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주의 <씨네21>은 한국영화계의 거목이자 큰 어른이었던 두 선배 영화인의 발자취를 다시금 돌아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서편제> <춘향뎐> <취화선>의 제작자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와 <꽃잎>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을 맡은 유영길 촬영감독이다. 이태원 전 대표는 지난 10월24일 향년 83살로 영면하며 영화인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고, 고 유영길 촬영감독은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을 통해 1980년 5월 광주를 최초로 보도한 영상기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세간을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은 1980~90년대를 관통하며 한국영화의 가장 역동적이었던 순간, 역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영화들을 남겼다. 이들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두 영화인과 많은 시간을 공유했던 선후배, 동료 영화인들이 이번호를 통해 들려준 이야기는 더없이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진다.
먼저 김성훈 기자가 취재한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사연은 한국영화사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빠져 있던 퍼즐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장선우 감독과 함께 5·18을 다룬 영화인 <꽃잎>을 작업할 때조차 유영길 촬영감독은 자신이 1980년 광주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에게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나 광주요, 여기 위험하고 무섭습니다’라고 얘기했어요. 얼마나 무서웠으면 전화까지 했을까 눈물이 났는데 오늘 남편이 찍은 영상을 보니 어떻게 광주까지 갔을까 싶더군요.” 유영길 촬영감독이 가까운 동료 영화인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은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대리 수상자로 나선 부인 김명자씨의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시상식 당일 장선우 감독을 비롯해 정지영·박광수·이명세·허진호 감독, 배우 문성근, 김형구·김영래·김병서 촬영감독 등 많은 동료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는데, 지면에 미처 담지 못한 동료 영화인들의 긴 이야기를 <씨네21>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시길 바란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는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트로피와 ‘대한민국 최초 서울 관객 100만명’이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그야말로 당대를 대표하는 영화인이었다. 동시에 그는 창작자가 오롯이 그들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해준 낭만적인 시대의 제작자이기도 했다. “상품은 내 거지만, 작품은 감독 거”라는 그의 소신이야말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와 11편의 영화를 함께한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배창호·이명세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이 조현나 기자의 취재를 통해 별이 된 동료의 유산을 반추해주었다. 창작자들의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이태원 전 대표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