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티탄'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 "몸은 그냥 몸이다"
2021-12-16
글 : 임수연
SHUTTERSTOCK

<티탄>의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역대 두 번째 여성감독으로 칸의 역사를 새로 썼다. 채식주의자 집안에서 억압받으며 살던 소녀가 수의대학 입학 후 식인에 눈을 뜨는 (반)성장담을 그린 <로우>(2016)가 영화제 관객의 실신 소동까지 일으킨 데 이어 <티탄> 역시 양극단에서 최고의 찬사와 혹평이 쏟아지며 또 한번 페스티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여성을 눈요기 내지 상품으로 대하는 남성들이 가득한 모터쇼에서 춤을 추며 살아가는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는 인간 남자는 물론 인간 여자에게도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연쇄살인범이다. 그를 유일하게 흥분시키는 존재는, 금속이다. 자동차와 성적인 관계를 맺고 임신을 한 알렉시아는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강박적으로 주사를 맞는 소방관 뱅상(뱅상 랭동)을 만나면서 새로운 감정에 눈을 뜬다. 언제나 금기에 도전하고 관습을 도발하는 작품을 만드는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로우>의 후반작업을 할 때 <티탄>을 쓰기 시작했다고.

거의 4년 반 동안 <로우>와 함께하고 있을 때였다. 머리를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워넣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내게 가장 어렵고 도전적이었던 일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전혀 다른 개념에도 마음을 열어주는 감정이었다. 사랑은 우리가 결정론에서 벗어나게 돕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꿰뚫어볼 수 있게 해서 궁극적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영화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거니까.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로 풀어내면 그 감정이 줄어들거나 하찮게 될 것 같았다. 영화를 만들 때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관객 또한 느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한다. 그래서 대사 없이 캐릭터의 경험을 느끼게 하는 것은 나에게 정말로 큰 도전이었다.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빼앗기고,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어떤 감정도 보여줄 수 없는 주인공으로 그 이야기를 해야 했다.

<티탄>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이 자동차와 댄서가 성적인 관계를 맺는 장면일 거라고 예상하는 관객은 막상 영화를 보면 당황하지 않을까. 그 장면은 영화 시작 15분쯤에 등장하고 그 이후의 전개가 예상 밖이니까.

평소처럼 매우 전통적인 3막 구조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런 방식이 내게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내가 만드는 영화는 캐릭터와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기대를 제거하는, 점점 절정으로 향해가는 내러티브를 취한다. 이는 뱀을 연상시키는 구조다. 뱀이 가죽을 벗듯이 주인공들도 피부가 벗겨진다. 피부는 캐릭터나 관계의 본질, 내가 그리려는 진짜 인간성을 감추는 것을 상징한다. 바로크적인 거대한 괴물로 시작하는 <티탄>은 전반 30분 동안 수많은 다양한 사건을 보여준다. 피부, 아이러니, 사건, 괴물성 등등 많은 것의 과잉이다. 그러다 층층이 쌓인 레이어가 점점 벗겨지고 관객이 줄기에 다다를수록 캐릭터의 인간성에 보다 친밀해질 수 있다. 그래야 마지막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신 가이아가 만나 타이탄이 탄생한 것과 같은 세계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21세기의 예수 탄생극을 만들고 싶었나.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다. 그렇다, 어떻게든. 영화에 여러 번 등장하는 성경에 대한 언급은 그리스 신화처럼 매력적인 스토리와 상징을 위한 매우 중요한 토대다. 내 영화에는 신성한 것을 찾는 무언가가 있고, 신성을 충동과 폭력, 혼돈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다가 다시 영화가 상승하면서 성스러운 여정이 음악을 통해 구현된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 합창단, 교회 음악 같은 오르간을 함께 사용했다. 예수와 마리아에 대한 상징도 있다. 예를 들면 어린 알렉시아의 모습은 면류관을 쓴 예수처럼 설계했다. 그리고 배우에게 예수의 손에 있는 낙인을 보여주는 것 같은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했고, 그를 매우 신성하게 만드는 하얀 조명을 썼다. 알렉시아가 성인이 되면 마리아가 된다. 그가 난데없이 임신한 것 같은 상황은, 무염 시태(성모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원죄에 물듦이 없이 잉태됨을 뜻하는 말.-편집자)를 연상시킨다. 엔딩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사실 알렉시아는 마리아인 동시에 예수다. 그는 뱅상이 잃어버린 아들의 부활한 모습으로, 예수처럼 돌아온다.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이 충돌하면서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예수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 언급되진 않지만 태어난 아기의 성별은 여자다.

가랑스 마릴리에는 단편영화 <주니어>에서 13살 소녀였고, <로우>에서는 16살 신입생이 됐으며, <티탄>에서는 22살 댄서가 되어 알렉시아에게 살해당한다. 캐릭터들이 당신의 영화와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

그리고 그 캐릭터의 이름은 모두 쥐스틴이다. <로우>부터는 알렉시아와 아드리앵이 등장한다. 멀티버스 안에 있는 캐릭터처럼 이들이 계속 등장해서 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관객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 연결점을 통해 내가 다루고 싶은 주제, 가까이 가고 싶은 감정에 더 깊이 빠져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캐릭터들이 맞닥뜨린 삶의 다른 단계에서 진화해가는 연속성이 있다. 가끔은 이게 결국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하다. 다섯 번째 영화를 찍을 때가 되면 그들이 90살이 될지도 모른다. (웃음) 어쨌든 여기엔 명백히 의도적인 연속성이 있다.

