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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살인범 캐릭터의 재해석, '구경이'
2021-11-12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기벽을 가진 천재 수사관과 사이코패스 살인마. 이 클래식한 레시피는 창작자들에 의해 수없이 변주되며 대맛집들을 낳았다. 그중 주요 배역을 여성으로 꾸린 드라마 <킬링 이브> 시리즈의 한국형 프랜차이즈인가 싶었던 JTBC <구경이>는 ‘세상에 없던 탐정’을 부제로 달았으니. 무슨 자신감인가 불신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의심은 구경이(이영애)의 속성이다. 강력계 형사 시절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것도, 가까운 이들은 물론 자신까지 피를 말리는 것도 의심에서 비롯한다. 남편의 자살로 해명을 구할 수 없는 의심에 갇힌 그는 5년간 방구석 게임 폐인 생활을 하다 옛 동료 나제희(곽선영)의 의뢰로 보험조사관 일을 맡게 된다. 특출한 능력이 핸디캡이 되는 캐릭터야 두말할 것 없이 매력적인데, 나는 좀 지저분한 장면에서 그에게 붙들려버렸다.

제희와 식당에 간 구경이의 주변에 CG로 만든 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은 씻지 않아 냄새나는 사람임을 과장하는 익숙한 기호다. 비듬을 날리는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떠올리며 심상하게 넘겼는데 충격은 다음에 찾아왔다. 쓰레기 수거차에 몸을 던지고 쓰레기장에서 뒹굴었던 구경이가 연쇄살인범 케이(김혜준)를 같이 잡자고 제안하는 용국장(김해숙)을 대중목욕탕에서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목욕탕까지 가서도 안 씻었어!’ 오물을 뒤집어쓴 찝찝함보다 용국장에 대한 찜찜함이 컸을까? 어차피 씻어야 할 텐데 마침 장소는 목욕탕이고 지금 씻는다는 옵션은 없었을까? 개인위생을 잊고 지낸 5년 세월을 실감하는 한편, 자기 몸이 더러운 것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 이의 사고방식을 따라가다 보니 세상에 없던 탐정이 비로소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예술작품 인용을 즐기는 과시적인 사이코패스 살인범 캐릭터의 재해석도 흥미롭다. 살인 무대가 거창할수록 부지런하게 준비했을 노고가 떠올라 우스워질 때가 있다. 케이는 바로 여기, 과하게 애쓰는 점에서 결핍을 읽고 역추적해서 빚어진 인물이다. 사고사로 위장하는 수고스러운 살인 각본을 짜고, 누군가를 구하려고 자신을 드러내는 희한한 사이코패스 역시 세상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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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왓챠)

고등학생 시절 옥상에 올라 교정을 내려다보던 케이 역의 김혜준은 <미성년>에서도 학교 옥상에 올랐다. 부모들의 불륜을 수습하려 옥상에서 만난 윤아(박세진)와 친구도 자매도 아닌 기묘한 관계가 된 주리(김혜준). 두 사람이 주리의 아빠 대원(김윤석)의 뒤를 쫓으며 “아빠! 아빠!” 불러대는 장면은 김윤석이 연쇄살인범을 쫓던 <추격자>를 뒤집는 긴박감을 뿜는다.

<친절한 금자씨> (왓챠, 넷플릭스)

애착 대상의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살인을 저지르는 케이는 <킬링 이브>의 빌라넬(조디 코머)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한데 케이가 들키지 않는 살인의 조건을 배운 것은 고등학생 시절 구경이와의 만남에서 비롯한다는 점. 구체화하는 방식은 <친절한 금자씨>에서 피해자 부모들과 함께 살인을 n등분하는 이금자(이영애)의 방식과 닮은 점이 짜릿하다. 작가들의 빅 픽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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