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외교·역사·군사 전문가들이 본 '모가디슈'②…“아프리카의 역사가 남북 관계에 시사하는 것"
2021-08-11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김동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태상호 군사전문기자
심용환, 태상호, 김동석(왼쪽부터).

<모가디슈>는 1991년 남북 유엔 동시 가입 이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외교 총력전을 벌이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아프리카는 가장 많은 유엔 가입 투표권을 가진 곳이었고,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1987년 한국 정부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외교관들을 파견한다. 이전부터 누적됐던 독재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소말리아 내전으로 이어지고, 남북은 모가디슈 탈출이라는 공동 목표하에 오로지 생존을 위해 뭉치게 된다.

모로코에서 촬영한 압도적인 카 체이싱 시퀀스를 비롯해 엔터테이닝 요소만으로도 <모가디슈>를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지금도 끝나지 않은 소말리아 내전부터 대아프리카 수교의 역사까지, 영화에는 외교·역사·군사 측면에서 뜯어볼 만한 요소가 많다. 그리고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모가디슈>가 장면 하나, 소품 하나도 허투루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동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태상호 군사전문기자와 함께 <모가디슈>를 소재로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는 긴 대화를 나눴다. 시대 배경에 대한 전문 지식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까지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을 전한다.

*본 기사는 <외교·역사·군사 전문가들이 본 '모가디슈'①…“한반도 평화와 공존의 모델, 아프리카에서 찾을 수 있다”>에서 이어집니다.

해외에서 남북 외교전이 첨예했던 이유는

-1991년 남북한은 유엔 동시 가입에 성공한다. 이전까지 해외에서 남북의 외교전이 첨예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모가디슈>에서는 서로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외신 언론을 이용하고 괴한이 습격하게 하는 등 공작까지 펼치지 않나. 그리고 소말리아가 원래 북한과 훨씬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묘사된다.

김동석 북한은 소말리아와 1960년대에 수교했고, 바레 대통령이 1972년 북한에서 훈장을 받기도 했다. 앙골라, 모잠비크, 짐바브웨 같은 나라는 북한과 정말 친했다. 모잠비크에는 ‘김일성 거리’도 있다. 1960~70년대에는 북한이 아프리카와 반제국주의, 비동맹 등 이데올로기 코드가 맞았다. 아프리카도 식민 지배를 거친 후 독립했으니까. 아프리카 입장에선 우리나라에 미군이 들어와 있고 베트남전 파병도 했기 때문에 북한과 분리해서 생각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원조를 많이 해주는 탄자니아, 잠비아, 앙골라, 모잠비크도 모두 미수교국이었다. 사람들이 이집트와 우리나라가 되게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모가디슈>에도 나오듯 이집트는 북한과 친한 나라였다. 중동 전쟁 때 이집트에 지원을 많이 해줘서 나세르, 사다트, 무바라크 대통령 모두 북한과 친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이집트에 영사관은 설치했지만 수교를 못하다가 1995년에야 한 거다. 그때 대사님이 노력을 정말 많이 해서 회고록(<이집트의 재발견>)도 썼다.

태상호 아프리카에서 북한의 영향력을 느낀 일화가 있다. 몇년 전 남수단 주바라는 도시에 갔다가 우간다 장교를 만났다. 한국(Korea)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가 아는 한국 노래가 있다는 거다. 가사 중에 갑자기 “김일성 장군~”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니 자기네 교관이 가르쳐줬다더라. (웃음) 70년대에는 북한이 소련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근데 소련과 중국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비동맹 국가쪽으로 수교국을 넓히게 된다. 이때 북한의 주체 이데올로기를 수출하게 된다. 수교 관계를 맺은 후 해외 정상을 북한으로 불러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게 하고, 이런 게 <로동신문>에 나오면 북한에서는 이른바 북한판 ‘국뽕’이 생기는 거다. 70년대까지는 군사·경제 등 모든 면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나았다. 그런데 70년대 후반 한국 경제가 좋아지면서 경쟁하기 시작한다. 북한이 수교를 맺고 그 나라에 가 있으면 우리도 가야 하고, 북한이 안 가 있어도 우리는 가야 하고, 가장 성과가 좋다고 평가받는 건 북한과 수교한 국가에 가서 우리는 수교를 맺고 북한은 단교시키는 거다.

