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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구경이'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2021-11-05
글 : 최지은 (작가 <이런 얘기 하지 말까?>)

이상한 여자들이 이상한 장소에서 이상한 짓을 꾸민다. 유능한 강력팀 형사였지만 지금은 쓰레기장 같은 집에 처박혀 게임과 맥주로 연명하다가 최신형 컴퓨터라는 미끼에 낚여 보험조사관 일을 제의받은 게임중독자 구경이(이영애)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의심스러운데…?” 열정적인 아마추어 연극배우이자 창의적인 연쇄살인범 송이경, 일명 ‘케이’(김혜준)는 의아하게 생각한다. “왜 모든 인간이 살아야 해?” 국내 1위 봉사 기부재단 이사장이라는데 누가 봐도 ‘푸른 어린이파’ 보스 같은 분위기의 용국장(김해숙)은 구경이를 목욕탕으로 납치해 다짜고짜 손을 내민다. “우리가 그 살인자 같이 잡아.” 물론 살인도, 조사도 정의감 때문은 아니다.

능청스럽고 뻔뻔한 여자들,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위험한 여자들이 잔뜩 모인 세계가 지루할 수 있을까. 이영애, 김혜준, 김해숙, 곽선영 등 각기 다른 색과 톤을 지닌 배우들이 보여주는 기막힌 호흡은 말할 나위 없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신인이라고만 알려진 작가팀 ‘성초이’와 이정흠 감독은 비장하기보다 경쾌한 태도로 죽음에 접근하는 한편 면도날처럼 서늘한 진실을 비추며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한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구경이의 남편은 한 여학생의 사망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에 휩싸인 뒤 자살했다. 구경이의 마음속에는 자신마저 남편을 의심하는 바람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지 모른다는 죄책감과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심이 공존한다. 오랜 경험과 빅 데이터 때문에 남성 파트너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한국 여성의 불안을 직시하고,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삶을 끝내려는 청년을 일단 세상에 붙들어두면서 구경이는 계속 달린다. 왜 사냐건 웃지도 못하고 쓰레기차 위로 몸을 던질지언정 인간은 당연히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 괴상한 히어로와 죽어 마땅한 놈을 죽이는 게 뭐 어떠냐고 묻는 천진한 살인마의 대결이라니, 바로 이런 이야기를 위한 명언이 있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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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는 백합> (유튜브 딩고, 네이버TV)

김혜준은 새로운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과거 작품을 찾아보게 만드는 배우다. 2015년 출연한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에서 그는 데뷔할 길이 안 보이는 아이돌 연습생 경주 역을 맡아 수상한 미인 세랑(정연주)과 로맨틱하고도 알쏭달쏭한 관계를 맺으며 귀여움의 끝을 보여주었다. 당시 ‘백합 대세’였던 두 배우의 또 다른 웹드라마 <내일부터 우리는>은 왓챠에서 볼 수 있다.

<킬링 이브> (왓챠)

살인에 죄책감 아닌 쾌감을 느끼는 케이와 자신의 삶도 버거우면서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 구경이는 앞으로 어떻게 얽히게 될까? <구경이>와 비슷한 구도를 지닌 드라마 <킬링 이브>는 매혹적인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조디 코머)을 추적하는 영국 정보부 요원 이브(샌드라 오)의 아슬아슬하면서도 끈끈한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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