여성의 몸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굉장히 여성 혐오적인 시선이 투영된 경우가 많은데 감독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다른 점이 무엇일까.

신경 쓰지 않는 것, 그게 첫 번째다. 그를 섹시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니까. 내가 무언가를 했던 유일한 순간은 모터쇼에서 알렉시아가 이른바 섹시한 춤을 출 때 그의 몸을 대상화하는 메일 게이즈(male gaze, 남성의 시선)를 흉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능동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메일 게이즈를 반전한다. 기본적으로 알렉시아가 관객을 보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더이상 그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캐릭터의 관점은 그 캐릭터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과 함께 작동한다. 몸은 그냥 몸이다. 연약한 동시에 무척 강하다. 그게 내가 어떻게든 묘사하고 싶은 유일한 것이다. 신체를 화려하거나 대표성을 지닌 무언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서 옷을 벗으면 결국 다 똑같은데, 다들 이 부분을 숨기려고 한다. 그래서 몸은 결국 다 똑같다는 이야기가 매우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알렉시아가 심폐소생술을 할 때 뱅상이 <Macarena>를 부르며 리듬을 맞춘다. 웃음이 나는 장면이다. 왜 그 노래인가.

적절한 페이스로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정확한 리듬을 보여주는 노래니까. 재미있는 트위스트를 넣어서 그 장면을 즐겁게 만들고 싶었다. 사실 비지스의 <Stayin’ Alive>와 <Macarena> 두곡을 후보로 생각했는데, 비지스의 노래는 정말, 정말 비싸서 포기했다.

카니발리즘을 다룬 <로우>는, 물론 금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다룬 영화였다. <티탄>은 지금으로선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차이가 촬영에 어떤 영향을 줬나.

나는 비현실적인 것을 의도하진 않는다. 이 유니버스 자체가 현실은 아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우리가 겪는 일들을 영화와 연관시킬 수 있다. 남다른 이상함으로 장르적인 측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작품이기 때문에 루벤 임펜스 촬영감독과 대조가 두드러지는 조명이나 컬러를 사용하더라도 어떻게든 사실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피부를 아주 선명하게 보는 것이 중요했다. 관객이 믿을 수 있는 것에 더 가까워질수록, 촬영이나 특수효과는 무척 사실적이어야 한다. 알렉시아의 상처나 보철물은 의학적인 레퍼런스가 있었기 때문에 현실성이 전제되어 있었다.

한국 스릴러영화가 <로우>에 영향을 줬다는 인터뷰를 봤다.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

나홍진 감독의 모든 영화. 나는 나홍진의 열렬한 팬이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능 있는 감독이다. 한편의 영화에서 다양한 유형의 장르를 섞는 방식이 정말 대단한데, 그 결과물이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나홍진의 영화는 작품을 거듭할수록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더 깊어진다. <곡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추격자>를 언급하고 싶다. <추격자>는 진한 누아르와 코미디, 연쇄살인범에 관한 스릴러, 가족 드라마를 하나로 엮은 영화다. 너무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너무 어둡기 때문에 코미디로 숨 쉴 구멍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다. 연쇄살인마가 자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너무 가볍고 느긋한 캐릭터니까. 그래서 무장해제된 상태로 많이 웃었다.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와 미진의 딸(김유정)의 가족 드라마는 나를 정말 많이 울게 했다. 추격 액션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봉준호 감독도 정말 좋아한다. 그의 작품도 다 봤다. 나홍진과 봉준호 감독은 모두 거장이고, 내게 아주 중요한 모델이다. 내가 100% 사랑하지 않는 그들의 영화는 단 한편도 없다.

장르영화로, 그것도 호러영화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아서 화제가 됐다. 봉준호와 나홍진은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이면서 훌륭한 장르영화 감독이다. 그래서 <티탄>의 수상 소식이 더 반갑기도 했다. 국제영화제가 <티탄>에 황금종려상을 준 건 어떤 의미인가.

음, 난 <티탄>이 그 자체로 진정한 공포영화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요소와 장르를 엮어내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것이다. 코미디와 보디호러, 스릴러, 가족 드라마를 섞으려고 했기 때문에 내 영화를 순수한 호러로 분류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장르영화의 의미에서 <티탄>을 말하자면,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적어도 프랑스에서 여전히 무시되고 있는 특정한 부류의 영화에 대한 매우 큰 인정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영화들을 그렇게 무시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고, 아마 한국도 장르영화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티탄>이 상을 받은 것은 프랑스 장르영화에 대한 희망이 폭발한 것처럼 보였다. 이런 장르를 파고들기를 좋아하는 젊은 영화 제작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신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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