김동석 동의한다. 그전에는 할슈타인 원칙(동독 정부를 승인하는 나라와는 외교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서독의 외교 정책)을 써서 북한과 수교하면 우리는 관계를 끊었는데, 70년대부터는 외교 전술이 달라졌다.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아프리카와 남미, 중동의 비동맹 국가들과 관계 강화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거 독립하면서 유엔에서 영향력이 엄청나게 강해졌다. 당시 한반도 문제가 유엔에 상정되면서 남북이 어떻게든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고 아프리카 대륙을 놓고 경쟁했다. 또한 모스크바올림픽 때 서방국가들이 불참하고, LA올림픽 때 공산국가들이 불참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양쪽이 모두 오게 해야 했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국가도 동유럽 국가도 다 참여할 수 있는 전방위 외교전을 펼쳐야 했다. 그러면서 대아프리카 외교도 강화하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아프리카 4개국도 방문한 거다. 나이지리아, 가나, 수단, 리비아 전부 70년대 말부터 80년대에 수교 관계를 맺었다. 북한과 친했던 나라들은 우리와 수교하게 되면서 등거리외교를 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 모델을 본받기 위해 경제적·인적 교류를 강화하고, 북한과는 군사 교류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서울올림픽 이후에는 우리가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 같은 사회주의국가들과도 수교했다.

태상호 한신성 대사(김윤석)가 바레 대통령에게 줄 선물이 담긴 가방을 여는 순간, 그 안에 한국의 70~80년대가 다 들어 있다. 서울올림픽부터 하나하나, 정말 교묘하게 보여줬다. 90년대가 정말 재밌는 시대다. 소련은 대한민국과 먼저 수교했고 북한은 미국과 수교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교적 측면에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승리한 상황이었다. 북한은 가능한 선택지가 점점 줄어든 거다. 유엔 동시 가입의 기로에서, 북한은 가입하지 못하고 대한민국은 가입하는 상황이 북한으로선 정말 싫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라는 프레임이 완성되는 일이니까. 북한도 공동 가입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 정부기관의 외교전과 신경전이 물밑에서 어마어마하게 벌어진다. <모가디슈>에서 묘사되는 것도 그런 모습이다.

심용환 우리나라나 북한도 원조 경제에 의존하던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립적인 경제 체계를 구축하면서 냉전 체제가 이 무너져도 설 수 있었지만, 북한은 중국, 소련과의 관계가 해체되면서 위기를 겪었다. <모가디슈>의 배경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흔들리고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남북기본합의서가 맺어질 때다. 또 영화에서 서기관이 “우리도 독재 정권 시절에 조작했다”라고 하니까 말조심하라고 하지 않나. 1987년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대놓고 얘기할 순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말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역으로 느꼈다. 한국사와 연결해서 보면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은 영화다.

심용환

-냉전 시대의 종말도 남북의 외교 전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김동석 냉전이 끝나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리나라도 미수교 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하게 됐다. 소서스블리 사막으로 유명한 나미비아가 원래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배하에 있었는데 1990년에 독립한다. 스와포(SWAPO)라는 무장단체를 결성한 샘 누조마가 정권을 잡으면서 남북과 동시 수교를 시작했다. 인식이 바뀐 거다.

심용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구권 사회주의국가들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 여파가 이어졌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선 외교하기가 참 편했다. 노태우 정부가 외교에 있어 평화공세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으니까. 오랫동안 누적되어 있던 공산권에 대한 두려움을,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쪽으로 국민을 설득하면서 외교 관계를 맺고 1991년 그 결실을 맺었다. 이후에 핵이 만들어지고 미국이 동아시아 외교에서 종래 입장을 바꾸면서 중국 때리기의 전초전으로 북한을 택한다든지, 중국이 새로운 강호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공백기에 많은 것을 이루어냈지만 그 기세가 좀더 이어지면 좋지 않았을까. 대표적인 이야기가 임동원의 <피스메이커> 같은 회고록에 나온다.

아프리카의 역사가 남북 관계에 시사하는 것

-<모가디슈>에는 중국, 이탈리아, 이집트, 미국 대사관도 등장한다. 아프리카 대륙은 일본이나 중국 역시 눈독 들이고 있는 지역으로 아는데, 이렇게 많은 국가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뭔가.

태상호 내가 아프리카 국가에 가보며 느낀 건 자원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가 안정되어야 자원을 개발할 수 있지 않나. 상대 국가 수반이나 행정 관료를 만나면 우리가 지켜줄 테니 투자해달라는 말을 하는데, 다음 연도에 그 사람이 없어진다. (웃음) 아프리카는 마치 계륵 같은 존재다. 이득을 볼 게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김동석 아프리카에 중국, 일본, 미국, 최근 유럽 국가들까지 진출을 강화하는 이유는 포텐셜에 있다. 자원이 많고 젊은 인구, 즉 노동력이 많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는 15~35살 인구가 절반이 넘는다. 어떤 나라는 70%다. 인구가 계속 증가하니까 소비시장도 넓다. 유엔에서 투표권이 많으니까 국제사회에서 영향력도 있다. 가령 한국인을 국제기구 수장으로 만들려면 아프리카와의 외교가 중요하다. 또 우리가 아프리카 대륙에 경제 경험을 가르쳐준다는 식으로 접근하려고 하는데, 사실 우리도 아프리카에서 배울 게 많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이웃이다. 좋든, 싫든. 일본과도 이웃이다. 좋든. 싫든. 상생과 화해라는 이슈가 남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내전이 일어날 거라고 예측했지만 그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서 흑인과 백인의 화해를 추구했다. 그래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레인보 네이션(무지개 국가, 많은 인종과 문화로 이뤄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일컬음)이 됐다.

