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 임솔아 작가…악몽이 가져다줄 수 있는 최선의 것
2021-09-08
글 : 남선우
사진 : 백종헌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 × 원작 소설 집필한 임솔아 작가와의 만남
임솔아, 이우정(왼쪽부터).

“이 소설은 열여섯살 때부터 십년 이상 꾼 악몽을 받아쓴 것이다.” 2015년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당선작 <최선의 삶>의 작가 임솔아는 수상 소감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그가 스물아홉까지 꾼 꿈에는 세명의 중학생이 나온다. 강이는 늘 구부정히 서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모델 지망생 소영은 아이들을 주도한다. 아람은 언제나 마음 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동반 가출을 끝내고 돌아온 이후, 소영이 강이를 본격적으로 따돌리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어그러진다.

이야기는 2017년 영화 제작사 마일스톤컴퍼니 김형대 대표를 거쳐 이우정 감독에게 전해졌다. 단편 <옷 젖는 건 괜찮아> <개를 키워봐서 알아요> <애드벌룬>을 찍으며, 붙어 있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온 그다. 여자 고등학생들이 공유하는 잔인한 일상과 일상적 잔인함을 포착한 <애드벌룬>은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품에 안은 수작이기도 하다. <최선의 삶>에 깃든 불안에 또다시 매혹된 이유를 되묻는 과정이 곧 영화화 작업이었다는 그는 첫 장편인 이 작품을 만들고 나서야 아팠던 청소년기를 한번쯤 정리해본 기분이라 고백했다.

이는 소설을 완성한 임솔아 작가도 비슷했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후에도 길고 긴 소설을 붙잡고 있었던 그는 <최선의 삶>의 당선 소식을 듣고 “이 악몽을 이제는 떠나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서 열여덟살부터 스물다섯살까지의 인물들이 던져졌던 폐허를 그린 그는 최근의 단편들에서 망가진 곳에서의 연대를 조금씩 시험해보고 있다. 그 작품들은 2020년 김유정문학상(<그만두는 사람들>)을, 2021년 현대문학상(<단영>)을 받아 더 많은 독자를 만났다.

오랜 시간 임솔아 작가와 이우정 감독을 사로잡았던 유년의 기억은 2021년 9월, 고등학생으로 몸집을 키운 강이(방민아), 아람(심달기), 소영(한성민)과 함께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영화 <최선의 삶>이 관객의 흉터를 건드린 다음 그만의 방식으로 새살을 돋워내길 기원하며, 우리는 새파란 표지의 <최선의 삶>을 테이블 가운데에 두고 대화를 시작했다. 작가와 감독은 입술을 뗄 때마다 둘 사이에 놓인 책을 자주 쓰다듬었다.

-책의 파란 표지와 영화의 파리한 색감이 잘 어울린다. 원작자인 임솔아 작가는 언제 영화를 처음 봤나.

임솔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다. “벽에 대고 해온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었다는 신호를 아주 오래 기다려왔다”라고 책에 썼는데, 너무 어마어마한 답을 받은 것 같았다. 사실 소설이 나왔을 때는 많이 우울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아주 깨끗하게 기뻤다. 내 이야기가 타인에게 전달되어 그 타인이 만들어낸 또 다른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는 실감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우정 이렇게 긴 소감을 듣는 건 처음이다. 부산 첫 상영 때 임솔아 작가가 오는 걸 알고 있어서 무척 긴장했었다. 영화가 끝나고도 얼굴을 못 보겠더라.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기야, 아니야?’ 이 정도 느낌으로만 감상을 물어봤다. (웃음)

임솔아 소설에 있으나 영화에 생략된 부분들 때문에 놀랐다. 나는 생략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이런 게 가능하구나 싶었다. 그런 생략에서 감독이 무엇을 중요시하고 있는지, 이야기에 대한 감독의 배려와 애정이 전달됐다.

이우정 소설과 영화의 차이를 임솔아 작가만은 알아주기를 내심 바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되는데 이 사람은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있었다.

-<최선의 삶> 영화화가 논의될 당시, 이우정 감독은 앞으로 영화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고 들었다. 그즈음 임솔아 작가는 시인과 소설가로 각각 등단 후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발표했다. 창작자로서 서로 다른 시기를 겪고 있을 때쯤 하나의 이야기가 두 사람을 연결했다.

