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참석자 소개
김동석 어릴 때 <남북의 창>을 보다가 북한이 아프리카 우간다에 가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이야기를 접했다. 그때부터 왠지 아프리카에 호기심이 있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내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에서 아프리카 지역을 담당한다. 특히 아프리카의 내전, 분쟁, 정치 폭력, 평화, 테러 등 안보 이슈에 관심이 있다.
심용환 역사가. 역사책을 쓰고 역사를 연구한다. 현재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자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이다. tvN <어쩌다 어른>, JTBC <말하는 대로>, KBS <역사저널 그날> 등에 출연했으며 현재 MBC <심야괴담회>와 <선을 넘는 녀석들: 마스터-X>, TBS <역사스테이 흔적>에 고정 출연한다. 지난해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 올해 <1페이지 세계사 365> <1페이지 한국사 365>를 출간했다.
태상호 처음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남수단 같은 전쟁터를 다니는 종군기자로, 군사전문기자로 시작했다. 좀더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전술 훈련을 받게 됐고, 10년 정도 하다 보니 교관이 됐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뒤 특수부대를 가르치다 우연히 제안을 받고 드라마·영화의 군사 자문을 시작했다. <모가디슈>에서 총기 슈퍼바이저 겸 군사 고증을 맡았다.
<모가디슈>는 1991년 남북 유엔 동시 가입 이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외교 총력전을 벌이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아프리카는 가장 많은 유엔 가입 투표권을 가진 곳이었고,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1987년 한국 정부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외교관들을 파견한다. 이전부터 누적됐던 독재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소말리아 내전으로 이어지고, 남북은 모가디슈 탈출이라는 공동 목표하에 오로지 생존을 위해 뭉치게 된다.
모로코에서 촬영한 압도적인 카 체이싱 시퀀스를 비롯해 엔터테이닝 요소만으로도 <모가디슈>를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지금도 끝나지 않은 소말리아 내전부터 대아프리카 수교의 역사까지, 영화에는 외교·역사·군사 측면에서 뜯어볼 만한 요소가 많다. 그리고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모가디슈>가 장면 하나, 소품 하나도 허투루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동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태상호 군사전문기자와 함께 <모가디슈>를 소재로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는 긴 대화를 나눴다. 시대 배경에 대한 전문 지식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까지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을 전한다.
-영화 <모가디슈> 대담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먼저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감상을 들어보고 싶다. 각자 기억에 남는 장면도 꼽아줄 수 있나.
심용환 사실 마지막엔 눈물을 좀 흘렸다. 개인적으로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내려온 집안이다 보니 남북 관계는 외면할 수 없는 주제다. 예전에 봤던 영화들은 북한을 과장되게 묘사하거나 신파적인 느낌을 강조했다면, <모가디슈>는 우리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남북 관계를 그려낸 것 같다. 한국영화에는 김신조 사건(1·21 사태,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 콤플렉스 같은 게 있다고 느꼈다. <모가디슈>에서도 북한군은 특수훈련을 받아서 어린이도 남한 사람을 때려잡을 수 있을 거라는 식의 대사가 나오지 않나. 한국영화에서는 늘 북한 사람이 더 멋있고 싸움도 잘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모가디슈>가 그걸 깼다는 게 되게 인상적이었다. 남한의 강대진 참사관(조인성)이 북한의 태준기 참사관(구교환)과 한판 붙을 때 태권도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야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난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나 생각했다.
태상호 우리나라보다 북한이 더 세고 정신력이 강하다는 식의 콤플렉스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 스탭으로 영화에 참여하면 프로덕션 전 기간을 보게 된다. 촬영 현장에 있다 보면 이 장면이 어떻게 편집될까 되게 궁금해진다. 그래서 최종 결과물을 보고 ‘이거보다 더 재밌었는데 왜 이렇게 나왔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모가디슈>는 과정도 마음에 들었고 최종 결과물도 매우 좋았다. 이 정도면 내 돈 주고 가족을 데려가서 볼만하겠다고 느낀 몇 안되는 경우 중 하나였다. 마지막 장면이 많이 기억난다. 다른 콘텐츠였다면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다든지, 서로 부둥켜안고 운다든지, 굉장히 많은 신파적 요소를 넣었을 텐데 상당히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함께 고생하면서 전우애와 동지애가 생겼는데도 아주 깔끔하고 간결하게 싹 잘라냈다. 그런데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더 생각하게 만든다.