김동석 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은, 물론 독재 때문에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후투족과 투치족으로 나뉜 종족 아이덴티티보다는 ‘위 아 르완다’, 르완다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제노사이드 가해자들을 전부 감옥에 집어넣기보다는, 주요 범죄자들은 감옥에 넣고 단순 가담자들은 가차차(잔디가 깔린 마당) 재판을 통해 죄를 고백하면 사하거나 감형해줬다. 그리고 군대를 완전히 통합시켰다. 그러면서 르완다가 경쟁력 있는 국가가 됐다. 지금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탄자니아는 연방제로 잘 굴러간다. 남북 관계에 주는 시사점이 있다. 한국에 평화와 공존 모델을 제시해줄 수 있는 나라들이 아프리카에 있다.

심용환 <모가디슈>에는 소말리아를 식민지로 삼았던 이탈리아가 나온다. 지금도 아프리카 국가들이 내전이나 경제 문제 때문에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 앞에서 큰소리를 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도 한일전은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든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웃음) 한국이 더 우월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 아프리카와 서구의 관계에서 서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을 대조하며 주목해서 볼 수 있는 게 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배워야 한다는 건 굉장히 야만적이다. 우리의 성과와 한계를 솔직하게 얘기하고 소통하면서 우리도 아프리카를 이해하고 인사이트를 얻는다면 서로 많은 것을 구체적으로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난 <모가디슈>가 그런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영화라고 기대한다.

태상호

-영화에서는 남북 모두 자국에서 보낸 구조기가 없어서 이탈리아 대사관의 도움을 받는다. 정부군과 반군 모두의 공격을 받으며 목숨을 걸고 모가디슈를 탈출한다. 지금은 전쟁이나 코로나19를 포함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외교관 및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대응책이 훨씬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을 듯하다.

김동석 감시 활동을 강화하면서 2014년부터 소말리아에서 해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은 서아프리카 기니만에 해적들이 있다. 얼마 전에도 나이지리아 근해에서 한국 어선과 상선들이 납치된 사건이 있지 않았나. 이런 일이 발생하면 외교부 본부와 대사관이 태스크포스를 꾸린다. 그리고 해당 국가 대사관, 미국이나 영국, 혹은 프랑스어권이라면 프랑스 같은 주요 국가 대사관과 협력해서 해적과의 협상을 지원한다. 코로나19가 심한 지역에는 태스크포스를 조직해서 교민들을 위해 수송기도 보낸다.

태상호 분쟁 지역에서 문제가 터졌을 때 생각보다 긴밀하게 관계 부처들이 활동하고 움직인다. 그걸 하나하나 보도하지 못할 뿐이다. 이런 게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는 2006년부터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해외에서 위험을 당한 국민이 1명이라면, 그 1명을 구출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장면을 지켜보는 건 전 국민이다. 단 1명을 위한 구출이 아닌 전 국민을 위한 구출이 되는 거다. 그래야 내가 저 상황에 처해도 국가가 나를 도와줄 거라며 세금을 잘 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준 세분에게 감사드린다. 소말리아 내전과 아프리카 정세, 남북 관계까지 다양한 방면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를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외교·역사·군사 등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시각 또한 접할 수 있었다.

태상호 영화 관련 매체와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라 재밌었다.

김동석 이번에 <모가디슈>를 보기 위해 몇년 만에 극장에 갔다. 애들 키우면서 영화를 보기 힘들었다. 아프리카 국가로 출장을 가면 에미레이트나 에티오피아 항공 같은 외국 항공사는 페르시아영화도 있고 온갖 영화가 다 있어서 그나마 비행기 안에서 많이 봤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2년째 출장을 못 가면서 영화도 보지 못했다. 이런 나를 극장으로 이끌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웃음) 한국이 소말리아 내전에 상록수부대를 파병한 적이 있다. 그때 신문에 관련 기사가 나오다가 한동안 잊혔었는데, 다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소말리아 내전을 환기시키는 영화를 너무 잘 만들어주셔서, 내게 아프리카 내전과 정치 폭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심용환 마지막이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다. 아프리카와 남북 관계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꼭 볼만한 영화다. 재밌고 생각할 거리도 많고 가슴 뭉클하다. 그리고 조인성씨가 정말 잘생겼다. (웃음)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