지만 눈물을 삼켰던 그 액션 신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11
2015년 1013호 <암살> 커버스타
최동훈 감독과 3년 만에 재회했다. 그사이 전지현은 <베를린>과 <별에서 온 그대>를 성공적으로 선보였고, 최동훈 감독은 <도둑들>에 이어 <암살>에 그를 초대했다. “시나리오를 쓰는 데 2~3년 걸린다”는 최동훈 감독으로서는 연이어 전지현을 캐스팅한 것이다. 그가 연기한 여성 독립운동가 안옥윤은 화려했던 예니콜과 정반대의 캐릭터다. “치장하지 않는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주문에 따라 민낯으로 카메라 앞에 선 전지현은 무거운 장총을 이용해 액션 신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