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굿바이, 서울극장' 사진으로 추억하는 서울극장의 43년
2021-09-01
글 : 배동미
2021년 8월31일 영업 종료… 사진으로 추억하는 서울극장의 43년

최초의 극장 블록화, 최초의 멀티플렉스. 서울 종로3가에 자리한 서울극장(회장 고은아, 사장 곽승남)은 유난히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 극장이다. 단성사, 피카디리극장에 비해 뒤늦게 개봉영화관 사업에 뛰어든 서울극장은 ‘막내극장’으로 출발했으나, 80~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우리의 ‘시네마 천국’이었다. 그런 서울극장이 오는 8월 31일 관객과 작별을 하고 43년간 돌렸던 영사기를 멈춰 세운다. 서울극장을 운영해온 합동영화주식회사는 지난 7월 2일 “약 40년 동안 종로의 문화 중심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울극장이 2021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영화를 매개로 관객과의 추억을 쌓았던 서울극장은 작별 인사도 영화 상영으로 대신했다. 극장은 ‘젊은 시절부터 평생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봤다’는 관객에게 보답하기 위해 지난 8월 11일부터 3주간 ‘감사합니다 상영회’를 열고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서울극장이 걸어온 길은 한국 극장의 역사 그 자체였다. 1978년 재개봉관이었던 세기극장을 인수한 고 곽정환 회장은 서울극장이란 이름을 내걸고 개봉관으로 변신을 시도했고, 전국 12개 도시별로 오직 1벌의 외화 프린트를 가질 수 있도록 규제했던 ‘프린트 쿼터’ 시절, 전국 극장들과 체인을 맺어 단관극장들을 블록화했다. 개관 10년 뒤인 1989년에는 극장을 확장해 3개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면서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변신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흐른 1997년에는 7개관으로 확장했는데, 기업이 아닌 개인이 이처럼 극장 사업을 확장한 건 놀라울 따름이다. 서울극장의 7개관 확장은 CGV강변이 문을 열기 1년 전 일이다.

서울극장은 2003년 11개관으로 확장해 완전한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탈바꿈했고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와 계약을 맺고 1개관씩 대관해주면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모두 상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 되었다. 서울극장이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건, 시대에 맞춰 부단히 변화했다는 의미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며 <씨네21>은 1978년 개관 당시 풍경부터 11개관인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서울극장의 변천사를 사진으로 정리했다. 1986년 서울극장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며 수많은 영화 포스터와 광고를 책임졌던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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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사진제공 서울극장

서울극장을 운영한 합동영화주식회사는 1964년 설립 이후 총 24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사진은 합동영화주식회사가 극장 사업에 뛰어들기 전 만든 신성일 주연의 <열정>(감독 이형표, 1967) 촬영 현장이다. 신성일과 호흡을 맞춘 배우 고은아는 고 곽정환 회장의 부인으로, 현재 합동영화주식회사의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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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사진제공 서울극장

합동영화주식회사가 제작한 유현목 감독의 <공처가 삼대>(1967). 왼쪽부터 배우 황정순, 조미령, 고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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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사진제공 서울극장
04 사진제공 서울극장

합동영화주식회사의 고 곽정환 회장은 세기상사가 소유한 세기극장을 인수한 뒤 2개월에 걸쳐 개보수 공사를 단행했다. 세기상사는 충무로에 있는 대한극장을 1번관으로, 종로3가의 세기극장을 2번관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곽 회장은 재개봉관인 세기극장을 개봉관 서울극장으로 탈바꿈시킨 뒤 1978년 9월 17일 개관작 <마지막 겨울>을 상영했다. 사진 속에서 유니폼을 입은 극장 직원들이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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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사진제공 서울극장

단관극장이었던 서울극장은 1989년 7월 29일 3개관으로 확장했다. 1관은 칸느, 2관은 아카데미, 3관은 베니스라 이름 붙여졌다.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탄생한 순간이다. 1988년 개관 10주년을 맞아 약 1년간 확장·신축 공사를 거쳐 각각 1100석, 1천석의 칸느관과 아카데미관을 탄생시켰다. 을지로3가의 명보극장이 이후 서울극장을 따라 5개관으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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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사진제공 서울극장

지금처럼 영화입장권 예매 문화가 발달하기 전, 관객은 직접 극장 매표소 앞에 줄을 서서 대면으로 표를 샀다. 인기가 많은 영화의 경우, 500~1천장 단위로 미리 표를 구매한 암표상이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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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사진제공 서울극장

1997년 서울극장은 주변 부동산을 사들여 7개관으로 증축했다. 그해 7월 19일 토요일 오후 2시, 재개관한 서울극장 로비에서 뤽 베송 감독의 팬 사인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7월 17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제5원소>가 수입사 서우영화사에 의해 8분가량 ‘가위질’ 당했다는 사실을 안 뤽 베송 감독은 노발대발하며 서울극장 팬 사인회를 비롯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7월 18일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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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사진제공 서울극장

1997년 7개관으로 오픈한 서울극장의 전경. 재개관 라인업으로 <넘버.3>와 <배트맨&로빈> <페이스 오프> <제5원소>를 갖추고 ‘이제 당신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영화가 한 극장에 존재합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신문에 광고를 게재했다. 1997년 가을부터 PC통신 예매 시스템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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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사진제공 서울극장

서울극장은 2003년 11개관으로까지 확대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기존 7개관에 더해 300석 이하의 소규모관 4개관을 열었다. 1천석 규모의 대형관보다 알맞은 좌석과 적당한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멀티플렉스 시대에 발맞춘 결과였다. 사진은 <마파도> <제니, 주노> <밀리언 달러 베이비> <히치> <나인야드2> <에비에이터>가 개봉한 2005년에 찍은 것이다.

사진제공 서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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