김동석 어제 오후에 봐서 아직 기억이 생생하다. 아프리카 내전과 안보 문제 전문가로서 보면, 바레 정권의 독재와 국민들의 저항, USC 반군을 향한 정부군의 탄압 등 소말리아 내전의 묘사가 굉장히 사실적이다. 그리고 남한 대사들이 괴한을 만나 소말리아 대통령과의 약속에 늦었을 때, 앞서 도착한 북한 대사들이 먼저 바레 대통령과 만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당시에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외교적 우위에 있었다. 그리고 남한 대사관저에서 북한 사람들을 들여보낼지 말지 고뇌하는 장면.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도 생각해봤다. 소년병들이 총을 쏘며 웃는 장면도 기억난다.
소말리아 내전의 배경
-이 자리에는 직접 고증에 참여한 분도 있다. 특히 모로코 현지에서 촬영한 소말리아 내전 묘사가 굉장히 생생한데 무기는 어떻게 공수했나.
태상호 실제 내전이 벌어지는 국가에 여러 번 간 적이 있다.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 남수단도 갔다 왔다. 그때 내가 목격했던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총 앞에서, 그리고 노리쇠(탄알을 소총의 약실에 장전하고, 사격 후에는 탄피를 약실에서 빼낼 수 있게 만든 장치) 있는 부분에서 총알이 지나가는 소리가 다르다. 이 이야기를 류승완 감독님에게 했더니 사운드를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음향기사님이 고생을 많이 했다. 촬영장에서 떨어진 곳에 가서 총 앞에서 소리를 따고, 뒤에서 따고, 옆에서 따고, 그걸 후반작업할 때 붙이는 거다. 극장에서 완성본을 보니 얼마나 공을 많이 들였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심용환 나도 기동대 출신이라 사격 훈련을 일반 보병과 다르게 받았다. 실전처럼 훈련을 받을 때 소리와 영화에서 구현된 소리가 굉장히 흡사했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아본 분들은 음향의 격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거다.
태상호 실총을 개조해서 공포탄이 나가게 하는, 완성도 높은 고가의 총을 프롭 건(Prop Gun)이라고 한다. 영화에 쓰이는 공포탄 발사 총기라고 보면 된다. 프롭 건만으로 영화를 찍으면 좋겠지만, 전세계 그 어떤 할리우드영화도 안전 그리고 예산 문제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존 윅> 시리즈도 프롭 건과 장난감 총을 섞어서 찍었다. <모가디슈>는 장난감 총은 한국에서 컨테이너로 보내고, 프롭 건은 모로코에서 직접 수입해서 촬영했다. 촬영지였던 모로코는 왕정 국가인 데다 주변에 테러 국가들이 많기 때문에 총기 관리에 무척 엄격하다. 그래서 군용차량 호위병들이 총을 촬영지까지 이동시켜주고, 그 앞에는 무장한 헌병차량이 붙었다. 공포탄도 사격 후에 탄피를 전부 주워야 한다. 그래서 모로코에서 촬영했던 할리우드영화팀이 탄피를 못 찾아서 굉장히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예상한 발사탄 수보다 몇배를 주문했기에 다 못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촬영하면서 이렇게 총을 많이 쏠 줄 몰랐다. (웃음) 그런데 <모가디슈>의 스탭들은 한국인 아닌가. 군대에서 탄피를 주워봤던, 없어진 마지막 한발까지 샅샅이 뒤졌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탄피가 모자라는 날에는 인센티브도 걸었는데, 한국인 스탭 100명을 풀어놓으니까 그걸 다 찾아내더라. 한국인이 그렇다. (웃음)
-극중 강대진 참사관은 안기부 출신이다. 실제로도 이런 경우가 있었나. 그 시대의 외교관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김동석 영화에서 보면 참사관과 서기관이 서로 싫어하고, 어떨 때는 참사관이 대사한테도 막 하지 않나. 내가 듣기로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냉전 시대 안기부의 위상이 높았기 때문에 안기부 출신이 아프리카 국가에 직접 파견되어 종종 대사보다 위에 있으려고 했다고 들었다.
