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대 마임이스트인 유진규는 자신의 50주년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준비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함께 무대에 오르는 해진(강해진)과 정훈(이정훈)은 걱정이 많다. 어느 날 행방이 묘연한 진규를 해진이 찾아 나서고, 진규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조르바’와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요선>은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작품세계를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형식을 섞어 담아낸 영화다. 유진규의 마임 공연과 함께 픽션과 현실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연출 방식이 눈에 띈다. 장권호 감독은 “주위의 예술인 중 캐릭터가 강하고 이야기가 재밌는 분들을 섭외해 작업을 진행”해왔다. 해당 방식을 적용한 <탄>으로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초청됐던 장권호 감독은 장편 <요선>으로 올해 다시 한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았다.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와 전작 <탄>부터 호흡을 맞춰왔는데.
=7년 전 유진규 선생님 공연의 촬영을 의뢰받았을 때부터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처음 유진규 선생님의 마임을 봤을 때 충격적이었다. 독특한 자기 세계를 잘 구축하셨더라. 선생님의 50주년이 다가와서 작품을 하나 같이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다큐멘터리로는 내면을 담는 데에 한계가 있어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특성을 적절히 섞는 작업을 해봤다.
-얼마 전 ‘유진규 마임 50년 기념공연’이 진행됐다. 영화에서도 유진규 씨의 마임 공연이 중간중간 펼쳐지는데 실제 공연이 삽입된 부분도 있나.
=선생님이 라이터를 들고 혼자 방에 서 계시는 신이 있지 않나. 그게 선생님의 ‘있다? 없다?’라는 마임이다. 불이 켜지고 꺼짐에 따라 두 개의 인격이 등장한다. 내가 ‘유진규’와 ‘조르바’라는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발상을 떠올리게 된 것도 그 마임이 결정적이었다. 유진규 선생님이 ‘있다? 없다?’를 해주시고 해진이 결국 그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신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신이다. 겨울이라 라이터가 잘 안 켜지고 선생님 입김에 라이터가 꺼지곤 했는데, 워낙 중요한 신이라 편집으로 공을 많이 들였다.
-춘천의 요선동을 배경지로 삼고 또 영화의 제목으로 <요선>을 택한 이유는.
=유진규 선생님이 청년 시절 요선동에서 추억이 많으셨다더라. 지금은 폐허가 됐지만 요선동은 최초의 재래시장이었고 춘천의 번화가였다. 선생님이 이 공간을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창의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보자고 기획을 하셨다. 나도 재래시장에 관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가서 보니 욕망이 다시 불타올랐다. 시나리오에 관한 고민이 많을 때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 마임 하실 때 그분 누구예요?” “누구긴 누구야, 나지.” 그 때 선생님의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였다. 그래서 ‘유진규 안에 또 다른 유진규가 존재한다’는 설정을 가져가면 재밌을 것 같았고, 캐릭터를 발전시켜 조르바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제목인 <요선>은 한자를 보면 요긴할 요(要) 신선 선(仙)이다. 신선 선의 한자에선 유진규, 요긴할 요의 한자에선 해진과 조르바가 보였다. 한자 안에 인물들이 다 보이는 듯 느껴져 제목으로 정했다.
-요선동의 시민들이 직접 영화에 등장한다.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 경험은 어땠나.
=장단점이 확실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보니 활어처럼 생생한 느낌을 주는데, 반대로 촬영 경험이 없어서 여러 번 다시 촬영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야외카페에서 촬영하는 신은 환상과 현실이 중첩된 듯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걱정이 많았던 신이다. 원래 출연하기로 한 팀이 갑자기 출연을 못 하게 돼서 촬영 하루 전에 구성을 전부 새로 짜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카페 영업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도 촉박했다. 음악도 그렇고 대부분 즉흥적으로 갔는데 의외로 그 신이 정말 잘 나왔다. 본 사람들이 다들 그 신이 제일 예쁘다고 하더라. (웃음)
-차기작 계획은.
=<요선>을 연출하며 만난 새로운 작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나 하고. 내가 연출한 작품들이 비슷비슷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런 차이와 반복에 관심이 많다. 그 반복 속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이 영화라는 문법을 만나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연출될 수 있는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 영화는 진짜 연기 톤도, 접근 방식도 다르다’고 느낄 수 있게 말이다.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하면서 좀 더 즉흥적이고 용기 있는 도전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