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코다①]이길보라 감독과 '코다' 션 헤이더 감독이 주고받은 편지
2021-09-14
글 : 김소미
코다의 눈으로 영화 <코다>를 바라보다

코다의 눈으로 그려낸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미국영화계를 들썩이고 있다. <코다>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감독상, 관객상, 앙상블상을 수상해 선댄스 37년 역사상 최초로 US 드라마틱 부문 4관왕을 달성했고, 애플TV는 아마존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코다>의 글로벌 방영권을 2500만달러(약 280억원)에 사들였다. 역대 선댄스 출품작 판매가로는 최고가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작가 션 헤이더가 프랑스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각색한 이 작품은, 농인 부모가 낳은 청인 자녀인 코다(CODA) 루비(에밀리아 존스)의 음악대학 오디션 도전기를 그린다.

어부의 딸로 가족의 생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통역사를 맡아온 루비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자기만의 길을 가기 위해 기꺼이 가족과 대치하는 시간을 갖는다. 로맨스가 섞인 10대 소녀의 성장담이자, 유일한 청인 구성원을 바라보는 농인 가족의 감정적 딜레마를 파고드는 드라마인 <코다>를 보고 곧장 한 사람이 떠올랐다. 코다의 입장은 물론 엄마 재키(말리 매틀린), 아빠 프랭크(트로이 코처), 오빠 레오(대니얼 듀랜트)의 삶에도 풍성한 레퍼런스를 갖고 있을 한국의 감독. 농인 부모의 세상을 코다의 시선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소리>(2014)의 이길보라다. 현재 한국 코다 모임인 ‘CODA KOREA’의 대표를 맡아 2023년 한국에서 열릴 코다 인터내셔널 컨퍼런스를 준비 중인 이길보라 감독은, 같은 코다로서 주인공에게 깊이 감정이입했다며 방대한 분량의 서신을 작성해 <코다> 제작진에 보내는 실험에 동참해주었다. 션 헤이더 감독과 <작은 신의 아이들>로 1986년 아카데미 영화제 역사상 최연소이자 농인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말리 매틀린이 먼 곳에서 날아온 반짝이는 신호에 역시나 즐겁게 응답했다.

이길보라 감독이 션 헤이더 감독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으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길보라입니다. 코다 정체성을 기반으로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책을 쓰고, 논픽션 장르의 영화를 연출합니다. 영화 <코다>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처음 알게 되었어요. 감독님이 직접 ASL(American Sign Language, 미국 수어)과 음성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영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저 자신이 코다이기 때문에 어떤 영화일지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코다가 자신의 부모는 이해하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고 그로부터 갈등이 생긴다는 설정이 이제는 약간 뻔하지 않나, 혹시 청인들이 농인과 코다를 대상화했으면 어쩌지, 하는 우려가 앞섰습니다. 또한 목소리를 내어 부르는 음악은 청인들 기준에서는 아름답지만 농인들에게는 재미가 없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는 농인 가족과 살아가는 OHCODA(Only Hearing CODA)인 루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요. 코다 내부에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는데, 특히 OHCODA인 경우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이기 때문에 형제자매가 있는 코다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더욱이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모든 농인 배역을 농인이 연기했다는 점입니다! 청인 감독으로서는 획기적이고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요. 투자자나 제작자 입장에서도 농인 배우를 고용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법합니다. 이 과정에 어떤 고민과 결정이 있었나요?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제 막 관련 논의들을 시작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여전히 농인과 수어는 자주 도구화되고 대상화되어 소비됩니다. BTS가 최근 <Permission to Dance>라는 곡에서 국제수어를 사용한 안무를 선보여 화제가 되었는데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인터뷰를 농인 당사자에게 직접 듣지 않고 수어통역사에게만 물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지요.

