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주디스 C. 브라운은 피렌체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낯선 문헌을 발견한다. “신비주의자로 가장했지만 결국은 부정한 여인으로 판명된 페샤의 테아티노회 수녀원장, 벨라도 출신 베네데타 카를리니에 대한 재판과 관련한 문서”가 그것. 1619년에서 1623년까지 이뤄진 심문 기록은 베네데타가 주장한 신과의 소통 내용은 물론 그가 다른 수녀와 맺은 성적인 관계에 대한 서술로 빼곡했다. 이를 파헤친 연구서 <수녀원 스캔들>을 폴 버호벤 감독이 영화화했다. 영화는 9살 때 수녀가 되기로 한 베네데타(비르지니 에피라)가 성인이 되어 겪는 사랑과 신앙의 충돌을 좇는다. 욕망의 발현과 정치적 생존을 위한 베네데타의 기행은 가톨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원초적 본능> <쇼걸> <엘르> 등에서 입체적이고 문제적인 여성 캐릭터를 형상화해온 폴 버호벤 감독이 또 한명의 흥미로운 여자주인공을 탄생시켰다. <베네데타>는 베네데타의 심중을 설명하기보다 그가 어떤 인간인지 그저 보여준다. 관점에 따라 성녀로도 사기꾼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극중 인물들 또한 입장에 따라 베네데타를 이용하거나 멸시하며 믿음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닫는 실제 기록은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의미심장한 마침표를 찍는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섹션 야외 상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