이우정 제작사에서 출판사로 제안서를 보냈는데, 그게 작가님한테 도착하기 전에 내가 직접 만나봐야겠다 싶었다. 종이에 쓰인 내용만으로는 허락을 안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찾아보니 가까운 시기에 임솔아 작가의 북토크 행사가 있었다. 단편 <애드벌룬> DVD와 부담스럽지 않을 짧은 손편지를 들고 갔다. 달달 떨면서 전달한 기억이 난다.

임솔아 첫 시집을 낸 지 얼마 안된 2017년 5월쯤이었다. 쉬는 시간에 이우정 감독으로부터 DVD와 함께 밀크티도 받았다. 집에 가자마자 DVD를 틀어봤는데 보자마자 완전히 반했다. 내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이 감독보다 더 잘 어울릴 사람은 없겠다는 확신 같은 걸 느꼈다. 밀크티도 너무 맛있었다. (웃음) 그 후 종종 이우정 감독을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얘기를 나눌수록 30대 여성 창작자로서 비슷한 난관을 겪어왔다는 걸 알게 됐다. 영화를 그만둘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게 전혀 남 얘기처럼 안 느껴졌다. 실은 나도 2017년부터 글쓰는 걸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영화 일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니 <최선의 삶>의 영화화도 크게 기대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이우정 감독을 만나고 마음이 변했다. <최선의 삶>이 꼭 영화화되기를, <최선의 삶>이 이우정 감독으로 하여금 계속 영화를 만들게 하기를 바라게 됐다.

이우정 <최선의 삶>을 읽고 만났기 때문일까. 내게는 당시 임솔아 작가가 이미 끝까지 한번 갔다 온 후 그다음으로 넘어가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대단하고 부럽다고 느끼고 있었다.

임솔아 난 언니에게 징징거린 적이 많은데? (웃음) 그런 거 있지 않나. 주변에 속을 터놓을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더이상 부끄러운 모습을 어디에도 안 보이고 살아가게 되는. 근데 이우정 감독에게는 묘하게 자꾸 기대게 되고 부끄러운 모습도 보이게 되더라.

이우정 같이 있을 때면 이상한 해방감 같은 게 있었으니까. 서로 다른 분야에 있어서 더 그랬던 것도 같다. 한동안은 만날 때마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날 조금 부끄러워하고 그랬다. 너무 쏟아냈나 싶고.

임솔아 서로가 서로의 대나무 숲 같았다.

닫혀 있던 마음의 한 부분을 열다

<애드벌룬>

-<최선의 삶>의 각색 방향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나.

임솔아 세 번째 만났을 땐가, 둘이 합정역 근처에서 국수를 먹었다. 조금 서먹한 채로 각색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이우정 그때 솔아 작가가 가운데에 놓인 반찬을 안 먹더라. 이 어색함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지.

임솔아 낯설면 공용 반찬을 못 집어 먹는다. 백반집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웃음) 내가 먼저 이우정 감독에게 각색에 있어서 뭐든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한참 뒤에 슬쩍 혹시라도 내 의견이나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답이 없었다.

이우정 문자로 보냈는데 내가 씹었다고?

임솔아 답장으로 다른 얘기를 하던데? 그래서 혼자서 잘하려는 거구나 생각했지.

이우정 그건 오해야. 중간중간 전화 찬스라도 쓰고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왜 그 문자를 못 봤지? 제대로 봤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텐데….

임솔아 그랬구나. 어찌됐든 국숫집에서 만난 이후로 영화에 대해 상상하는 걸 지양하려고 했기 때문에 괜찮다.

-<최선의 삶>은 임솔아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자 이우정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무언가가 있다고 믿나.

이우정 너무 오랜만에 찍는 영화이자 첫 장편이라 두려움이 많았다. 나는 이 두려움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이 못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탭들, 배우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특히 강이를 연기한 방민아 배우와 개인적인 경험들까지 꺼내놓으며 시나리오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얘기를 나눴다. 살면서 한번밖에 쓸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고들 하는데, <최선의 삶> 때 민아 배우와 그 에너지를 쓴 것 같다.

