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시대에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든 탈일상적으로 뻗어가며 그존재감을 지켜왔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우연을 두고 ‘영화 같다’고 표현하는 맥락에서든, 잘게 쪼갠 이미지의 충돌로 체감 시간을 단축 시키려는 부단한 시도든, 평범성의 힘을 믿는 리얼리즘이 결국 그 안의 반짝임을 발견해낼 때든. 이같은 흐름에서 보면 라이카트의 태도는 전복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둠 속에서>에서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들이 폭탄을 설치하고 댐을 폭파시키는 핵심 사건은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이 지난 뒤에 발생하는데, 정작 폭탄 장면의 스펙터클은 거세돼 희미한 사운드로만 암시된다. 폭발의 스펙터클 대신 우리는 인물들이 농작물 재배를 위한 용도라고 거짓말하며 비료를 구하 고, 비료를 시멘트 믹서에 투입하고, 폭발성 가루를 추가로 넣고, 보트를 청소하고 자동차에 연결해 작전 장소까지 옮기는 등 온갖 반복 적이고 지루한 허드렛일을 목격하게 된다. <믹의 지름길>은 서부 개척 시대가 마초들의 과시적인 총격전이 아닌 커피를 갈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을 통해 유지됐다고 묘사한다.
현대적 ‘슬로 시네마’
현실의 생존과 영화 만들기가 치열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었던 작가 켈리 라이카트의 본류가 현대적 ‘슬로 시네마’로 완성된 것은 필연적이다. 조나단 롬니는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서 ‘슬로 시네마’를 “2000년대 국제적으로 번성했던 다양한 계통의 엄격한 미니멀리즘 영화”로 정의했다. “예술적인 시선에서 다소 보기 드문 강렬함”을 보여주며 “분위기, 생각하게 하는 것 그리고 강화된 일시적 감각을 위해 사건을 축소시킨” 일련의 작품들을 의미한다. 벨라 타르, 페드로 코스타, 리산드로 알론소, 차이밍량,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등의 스타 일을 떠올리면 된다. 라이카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극적이지 않거나 비선형적인 내러티브, 세트가 아닌 실제 로케이션 촬영, 관찰적인 태도, 성찰과 사색의 정서가 모두 슬로 시네마의 특징에 해당한다.
기본적으로 주류 시스템의 대척점에 선 ‘독립’(여기서는 자본으로부 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본래적 의미가 강화된다)영화로서 적은 제작 비, 짧은 프로덕션 기간을 추구하며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인 작업 방식이 요구된다. 라이카트의 인물들은 어디론가 불쑥 떠났다가 돌아온 다든지, 혹은 어디론가 떠나기를 갈망하며 아주 한정된 구간만을 오가고 자동차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초원의 강> <올드 조이> <웬디와 루시> <어둠 속에서> <어떤 여자들>의 차창 밖에 스치는 미국의 풍경 에는 광각이나 익스트림 롱숏에 담겨왔던 웨스턴의 장엄한 아우라가 없다. 19세기가 배경인 <믹의 지름길> <퍼스트 카우>에서 4:3 화면비는 “당시 여성들이 쓴 보닛이 가린 시야를 반영”(<NPR>의 켈리 라이 카트 인터뷰)하거나 주인공들의 결집을 보다 강조한다.
그 주체는 대체로 사회 비주류층이거나 계급 상승을 크게 갈망하지 않는 하층민이다. <동시대 영화감독들> 시리즈 중 <켈리 라이카트>를쓴 캐서린 푸스코·니콜 세이모어는 “사회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에 게, 현대성은 사실상 느림을 통해 경험되고 보통 그들에게 큰 손해를 입힌다”라고 설명한다. <웬디와 루시>의 웬디(미셸 윌리엄스)는 정의 구현이나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그저 반려견 루시와 먹고 자는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터전을 원하지만, 자동차 수리비가 폐차 비용보다 비싸서 차까지 포기해야 하는 현실은 인생의 오랜 동반자도 먼저 놓아주게 만든다. 켈리 라이카트는 자신의 영화가 정치적이라는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그의 영화에서 포스트 부시 시대의 그림자를 읽어내는 코멘트엔 수긍하거나, 애써 부정하지 않는 다. <올드 조이>에 대한 <스톱 스마일링>의 켈리 라이카트 인터뷰는 뜨거운 액티비즘과는 거리가 멀지만 필름메이킹 방식 자체가 정치적인 그의 태도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보여준다. “내 나이대에서 이상주 의나 정의가 우세할 거라는 생각은 ‘낡은 기쁨’(Old Joy)이다. 주인공 들이 보여주는 자유주의 역시 비효율적이다. 이 영화는 우리 세대의 상실감을 안고 있다.”