저는 대학 학부 과정에서 영화를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저의 부모님이 등장하는 영화를 찍을 때, 수어를 쓰는 사람을 촬영할 때는 숏 사이즈가 달라지고 인터뷰 중 인서트 컷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얼굴 표정과 손으로 말하기 때문에 이미지를 중간에 추가하면 말이 끊기는 효과가 나더라고요. 제가 학교에서 배운 영화 제작 문법이 완전히 청인 중심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감독님은 어떠셨나요? 듣기로는 청인 제작진이 처음으로 농인과 작업하면서 여러 어려움에 봉착했다고요. 촬영감독은 수어가 잘 보일 수 있도록 숏 사이즈를 조정했고, 조명감독은 배우들의 손이 역광으로 가려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 신경 썼고, 의상팀은 수어를 하는 데 불편한 옷은 피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이 영화는 농인, 코다가 등장하는 영화인 동시에 어촌의 위기를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다른 인터뷰를 읽어보니 감독님이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의 해안 마을에서 자랐고, 상업적 어업 규제로 피해를 입은 소규모 어부들에 대한 사안에 있어 자신을 환경운동가라고 명명하셨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업과 농인이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저희 아버지는 젊었을 적 농인 친구들과 가구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일터의 시끄러운 소리들이 농인들에게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코다 역할의 캐스팅에 관해서도 물어보고 싶어요. 농인 배우가 농인 배역을 연기한 것에 대해 <코다>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동시에 ‘코다’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영화에서 코다 역에 실제 코다를 캐스팅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코다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꼭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이 해당 배역을 맡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농인과 수어, 장애를 도구화했던 비장애인 중심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 문제 제기 또한 중요하게 고려해볼 만합니다. 미국 수어를 9개월 배운, 청인 배우인 에밀리아 존스가 코다 역을 맡아 연기했는데요. 감독님은 캐스팅 당시에 어떤 것들을 고려하셨는지도 궁금해지네요. 그럼 답신을 기다리며 이만 편지를 줄입니다.

션 헤이더 감독이 이길보라 감독에게

많은 코다들이 농인 커뮤니티 안에서 성장해서 문화적으로는 스스로를 농인처럼 느끼지만, 궁극적으로는 농인과 청인 양쪽 세계에 모두 속해 있으며, 때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낍니다. 두개의 세계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그 감각이 <코다>의 캐릭터에도 흥미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었지요.

제작 과정에선 여러 가지 발견들이 있었습니다. 감독인 저는 감정적인 순간에 클로즈업을 사용하고 싶지만, 프레임 안에 배우의 손을 둘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말을 끊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액션’ 혹은 ‘컷’ 구호를 외치는 방식, 배우들의 시야에 항상 통역사를 두게 하는 방법 등을 고민했습니다. 주변이 어두운 야간 촬영 때 통역사의 손을 또렷하게 볼 수 없으면 배우들이 혼란스러워한다는 점을 깨달았던 순간도 기억납니다. 코다인 통역사 중 한명이 허리에 조명을 설치해서 손을 비출 수 있도록 했었지요. 배우의 대사를 지키고 싶다면 숏을 결코 끊을 수 없다는 점도 알게 됐습니다.

청인 배우들을 연출할 땐, 한 장면 안에서 다른 배우의 얼굴로 컷을 바꿔도 프레임 바깥에서 상대편의 소리가 이어집니다. 반면 이번 영화에서는, 언어를 알아들으려면 발화 중인 배우에게 시선이 계속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런 점은 확실히 다른 편집 스타일과 리듬을 불러냈죠. 한번은 수어 감독인 앤 토마세티가 세트장을 보고 농인들은 가구를 절대 이런 식으로 배치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기도 했어요. <코다>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거실에서 출입구를 등지도록 소파를 배치했었는데요. 토마세티는 거실 구조를 보다 원형에 가깝게 만들어서 모두가 서로의 수어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루비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사운드를 제거하려 하자 사운드 디자이너들이 그 장면을 완전한 침묵 상태로 두지 말라고 저를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최소한의 잡음이나 웅성대는 소리, 혹은 어떤 다른 소리를 듣고 싶었나봐요.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게 청인들이 침묵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일 뿐이고 농인의 경험이나 관점은 아니라고 믿었죠. 한편 가족 내 유일한 청인인 코다 루비의 역할은 17살이라는 나이대, 수어 능력, 놀라운 음색, 연기력 등 여러 자질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사람을 찾아야 해서 캐스팅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엔 이 역을 위해 100여명의 여성을 만났고 그들 대부분이 실제 코다였어요.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들 중 누구도 가창력이 있거나, 배우 에밀리아 존스처럼 루비 캐릭터를 파악한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캐스팅의 적정선과 진정성을 설명하기란 참 어렵네요. 에밀리아는 농인 코치, ASL 마스터와 9개월 동안 수어를 열심히 훈련했고 현장에도 수많은 코다 통역사들이 포진해 있었습니다. 감독으로서 이 영화에서 에밀리아의 연기가 진실했으며 많은 코다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리라 기대합니다. <코다>를 만들면서 일터에서 ASL을 사용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수어는 스크린을 통해 탐구하기에 놀라울 정도로 시각적인 언어이며, 그 언어의 힘을 빌려 제가 감독으로서 일해온 시간 중 가장 협업적인 현장을 겪을 수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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