임솔아 듣다 보니 영화와 소설의 차이가 느껴진다. 나는 이 소설을 기다리는 타인도, 계약 관계도 없는 채로 첫 장편을 썼다. 내가 그만두면 그걸로 끝인, 기약 없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껏 썼다. 한달음에 몇백매를 써보기도 하고, 그걸 한번에 다 지워보기도 하고. 얼마나 원고를 쓰고 버렸는지 기억도 안 난다. 문학적으로 미흡하든 아니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한 결과다. 한편으로는 처음이기 때문에 소설이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앞으로 그런 말은 안 하려 한다.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질문받는 일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경험과 소설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면 그게 뒤늦게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최선의 삶>에는 이우정 감독과 임솔아 작가가 10대를 보낸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의 질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때는 몰상식과 폭력이 노을처럼 붉게 불타던 시절이었다”라는 강이의 내레이션이 영화의 시작부터 시대상을 예고한다. 시점을 현재로 옮기지 않고 그 시절 그대로 영화에 옮긴 까닭이 있나.

이우정 프로덕션을 준비할 때 스탭들이 내게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다. 시간적 배경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설정일 수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골목길을 찍더라도 멀리 지나가는 행인의 옷이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이 원작 자체가 내 과거, 그 안의 상처와 닿아 있는 이야기였기에 나를 움직였다. 나와 같이 과거를 기억할 관객에게 닿기 위해서라도 영화는 무조건 과거의 시점을 담아야 한다고 정리했다.

-그 시절을 보내는 인물들의 나이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임솔아 작가와 이우정 감독은 <최선의 삶> 외에도 청소년을 앞세우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이우정 감독의 경우 단편 <애드벌룬>이 대표적이다. 임솔아 작가는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 수록된 단편소설 <줄 게 있어> <병원> <다시 하자고>에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시간을 담았다. 그 시간을 창작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나.

임솔아 나는 상황 파악이 되게 느린 사람이다. 말할 타이밍도 자주 놓친다. 그 상황에 내가 무슨 감정을 느껴야 했는지, 어떤 말을 했어야 했는지 뒤늦게 생각난다. 기억을 복원하고 싶다기보다는 당시를 이해하고 싶어서 복기를 계속해왔다. 그런데 이해하려는 노력을 반복할수록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밖에 없더라. 현실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이해에 번번이 실패하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다보면 그 노력이 소설을 남기는 듯하다.

이우정 무척 공감한다. 나도 집에 와서야 그때 내가 했었어야 하는 말과 행동을 일기로 쓴 다음 그걸 영화로 만든 적이 많다. <애드벌룬>을 만들었을 때는 고등학교 시절의 소문에 대해 생각하던 참이었다. 결국엔 나도 그 소문들을 옮겼을 테고, 부풀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그 시절에 되게 비겁하게 살아남은 것 같다는 죄책감, 미안함에 시나리오를 썼다.

임솔아 <최선의 삶>에는 어른들에 대한 분노가 특히 더 많이 들어가 있다. 미성년이었을 때 어른들에게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생각해도 화나는 일이 많았다. 끓는 분노를 소설에 시원하게 말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 강이 부모님은 강이에게 잘 대해주는 편이지 않나. 그런데도 강이는 집안에 끔찍함을 느낀다. 때로는 선의가 사람을 모욕적으로 느끼게 한다고, 깊게 해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현실에서 말하기 어렵다고 느껴왔다. <최선의 삶>의 강이를 포함해 내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걸 대신 말하는 역할을 맡지 않았나 싶다.

이우정 <최선의 삶>을 영화로 만들면서 청소년인 주인공 강이, 소영, 아람을 내가 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단정짓고 싶지 않았다. 배우들에게도 신의 감정을 한 문장으로 말하지 말자고 스스로 되뇌었다. 특히 강이가 계속 맞닥뜨리는 감정들이 모호하게 표현되는데, 그 모호함을 모호한 채 가지고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감독이 영화 안에서 인물들의 신별 감정을 아주 잘 계산해놓은 것 같은 영화를 별로 안 좋아했다. <최선의 삶>이 그런 영화가 된다면 재수없어 보일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촬영을 끝내고 나니 배우들에게 미안하더라. 그렇게 모든 걸 맡겨버리니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최선의 삶>