여성과 동물, 그리고 자연
켈리 라이카트의 세계에서 인간은 동물과 직접 교류하거나 그들의 존재를 영화에서 의식한다. 라이카트는 그의 반려견 루시를 <웬디와 루시> <올드 조이>에 출연시켰다. 특히 <웬디와 루시>는 인간과 동물을 동등한 파트너로 놓고 부시 정부의 감세 정책과 이라크전 파병이 가져온 경제 파탄이 둘 모두를 곤궁에 빠뜨렸음을 지적한다. <어떤 여자들>의 지나(미셸 윌리엄스)는 간밤의 코요테 소리를 언급하고 <어둠 속에서>의 데나(다코타 패닝)와 조쉬(제시 아이젠버그)는 댐을 폭파하러 가는 길에 새끼를 밴 채 도로 위에 쓰러진 사슴을 발견하며 <퍼스트 카우>의 젖소와 직접 대화하는 이는 그를 소유한 팩터 대장이 아닌 매일 밤 몰래 우유를 짜는 킹 루(오리온 리)다.
라이카트의 영화를 페미니즘의 렌즈로 해석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단지 그가 여성감독이며 여성 주연 영화를 자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기존 서부극의 남성 영웅들은 선과 악, 인간과 자연, 문명과 야만, 개인과 공동체의 이분법에서 정체성을 규정한다. <믹의 지름 길>에는 가부장제 자본주의가 착취해왔지만 역사에서 은닉됐던 여성의 노동, 정복이나 적대심이 아닌 신뢰와 소통을 믿는 여성적 리더 십이 있다. 이른바 여성주의 서부극이라 명명되는 라이카트의 작품 들이 <자니 기타> 등의 선례를 뛰어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자니 기타>가 여성이 서부극 속 남성이 하는 일, 예컨대 총질을 하면서 전복적 쾌감을 준 작품이었다면 <믹의 지름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때 여성이 행했던 일을 비춘다.
전 지구적인 포용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라이카트의 관계 맺음은 심지어 차단과 불통으로 보이는 순간마저 냉소 없이 영화 속에 품고 그의미를 재구성해낸다. <어떤 여자들>은 동시대 미국을 살아가는 세여성 각자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고용주의 태만으로 개인 상해, 그것도 시력에 큰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노동자 풀러는 먼저 합의를 해버려서 보상받을 길이 막혔다는 변호사 로라(로라 던)의 말을 8개월 동안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급기야 로라를 놓고 인질극을 벌인 다. 지나는 가족이 함께 살 만족스런 집을 짓기 위해 알버트라는 노 인에게 사암을 구입하려 하지만 그는 치매 초기 증상이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고독한 상실감을 교집합 삼아 이들의 헐거운 공감대를 부각하는 대신, 영화는 인간의 결핍을 삶의 필연으로 이해 하며 상대를 응시하는 순간의 표정을 포착한다. 가장 훌륭한 에피소 드는 마지막에 등장한다. 목장에서 말을 돌보고 세탁소에서 아르바 이트를 하는 인디언 소녀 제이미(릴리 글래드스톤)는 우연히 들어간 야간 클래스에서 만난 강사 베스(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친해지고 싶지만 피로에 찌든 베스는 제이미에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갑자기 강사 일을 그만둔 베스를 다시 만나기 위해 무작정 4시간 동안 트럭을 운전한 제이미에게 베스가 미지근하게 반응했을 때 이는 감정의 온도 차를 의도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이미지는 밤새 운전을 하고 트럭에서 쪽잠을 잤던 제이미가 집으로 돌아가다 깜빡 졸음운전을 하는 대목에 있다. 서운함과 합리화, 괜한 자기학대와 상대를 향한 원망 등 온갖 감정이 휘몰아칠 순간에도 잠은 오고, 단순한 생리적 욕구는 누구보다 격한 후폭풍에 가슴앓이를 하는 소녀의 드라마를 이긴다. 단 하룻밤이지만 기계적인 응대마저 불가능한 베스의 피로감을 함께 체험해본 제이미는 조용히 그다음, 다다음의 반복 되는 일상을 다시 이어나간다. 여기서 관계가 더 진척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상의 다정한 배려다. <웬디와 루시>에서 반려견 루시를 잃은 웬디에게 홈리스의 사정을 이해하는 마트의 경비는 6달러를 쥐어 주고, <퍼스트 카우>에서 쿠키(존 마가로)와 킹 루의 계산 없는 우정은 최소한의 생존을 도와줬던 이타심에서 출발한다.
라이카트의 세계는 쉽게 화해하고 동화되지 않는다. 라이카트는 서로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상기하듯 인간과 자연을 손쉽게 일체화하지 않고 연민과 공감을 섣불리 설득하지 않으며, 그 결과 연대는 느슨한 방식으로 실현된다. 이상적인 동반자 관계처럼 묘사되는 <웬디와 루시> <퍼스트 카우>의 주인공들은 결국 그들이 속한 사회상과 유리될 수 없다. 모든 유기체와 환경의 관계학을 탐구하는 생태학자로서 켈리 라이카트는 그들 사이의 인력과 척력을 시각화하기 위해 가속화 시대에 생소한 감각을 끌어온다. <올드 조이>에서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해 서먹한 두 남자는 “슬픔은 기쁨이 닳은 것뿐”이기에 삶의 리듬을 다시 조율하는 고요한 메트로놈을 공유한다. 마찬가지로 라이카트의 영화는, 특히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감상하는 행위는 단절된 공간에서 그의 호흡에 공명하고 우리가 단축하거나 혹은 버리려고 했던 일상의 움직임을 되돌아보게 한다. 켈리 라이카트는 미국영화에서 가장 드물고 귀한 영화적 실천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