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팬티 바람으로 논밭을 달린 사연은_ 전석호 배우
“그럴 때 있잖나. ‘내가 요즘 좀 고장이 났나? 요즘 기분이 왜 이렇지? 몸이 왜 안 좋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 전석호는 서울에서의 삶이 괴로워 시골 마가리까지 흘러들어온 유씨를 ‘고장 난 사람’이라고 요약했다. 그는 본래 시를 쓰는 사람이다. 시인을 연기하니 뿔테 안경이라도 쓸 줄 알았다고 했더니 전석호는 “겉모습만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엄청나게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거나 오래한 사람 아니겠나”라면서 “유씨는 시를 못 쓰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히 ‘나 시인이요’라고 꾸미지 않았다”라고 응수했다. 대신 그가 이용한 건 시집이었다. 시집을 품에 안고 읽다가 괴로워져서 길에 두고 와버렸다가 다시 되찾아오는 과정을 떠올린 그는, 시나리오에 없는 시집과의 ‘투숏’을 영화에 녹여냈다. 마지막으로 이날 촬영의 하이라이트인, 유씨가 팬티 바람으로 논가를 달리는 장면에 대해 묻자 그는 “아잇, 이미 영화와 드라마에서 몇번 ‘그런 신’을 촬영한 적 있다”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의상팀에서 많이 신경 써줘서 잘 가리고 찍었다”라고 했다. 벼가 따가운 햇볕을 받아 익어갈 때 그는 팬티 바람으로 논가를 열심히 달렸다.
농부, 동화작가를 꿈꾸다_ 박명훈 배우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이기주의자가 될 수도 있지만, 때론 뉴스에서 희망과 꿈을 주는 인물들을 볼 수 있다. 원보가 동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사람이다.” 농사꾼 원보는 마가리 이웃을 돕는 걸 행복으로 삼는 마음 따뜻한 인물이다. 유씨에게 선뜻 집을 내어주고 침울해하는 유씨를 북돋워주기 위해 노력할 정도. 서울 사람 유씨를 “외국인 보듯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접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벼를 심는 원보가 마음속에 심은 진짜 꿈은 동화작가이기 때문이다. “동화작가가 꿈인 원보는 시인 유씨를 지식인으로 바라보지만, 두 사람이 문학으로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 토박이 박명훈 배우는 <싸나희 순정>에서 충청도 사투리에 도전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자이니치, <사랑의 불시착>의 북한군을 연기하면서 다양한 억양을 연구했고, 연극 무대에서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사투리 등을 두루 연마했지만 충청도 사투리가 쉽진 않았다. “평생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말투를 흉내내는것”이라며 “최대한 충청도 억양을 살려 연기하려고 한다”고 했다.
충청도 토박이 연기를 위한 마법의 단어는_ 김재화 배우
영숙은 중학생 딸을 키우는 ‘돌싱’으로, 마을의 유일한 슈퍼인 ‘우주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우주 슈퍼는 영숙의 생업과 생활이 결합된 곳이다. 손님인 유씨가 혼자 우주 슈퍼에서 소주를 사서 마시고 있으면, 영숙이 그 옆에서 열무김치를 담글 정도다. 손님에게 액젓을 갖다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양념에 버무린 열무김치를 한입 먹여주는 정과 능청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충청도 토박이를 연기하기 위해 김재화 배우 역시 충청도 사투리를 연마했다. 그는 뮤지컬 조연출 시절 인연을 맺은 충청도 출신 베이시스트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가 ‘진짜 충청인’에게 전수받은 비법은 “뭐여”였다. “기분이 좋을 때, 화날 때, 황당할 때 모두 ‘뭐여’만 하면 된다”라고 설명하면서 기자에게 다양한 “뭐여”를 선보였다. 이날 그의 가장 큰 미션은 유씨에게 소주를 파는 장면으로, 그는 시나리오에서 간명하게 쓰인, 가격을 말해주는 대사 대신 “거기 써 있슈”라고 대사를 고쳐 연기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친한 사이에 가격을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고 쑥스러운 게 충청 감성”이라는데, 스크린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확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