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좋은 사람' 김태훈, 좋은 어른이 되는 일
2021-09-08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지갑 도난 사건이 벌어진 뒤 학생들을 타이르는 경석(김태훈)을 보며 포용력 있는 선생님이라 감탄할 찰나, 딸 윤희(박채은) 앞에서 감정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모습이 이어진다. 선생님, 남편, 아버지로서 각기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경석은 관객으로 하여금 진정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지 되짚게 한다. “평소 좋은 배우, 좋은 어른에 관해 고민한다”라는 배우 김태훈의 고민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경석의 노력에 잘 스며들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최근 드라마 <킹덤> 시즌2,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나빌레라>,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미션 파서블> 등에서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 김태훈은 <좋은 사람>에서 가장 무게감 있게 자리하며 극을 이끈다. “얼마 전 여행에서 <좋은 사람>이 잘되길 바란다는 소원을 연등에 적어 띄웠다”라는 김태훈 배우. 대사의 어투 하나까지 고심했다는 말이 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을 짐작게 한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닌데 이 작품을 해도 될까” 고민했다고.

=좋은 사람에 관해 항상 고민한다. 좋은 배우도 중요한데 그 이전에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경석도 궁극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고민과 경석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조합해보려 했다.

-경석은 좋은 선생님,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 경석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개인적으론 안쓰러웠다. 아닌 척할 뿐이지 모든 사람은 다 나약한 면이 있다. 경석도 마음속에 상처가 있지만 그걸 딛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부인인 지현(김현정)의 탓으로 돌리거나 딸에게 화를 내는 등 유아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인다. 분명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하는 건 맞지만 그것만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때문에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경석을 나쁜 사람으로 정의내린 적이 있다.

-경석이 술을 좋아하고 이혼했다는 것 외에 자세한 전사는 나오지 않는다. 경석의 과거를 상상해본 적이 있나.

=내가 생각해둔 건 술을 먹으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고, 자격지심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거다. 특히 딸과 부인과의 관계에서 그렇다. 손찌검을 하는 정도의 폭력성은 없지만 술을 마시면 언성이 높아진다. 그런 면이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을 거라 생각했다.

-경석은 딸 윤희를 대할 때 서툴다. 윤희가 엄마에게 가겠다고 떼를 쓰자 화를 내고, 결국 사건의 발단이 된다.

=딸에게 애정이 많아서 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 다만 계속 단절되어 있다 보니 경석 스스로 어떻게 윤희를 대하면 좋을지 잘 모른다. 윤희에게 화를 낸 상황을 두고 나중에 지현에게 “나도 화낼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 지점이 중요하다고 봤다. 경석의 입장에선 억울한데 부인이 봤을 땐 ‘미친 거 아니야?’ 싶고, 딸은 불편함을 느끼고. 그 차이를 잘 그려내고 싶었다. 화는 어느 정도로 어떻게 내는 게 좋을까. 후반부의 그 대사와 전반부의 상황을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까. 어른스럽게 화내는 게 아니라 욱하는 마음이 작용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작은 차이지만, “너 그렇게 하면 아빠가 안 데려간다” 대신 “너 그럼 가”라고 대사를 바꿔 말하는 것을 고민했었다.

-도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윤희가 사고를 당했을 때, 경석은 학생들에게 계속 기회를 준다. 특히 세익(이효제)의 경우, “그럴 애가 아니다”라며 그를 옹호한다. 학생들에 대한 굳은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건가.

=경석은 세익이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그렇게 했을 거다. 애정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들이다. 가만 보면 공부를 잘하거나 튀는 애가 아니면 애들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해왔고, 그때 생긴 자신만의 룰을 따랐을 것이다.

-최근 <나빌레라>에서도 채록(송강)의 발레 선생인 승주를 연기했다. 처한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제자와 계속 부딪힌다는 지점이 겹쳐 보였다. 배우 입장에선 승주와 경석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승주도 선생님이긴 한데 도제 시스템의 사수에 가까운 느낌이다. 경석이 좋은 선생님, 좋은 어른의 카테고리에서 고민하는 인물이라면 승주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채록이 발레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만이 중요하다. 승주가 채록을 끌어주는 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내면까진 잘 그려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지향점이 다른 인물이었다.

-최근 옴니버스 시리즈인 <테이스츠 오브 호러>의 촬영을 끝냈다고 들었다. 남은 하반기 계획은 어떻게 되나.

=<우수>라는 독립영화의 촬영을 끝냈다. 오세현 감독 작품이고 오래된 친구 셋이서 장례식장에 가는 여정을 그린다. 나는 윤제문 선배의 후배로 등장하는데 말을 장난스럽게 툭툭 던지는 독특한 캐릭터를 맡았다. 아직 공개하긴 어렵지만 그 밖의 다양한 작품들을 준비 중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바쁘게 지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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