-반면 임솔아 작가는 본인이 강이와 같았던 시절을 체화한 채로 글을 적어내려가지 않았을까 예상해본다. 두 사람이 이 이야기를 소화하기 위해 서로 다른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임솔아 분명히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강이, 소영, 아람 모두 나였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강이와 소영에게 이유를 만들어줬고, 내가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상상한 이상적인 친구의 모습이 아람이니까. 타인을 어떻게든 이해하려다 보니 결국 나만 남는구나 싶었다. 나만 남기 때문에 생기는 서사의 빈 공간들로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해하지 못한 채로 무작정 채워넣을 수는 없어서 비워뒀고, 비우길 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우정 그 빈 공간들에 대해 작가도 알고 있었구나. 각색하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걸 조금 억울하다. (웃음)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강이에게 이입했고, 강이 때문에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소영과 아람에 대해 너무 몰라 큰일이라고 고민했었다. 그들의 상황을 나름대로 설명하는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했지만 결국 다 뺐다. 다행히 배우들과 그 시나리오들도 공유했기 때문에 서로 도와가며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소영을 맡은 한성민 배우는 내게 자기 속내를 얘기하거나 고민을 상담하러 오는 일이 잘 없었다. 혼자 아주 고심한 후 현장에 와서는 그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소영을 연기하더라. 성민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소영이란 인물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왔고, 그때부터 소영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의 소영은 정말 성민 배우가 만들어서 내게 보여준 거라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임솔아 사실 나를 꺼내서 썼음에도 소설 속 인물들이 내 마음대로 안 움직였다. <최선의 삶>은 처음부터 결말을 정해놓고 썼다. 강이가 소영을 죽인다는 결말. 그것만 바라며 썼는데 아무리 써도 강이가 소영을 못 죽이는 거다. 그래서 <최선의 삶>이 우울하고 어둡다는 평이 의외이기도 했다. 나는 나름대로 따뜻한 결말이라 생각했는데. (웃음) 결말을 하나의 예로 들었지만, 캐릭터가 내가 정한 방향으로 절대로 안 가는 어떤 부분들이 있었다.

이우정 따뜻함을 숨길 수 없었다는 말은 좀 충격적인데?

임솔아 쓰면서도 그게 고민이었는걸. (웃음) 강이는 소영을 죽이지도 못하고, 엄마와 마주 보면서 웃고, 읍내동을 떠나겠다는 소원을 성취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왜 따뜻한 결말을 벗어나지 못하나, 난 차가울 수가 없나 고민이었다. 이런 따뜻함을 사람들이 왜 알아보지 못하지 싶어 의아했다.

-<최선의 삶>만 읽고는 그 온도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웃음) 임솔아 작가의 소설집과 시집까지 읽고 나서야 임솔아 작가가 어떤 식으로 온기를 전하는지 파악했다. 대신 최근 작품들은 그 따뜻함이 더 선명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우정 임솔아 작가가 그렇게 변해나가는 게 진짜 신기하다. 나야말로 늘 웃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최선의 삶>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가까운 친구들이 아마 조금 놀랐을 거다. 그런데 실은 내가 어떤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를 무시하고 피해온 것이다. 20대 때는 그런 영화도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최선의 삶>을 만들면서 비로소 내가 닫아왔던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열었고, 그걸 보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수도 있었고. 그게 정말로 후련하다.

인물이 나에게 딱 와닿는 순간

<최선의 삶>

-<최선의 삶>으로 공명한 두 사람의 청소년기도 궁금하다. 대학에서 임솔아 작가는 서사창작을, 이우정 감독은 영화를 전공했다. 문학과 영화가 10대 시절에 어떤 역할을 했나.

임솔아 청소년 시절엔 그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종종 시도했지만 어른들과는 물론이고 또래하고도 대화에 자꾸 실패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려고 했는지 궁금해서 열여덟에 쓴 일기를 꺼내 봤는데, ‘내 삶의 주인은 누구?’라고 적혀 있는 거다. (웃음) 늘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말을 거니 결국엔 사람보다 책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 같다. 그런데 학교 다닐 때는 문예반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 친구들을 괜히 질투하면서 혼자 소외감을 느꼈다. ‘나도 책 좋아하는데…’ 하면서. 그래도 배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늦은 나이에 대학에 갔는데, 문예반을 그렇게 싫어하더니 버티고 버티다 들어왔다는 일종의 패배감과 실컷 읽고 배울 수 있는 기쁨이 교차했던 것 같다.

