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부산국제영화제]
BIFF #4호 [화보] 전종서와 한예리의 연기 비결은? 라떼 그리고 혼춤!
2021-10-09
글 : 김소미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부산국제영화제 토크 프로그램 액터스 하우스에서 배우 전종서·한예리를 만나다

부산국제영화제 ‘액터스 하우스’가 10월8일 성황 리에 두번째 개장을 마쳤다. 영화의 전당 맞은편에 위치한 KNN시어터에서 차례로 무대에 오른 전종서, 한예리는 백은하 영화연구소 소장과 각각 1시간씩 심층 토크를 나눴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신설한 토크 프로그램 액터스 하우스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을 초청해 그들의 연기 인생을 관객과 나누는 자리다. 7일 첫 주자로 나선 배우 이제훈에 이어 전종서와 한예리, 엄정화, 조진웅, 변요한이 참여한다.

전종서 : “나는 출처가 없는 배우”

10월8일 열린 액터스 하우스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참석한 전종서를 향해 백은하 영화 저널리스트는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하는 인사부터 건넸다. 지난밤 부일영화제에서 이충현 감독의 영화 <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종서는 <버닝>으로 신인상을 휩쓴 지 3년도 되지 않아 두 번째 주연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낭보와 환호 속에서도 전종서는 여전히 자기다웠다. “<콜>에서 내 모습을 왜 좋아해주시는지 잘 모르겠다. 맛있는 거 좋아하니까 부산은 늘 좋다. 오늘도 암소갈비 먹고 왔다.” 특유의 나풀거리는 말투와 함께 꾸밈없고 솔직한 고백들이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오픈 시네마 부문의 화제작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감독 애나 릴리 아미푸르)에서 전종서는 태어난 직후부터 정신병동에 갇혀 있다 탈출한 초능력자를 연기한다. “언어를 아예 모르는 설정이라 대사 없는 육체적인 연기에 집중”해야 했던 전종서를 위해, 감독은 촬영 현장에 큰 스피커를 설치해 음악을 크게 틀어두는 방식으로 전종서를 자극했다. “실제로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었다. 엄청나게 더운 뉴올리언스의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놀이터에서 자꾸 모래를 주워 먹어 엄마를 걱정시키던 아이는 마술과 우주에 심취해 <매직키드 마수리> <우주전쟁>에 흥분하는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부모님이 원했던 캐나다 생활에서 도망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결국 한국에서 연기 전공으로 대학교도 합격했지만 제도권 교육에 굳이 자신을 묶어두지 않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도 자퇴하고 싶었고, 대학교도 잘 맞지 않아 그만뒀다.” <버닝>에 나타난 당시의 자신을 “출처 없는 배우”라고 수식한 전종서는 이창동 감독의 지도 아래 카메라 앞에 서는 법부터 처음 배웠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길들여지지 않은 매너, 야생적인 아름다움에 반한 창작자는 이창동 감독 이후로도 쉼없이 늘어났다. 이 날 대화는 <콜>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을 넘어, 전종서의 두 차기작 <종이의 집>과 <연애 빠진 로맨스>로도 흘러갔다.

“촬영장에서 갑자기 나를 끌어올려야 할 때 유일하게 의지하는 게 아주 단 커피다. 바닐라라떼 더블샷 같은 것. (웃음) 순간적으로 확 하이가 되면서 정신이 날렵해지고, 그 상태가 1시간 반 정도 가다가 사라진다. 그러면 또 마신다. 휘발유처럼 커피를 붓는 거다. <버닝>때부터 그렇게 해서 습관이 들어버렸는데, 이제는 고치고 싶다. 일할 때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고 나면 집에 돌아가서 갑자기 소나기밥을 먹는다든지 밤새 잠을 못 잔다. 요즘은 일과 생활을 잘 분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찾고 싶은데 타고난 나 자신이 규칙적이지도 균형 잡히지도 않은 것 같아서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고, 하하. 이게 아주 솔직한 마음이다.”

한예리 :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배우

“재능적으로 비옥한 토양을 타고났고, 그것을 품는 유연한 태도까지 갖췄다.”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이 아낌없이 찬사를 띄운 상대는 배우 한예리. 자신만의 리듬과 속도를 지켜 나가는 개성 있는 행보에 칭찬이 이어지자 한예리는 “나도 다른 배우들을 곧잘 부러워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요즘엔 호연이(<오징어 게임> 정호연)가 제일 부럽다”라고 응수했다. 한예리는 덧붙여 “어릴 때부터 무용을 했다보니 시기와 질투가 워낙 많은 이 세계에 일찍 익숙해져야 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자주 마음을 이렇게 다잡는다. ‘우리 일단 진심으로 축하해주자. 응원도 꼭 진심으로 해 주자.’ 설령 부럽고 질투하는 마음이 든다고 해도 내가 가진 것중에 가장 최선을 찾으려고 다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유의 단단하고 건강한 태도와 함께 <미나리>의 스타는 자신을 구성하는 개성과 자질에 대한 다각도의 탐구를 성실히 이어나갔다.

촬영 현장에서 감정을 쏟고 나면 배우는 한동안 소진 상태이기 마련. 한예리는 몸을 쓰며 그 시간을 견딘다. 배우 활동이 바빠지면서 연습에 오롯이 참석할 수 없는 탓에 1년에 한 번 공연 무대에 서는 일도 전처럼 쉽지 않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한예리에게 무용은 여전히 “너무나 오랫동안 해온 나의 일이자,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위”다. 춤을 추지 않으면 무언가 해소가 안된다는 그는, 방구석에서 추는 ‘혼춤’에도 능하다. “방에서 음악 틀어놓고 꼬물꼬물 움직이기만 해도 좋다. 연기란 머릿 속으로 수많가지 생각을 하는 작업인데, 춤에 몰입하는 동안엔 연기와는 전혀 다른 명상적 상태가 되기도 한다.”

“새처럼 조용히 지저귀는 목소리다. 크지는 않지만, 사람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의 말처럼 한예리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날아와 정확한 의미를 꽂는다. 어린 시절, 한예리는 자신의 중저음에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왜 나는 늘 알토지?” 연기 생활을 결심한 이후에는 정규 교육 과정을 거친 엘리트 배우가 아니라는 점이 목소리 훈련에 대한 관심에 오히려 불을 지폈다. “목소리가 캐릭터와 정서 표현에 아주 중요한 재료라는 점을 실감했다. 라디오 DJ를 맡았던 것도 스스로 말하는 것을 더 잘 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하기. 한예리의 업무 과제는 그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 편차가 엄청나다는 한예리는 “체육과 미술을 사랑하고 수학은 너무나 어려워하는” 학생이었다고. 직업 배우로서 그는 도망치거나 그만두지 않기 위한 자기만의 기준을 중요시한다. 이어지는 한예리의 대답은 현명하고 명료했다. “10개 중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2개만 할 수 있으면, 싫어하는 것 8개를 버틸 수 있다. 그게 내 기준이다. 그 선을 넘어가면 스스로 힘들어할 것을 알기에 잘 지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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