태상호 그때 당시 파견됐던 분들을 흔히들 ‘정보 영사’라고 부른다. 공관으로 나가는 분들은 어느 급이 나가는지, 몇명이 나가는지 정해진 것도 없다. 탄력적으로 결정된다. <모가디슈>를 보면 왜 다른 나라에서 공작을 하는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 흔히 외교관을 ‘허락받은 스파이’라고 한다. 모든 나라의 외교관이 그런 업무를 한다. 미국 CIA도 동맹국인 한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직원을 파견한다. 당연히 해야 하는 업무라고 보면 된다. 정보 요원 중 공식적인 업무를 하는 분들을 ‘화이트’, 자기 신분을 속이고 비공식적인 임무를 하는 분들을 ‘블랙’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외 공관에 파견되어 외무부 혹은 그런 신분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레이’라고 표현한다.
-<모가디슈>는 소말리아 내전 발발 직전 상황을 다룬다. 오랜 독재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누적된 것으로 묘사되는데, 당시 실제 정치 상황은 어땠나.
김동석 소말리아는 1960년 독립했다. 원래 영국령 소말릴란드와 이탈리아령 소말리아가 있었는데, 이탈리아가 전쟁에서 지면서 신탁통치를 거쳐 지금의 소말리아가 된 거다. 1969년까지 민주주의 체제였다가 <모가디슈>에 나오는 시아드 바레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사력을 강화했다. 예전의 소말리아를 지금의 모습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소련의 지원을 받는 동아프리카의 군사 강국이었고 굉장히 중앙집권적이었다. 그런데 복합적인 이유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식민 지배의 유산으로 소말리아의 소말리족은 케냐, 에티오피아 오가덴 지역, 지부티에도 있다. 소말리족이 한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에티오피아 오가덴 지역을 침공했는데 역시 사회주의국가였던 에티오피아가 만만치 않았던 거다. 그리고 소련이 화가 나서 지원을 끊어버렸다.
김동석 바레가 소말리족 내 씨족(clan)을 차별했다. 씨족은 그냥 김해 김씨 같은 건데, 마레한 다로드족인 바레는 자기 씨족이나 친한 씨족만 우대하고 이삭, 하위예 같은 나머지 씨족은 소외시켰다. 차별받는 씨족들이 들고 일어나자 바레는 이를 억압했다. 그래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바레 정권이 반군 지지자를 포함해 5만명 이상을 학살했다. 소말리아 내전 이전부터 이미 폭력 사태가 터졌던 것이다. 그 모습은 <모가디슈>에서 한국 대사관 운전사로 일하던 솨마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소련이 지원을 끊자 소말리아는 미국 편에 선다. 미국이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해주다가 냉전 이후 미국의 입장이 바뀌면서 소말리아가 다시 어려워진다. 그런 나라들이 꽤 많았다.
태상호 군사적인 면에서 보면 소련의 지원을 받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서, 80년대 말 소말리아 정부군의 차량은 소련, 전차는 미국 것이다. 부대찌개 같은 느낌이다. (웃음)
-소말리아 내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지 않나. 소말리아 내전 때문에 소말리아 해적이 창궐했고, 10년 전 삼호 주얼리호가 해적에 납치되어 아덴만 여명 작전을 펼쳤다. 인질들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삼호 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일이 떠오른다.