이우정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 이해되는 순간이 좋았다. 특히 인물들이 현실에서 표현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할 때가 좋았다. 어렸을 때 나는 내 안에 커져가는 나쁜 마음을 감당하기 괴로웠다.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될 것 같았고. 그래서 영화를 보고서야 감정을 표현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위로받았다. 영화 덕에 친구들에게 내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연극영화과는 계획적으로 간 건 아니고, 원래 중문과를 갔다가 인문 계열에서도 연극영화과 지원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돼 중문과를 한 학기만 다니고 다시 시험 봐서 영화과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영화에 대해 공부만 할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워크숍을 하면서 영화를 찍어야만 하는 시스템이라 어쩔 수 없이 연출을 하게 됐다. 원래 고심하기보다는 좀 생각 없이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웃음)

-두 사람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문학과 영화라는 각자의 영역에서 두개의 타이틀을 경험해왔다는 점이다. 임솔아 작가는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 중이고 이우정 감독은 연기자로도 여러 독립영화에 얼굴을 비쳤다.

이우정 연기는 그 어떤 계획도 욕심도 없이 친구들이 부를 때 잠깐잠깐 한 게 다다. 다른 감독들은 현장에서 어떻게 하나, 배우들한테 뭐라고 하나 궁금해서 가곤 했다. 그리고 워낙 현장의 에너지를 좋아한다. 내 작품의 현장 말고. (웃음) 지금도 누가 불러주면 연기하러 갈 생각이 있다. 욕심 없이 하니 재밌기도 하고. 어차피 내가 못할 역할이 들어오진 않을 거다.

임솔아 나는 혼자 읽고 혼자 쓰다 보니 재밌는 글이라고만 생각했지 시, 소설, 희곡을 구별해서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썼는데도 내가 소설을 쓴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내가 소설도 쓰고 시도 쓴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한참 지나서야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해줘서 내가 둘 다 쓴다는 걸 알았다.

-이우정 감독은 2012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한 감독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이상한데 보고 있으면 다 이해가 가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고 했었다. <최선의 삶>이 이우정 감독에게 그런 이야기가 되어준 것 같다. <최선의 삶>을 끝낸 요즘은 어떤 시나리오를 바라고 있나.

이우정 10년 전에 내가 그런 말을 했다니! 영화를 볼 때 그런 순간을 되게 좋아한다. ‘뭐지?’ 하면서 영화를 보다가 어느 순간 인물이 나에게 딱 와닿으면 ‘만세!’를 외친다. 그때부터는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하면서 인물을 응원한다. 여전히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다음에는 아이폰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웃음) 내 영화에 한번도 스마트폰이 나온 적이 없다. <최선의 삶>을 찍으면서 과거는 내게 한번 정리가 된 기분이다. 그러니 아이폰이 나오는, 현재 시점의 가볍고 웃긴 영화가 너무나 찍고 싶다.

-임솔아 작가의 소설 세계는 자전적 색채가 짙었던 영역에서 연대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영역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두 번째 소설집이 묶일 시점이 되었는데,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임솔아 단편 원고가 다 모여서 단편집 출간 일정을 논의 중이다. 그리고 올해 초부터 목표가 장편을 쓰는 거였다. 오랫동안 장편으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못 써도 괜찮다고도 생각한다. 그 점이 <최선의 삶>을 쓸 때와 달라진 마음가짐이다. 앞으로는 좀더 내 글과 내 삶이 가까워지길 바란다. 내 삶과 떨어진 채로 내 소설만 유려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우정 영화가 나오고, 이렇게 둘이 앉아 이야기할 날이 오다니 너무 기쁜 시간이었다. 같이 사진도 찍고. 재밌었다.

임솔아 집에 가는 길이 걱정될 정도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웃음) 친구 때문에 오래 꾼 악몽이 내게 이우정 감독이라는 새 친구를 만들어줬다. 악몽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것 중에 이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그게 <최선의 삶>이 내게 미친 가장 큰 파장일 것이다.

이우정 하하. 정말 좋아서 웃음이 나온다. 그 마음, 마음껏 더 얘기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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