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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닮은 사람' 복수의 끝까지
2021-10-29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정소현 작가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에선 한 시절을 같이 보내고 이후 인생의 궤도가 달라진 두 여자가 재회한다. 화가이자 에세이 작가가 된 정희주(고현정)는 딸을 폭행한 기간제 미술 교사 구해원(신현빈)이 오래전 독일어학원에서 만나 가깝게 지내던 미대생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희주는 재능에 대한 확신으로 반짝이는 젊은 해원을 동경하며 그림을 배웠고, 해원의 연인 서우재(김재영)를 비밀리에 만났으며, 그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허기를 다 채운 후, 뒤돌아보지 않고 과거로 묻었다. 자신이 사줬던 해묵은 초록색 코트를 걸친 해원이 딸을 때린 것을 용서하라고 불쑥 찾아와 ‘언니’라고 부를 때마다 희주는 그들에게 저지른 일들을 떠올린다. 그 얼굴에는 한순간도 후회가 스치지 않는다.

나를 기만하고 과거로 밀쳐둔 누군가를 다시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그 얼굴에서 찾고 싶은 것은 죄책감일까 미안함일까? 절교한 친구를 복도에서 마주치던 어린 시절에는 쌍방의 불꽃 튀는 무시(일종의 연기 대결이다)로 넘겼다. 성인이 되어서는 통보 없는 이별이나 절교를 문득 알아채고 뭉근한 모멸감이나 확 끓어오르는 수치심을 곱씹을 뿐. 당신에게 나는 그래도 되는 인간이었냐고 따져 묻지 않은 채로 그런 취급을 당했던 나의 일부를 죽이거나 상대를 죽여 마음에 파묻는다. 그렇게도 살아진다. 해원이 겪은 일은 훨씬 지독했다. 배신인지 아닌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말없이 사라진 우재를 기다리느라 지낸 수년의 시간이 희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되고, 해원은 희주 앞에 섰다. 죄책감이나 후회가 없는 말간 얼굴의 희주가 의미 없는 용서를 비는 또 한번의 기만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원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용서를 구하는 가해자가 되어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희주를 올려다본다. 원작을 드라마로 펼친 유보라 작가는 용서로 타협하지 못하는 복수의 끝까지 갈 셈이고 거기서는 어떻게 살아지는지 나는 가보지 못한 자리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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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왓챠)

빨간색 옷을 입은 희주와 낡은 초록색 코트를 걸친 해원. 둘의 애증을 선명하게 하는 적색과 녹색의 보색 대비와 드라마 오프닝의 얼굴을 지운 초상화는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상기시킨다. 자신의 결혼 초상을 그린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를 마음에 품은 엘로이즈(아델 에넬)는 첫 작품을 이렇게 평한다. “나랑 이 초상화는 비슷하지 않아요. 당신을 닮지도 않아서 슬프네요.”

<와이 우먼 킬> 시즌2 (왓챠)

평범한 주부 알마(앨리슨 톨먼)는 상류층 여성의 사교모임 ‘정원클럽’을 이끄는 아름다운 리타(라나 파리야)를 동경하고 그들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살인을 하고 주변의 자원을 이용해 자신을 치장하는 위태로운 알마, 그리고 뒷일을 생각지 않고 현재의 욕망에 휩쓸리는 <너를 닮은 사람>의 희주를 보면 왜 그렇게까지 무모한지 여러 번 되묻게 되지만, 답은 하나다.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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