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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의 위대한 유산
2021-12-10
글 : 최지은 (작가 <이런 얘기 하지 말까?>)
Mnet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

2021년 방송계를 뒤흔든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가 남긴 최고의 유산은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이하 <스걸파>)가 아닐까? 최고의 여고생 댄스 크루를 뽑는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작은 ‘언니들이 등장하고 소녀들이 열광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댄서라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과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고민했고 “무대 위의 장치 같던 존재들”로 여겨지기도 했던 선배들이 스타가 되면서,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 역시 “저희에겐 아이돌”이었던 그들과 함께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정형화된 아름다움과 흠 잡히지 않을 태도를 요구받는 K팝 걸그룹 멤버들이 미디어 속 ‘여고생’ 혹은 ‘소녀’의 이미지를 과잉 대표하는 한국에서, 기운찬 10대 여자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와 만들어내는 풍경은 경이로울 만큼 신선하다. “이 정도면 저희가 최고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자신감을 포함해 다채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이 매 순간을 채운다. 평가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대신 자신들의 무대에 대한 자부심과 승부욕, 향상심은 소녀들의 갑옷이자 무기다. 같은 지역 출신 라이벌, ‘전국구’ 춤짱, 비대중적 장르의 춤을 수련하며 소외감을 느꼈던 실력파 크루 등 흥미로운 경쟁 구도 속에 이들을 영입하기 위한 마스터들의 간절한 어필도 관전 포인트다. 무엇보다 <스걸파>의 가장 멋진 점은 여성이 여성의 ‘사부’이자 멘토이며 동료인 세계라는 것이다. 그동안 Mnet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가 이영지를 비롯한 몇몇 걸출한 여성 출연자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남자들의 성장과 유대감을 위한 호모소셜 세계였다면, <스걸파>는 드디어 소녀들이 홍일점이나 ‘여성 멤버’로 분류되지 않은 자기 자신인 채로 자신보다 먼저 그 길을 갔던 여자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계승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대다. “앞으로 더 멋있는 무대, 멋있는 여자들이 되도록 합시다”라는 안무가 리헤이의 말에 IN 버튼을 100번쯤 누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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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특급> (유튜브)

<스우파> 리더들이 하반기 예능을 휩쓴 가운데,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을 두팀으로 나누어 무려 4회에 걸쳐 방송한 <문명특급>이다. 모니카로부터 “아이키보다 웃긴 사람 처음 본다”라고 인정받은 진행자 재재를 비롯해 모두, 아니 내향형 인간 노제를 제외한 모두가 쉼 없이 웃고 떠드는 영상에서는 서로를 잘 알고 열렬히 환대하는 여자들의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방과 후 설렘> (MBC)

미성년자 여성들 중심의 경쟁 프로그램이란 면에서 <스걸파>와 비교해볼 여지가 있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Mnet <아이돌 학교>와 <캡틴> 등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부정적 요소만 합쳐놓은 듯한 구성, 어리고 미숙한 출연자들을 대중 앞에 마구 던져놓는 방식은 K팝 ‘걸그룹’에 대한 방송 제작진 혹은 그 시장의 상상력과 존중이 얼마나 결여되었는지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