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1995년부터 2020년까지, 정훈이만화로 돌아보는 한국영화
2021-09-24
글 : 송경원
글·사진 : 오계옥
2023년 3월20일까지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열리는 <정훈이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

되돌아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2020년 12월, <씨네21>에 연재했던 ‘정훈이만화’가 장장 25년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2021년 9월, 미처 정훈이를 떠나보내기 힘든 이들, 한국영화의 기억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환송회가 열린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021년 9월 14일부터 2023년 3월 20일까지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신규 기획전시 <정훈이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는 1995년 만화잡지 <영챔프> 공모전에서 데뷔한 직후 <씨네21> 연재를 시작하며 번뜩이는 유머와 풍자로 한국영화와 함께 뒹굴어온 정훈이만화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정훈이 작가가 1995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영화의 특별한 순간들을 정리한 벽면 만화는 그야말로 한국영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장면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연재는 끝났지만 기억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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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하고 딱딱하지 않은 전시 제목을 고르고 싶었다. 원고를 그릴 때 방구석에서 뒹굴뒹굴거린다고 볼 수도 있으니 괜찮은 어감인 듯싶다. 처음 연재할 때만 해도 25년을 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한국영화와 함께 ‘살아온’ 정훈이만화는 그 자체로 한국영화의 산증인이라 불러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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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은 원래 실제 공간을 옮겨오고 싶었는데 그림으로 대신했다. 의자 위 강아지까지 실제 내 작업 책상 모습 그대로다. 연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컴퓨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수작업 드로잉은 1999년 이전 초기 버전만 일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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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언어유희, 엉뚱한 상상력 등 다양한 매력이 있지만 정훈이만화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촌철살인의 풍자에 있다. 그중 이번 전시에선 <선생 김봉두> <아마존의 눈물> <도둑들> <소리꾼> <부산행>을 소개한다. “풍자만화는 워낙 휘발성이 강하다. 조금만 지나고 웃음 코드가 달리질 수밖에 없기에 비교적 지금 감각에 맞거나 아직 웃을 수 있는 작품 중심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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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정훈이만화의 대표작을 ‘엉뚱한 상상’, ‘언어의 유희’, ‘풍자와 해학’, ‘패러디 클라쓰’, ‘유머의 진수’ 등 5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막상 꼽으려고 하니 난감했다. 일기장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작품을 꺼내 분류하다보니 상중하로 나뉘더라. 기준은 독자의 반응과 나의 만족도, 그리고 좋은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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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준비에 6개월 정도 걸렸다.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린 게 애니메이션이었다. 연재된 칸 만화를 3면 분할해서 전시를 하고 보니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올드보이> <박쥐> <동주> 등 세 작품을 감각적인 3면 애니메이션 전시로 재창조한 ‘패러디 클라쓰’ 공간은 만화를 읽어나가는 데서 같이 느끼는 곳으로, 재미난 체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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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한국영화 25년. 1995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영화 르네상스라 불리는 시기를 함께해온 정훈이 작가가 결정적 순간을 꼽아서 소개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완전히 새로 그린 그림들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정훈이 작가가 꼽은 한국영화사의 결정적 사건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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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쪽, <씨네21>에서 함께했던 전 편집장들이 정훈이에 대한 추억을 소개한다. “그냥 말 그대로 천재 같아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찌질함 혹은 약간의 야비함. 하지만 그것이 결코 세상을 해롭게 하지 않는 정도의 어떤 찌질함과 야비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서 웃음을 만들어내고 결국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떤 화해에 도달하게 만드는 그런 위대한 코미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본인마저 풍자와 해학의 소재로 삼아 곤란했다면서도 그 날카로운 관찰력과 표현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허문영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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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만화, 영화를 캐스팅하다.’ “원래 제목으로 생각했던 건 이거였다. 매주 영화를 고르고 마감을 하는 게 캐스팅하는 작업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 제목도 살려주셔서 감사하다.” 구조신호를 보내는 정훈이의 모습이 마감을 앞둔 작가의 심경을 대변 중인, 정훈이다운 유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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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남, 용길이할마시, 씨네박, 이끝봉, 김똘만 등 정훈이만화에 캐스팅된 캐릭터들은 대부분 실제 주변 인물들을 바탕으로 디자인했다. “원래 남기남은 친구를 보고 그린 건데 내 실물을 본 사람들이 다 나를 닮았다고 하더라. 남기남 디자인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아마 25년 동안 나랑 서로 닮아간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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