김동석 <모가디슈>의 시대 배경으로부터 지금까지 소말리아는 30년째 내전 상태다. 아프가니스탄을 생각하면 된다. 영화에 나오는 USC 마하메드 아이디드 장군과 시아드 바레를 쫓아냈던 다른 세력은 이후 완전히 분열된다. 씨족끼리 싸우고, 씨족 안에서도 싸우고, 그래서 중앙정부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누가 정부군인지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임시정부가 들어서면서 내전의 양상이 폭력적 극단주의로 바뀐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등장해 ICU(Islamic Courts Union)가 2006년 모가디슈를 점령하고 몇 개월간 유사 국가로서 통치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소말리아인들은 혼란 때문에 너무 지쳤다. 미국은 ICU를 싫어하는 세력을 지원하고, 에티오피아는 소말리아에 들어가서 군사 개입을 통해 ICU를 모가디슈에서 쫓아냈다. 언론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소말리아의 테러 조직 알샤바브는 ICU의 후신이고 아직 지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소말리아는 90년대의 소말리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도 있고 대도시는 시큐리티도 보장되고 90년대보다 정세가 더 안정적이다. 올해 10월 대통령 선거도 한다. 정세 불안 때문에 모든 국민이 투표를 하진 못해도 씨족 원로들이 국회의원을 뽑고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뽑을 예정이다. 소말리아 디아스포라들도 돌아와서 비즈니스를 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심용환 사실 <모가디슈>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본 분들은, 남북 관계에 의미 있는 돌직구를 던지기는 하지만 소말리아 내전 자체를 소비하지 않았냐는 말도 한다. 그리고 소년병처럼 아픈 현실이 너무 희화화됐다고, 너무 우리 시선으로 갈취하지 않았냐는 말도 한다. 어느 정도 유효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90년대 초반 소말리아에 미군이 들어가서 희망의 작전을 펼치고, 흑인은 백인의 도움을 받고 백인이 흑인을 해방시켜주는 이미지가 그 시대에 청소년이었던 나 같은 사람에겐 분명히 있었다. 그러다 아덴만 여명 작전을 이끈 석해균 선장을 이국종 교수님이 수술하는 일이 2011년에 있었다. 1차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구원자, 2차적으로는 우리가 구원자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거다. <모가디슈>는 그런 의도가 없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인을 너무 백인적인 시각, 한국인적인 시각으로 보는, 어쩌면 우리도 이미 우월화된 관점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 있다.
태상호 실제 내전 현장에 가서 내가 느낀 것을 영화화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되게 공포스럽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전쟁은 피할 수 없으니, 그저 물이 계속 나오고 전기가 계속 나오고 병원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누가 이겨서 정권을 차지하든 자신과는 상관이 없고, 아이들이 죽기 전에 그 세 가지만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그러니 이렇게 무거운 주제로 영화를 만들면 어떻게 해도 의견은 분분할 것이다. 실제로 소년병은 어떤 존재들인가 하면, 되게 슬픈 이야기인데, 병력수를 채우기 위한 소모품이다. 소년병을 운영하는 군벌은 이들이 죽으면 다른 소년으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으니 가장 짜릿한 경험을 위해 술이나 마약을 주면서 말을 잘 듣게 만든다. <모가디슈>를 찍을 때도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있었다. 다양한 총이 있는데 소년병은 어떤 총을 갖고 있어야 하나, 키가 작고 몸도 왜소한 아이들에게 긴 총을 주는 건 좀 아니지 않느냐는 말도 나와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현실적으로 소년병은 소모품 개념이기 때문에 제일 오래되고 낡은, 버려도 되는 무기를 준다고. 전투를 서너번 하고 살아남으면 최신 병기로 바꿔준다고. 이런 존재를 극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어떻게 해도 힘들다.
심용환 예전에 어떤 일본인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다. “소년병을 인터뷰하는 게 가장 무섭다. 왜냐하면 인터뷰 도중 언제 총을 쏠지 모르니까.” 이 정도로 자아가 성숙되지 않은 소년병이 가진 잔혹함이 있다. 이 문제를 한국영화에서 처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은 나 역시 공감한다.
*본 기사는 <외교·역사·군사 전문가들이 본 '모가디슈'②…“아프리카의 역사가 남북 관계에 시사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