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세상을 분석하는 사람, 혹은 사람의 마음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읽어내는 사람. 어떻게 표현하든 빅데이터 전문가로서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이 각종 매체와 저서를 통해 쏟아내는 정보의 해석값은 그 가치가 연일 상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많은 이들이 순식간에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알게 됐지만 제대로 된 실체가 무엇인지 모른 채 키워드 트렌드를 좇는 시대에 빅데이터는 그 이유, 혹은 근거를 제시해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거의 매일 들여다보는 넷플릭스 앱의 추천작 리스트 알고리즘은 대체 무슨 근거로 내게 추천을 해주는지, 섬네일은 왜 자꾸 바뀌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면 답은 데이터에 있다. 송길영은 그 데이터를 해석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1년간 그가 <씨네21> ‘디스토피아로부터’에 쓴 글에서도 느껴지듯, 외롭고 쓸쓸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며 꿋꿋이 종이잡지를 만들고 있는 <씨네21> 미디어부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2022년 영화, 드라마, OTT 등의 키워드로 이뤄진 엔터테인먼트 전반의 트렌드는 어디로 향할까. 데이터가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궁금해 그에게 만남을 청했다.
- ‘디스토피아로부터’ 칼럼 기고를 1년째 이어가고 있다. 최근 에세이집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를 내며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 매번 <씨네21>의 에필로그처럼 들어가는 글이라서 엄청 신경 쓰인다. 칼럼명도 ‘디스토피아로부터’라니 얼마나 무거운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이야기하자니 너무 슬프고, 그렇다고 도외시하자니 시대성을 읽어낼 수 없을 것 같아 톤 앤드 매너를 고심하며 쓴다.
- 2022년을 주도할 새로운 트렌드 내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고 여러 대비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와중에 현재의 빅데이터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특히 <씨네21>은 잡지시장과 영화시장 양쪽의 어려움을 견뎌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오늘 오전, 아이러니하게도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배우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극장 산업은 어렵지만 콘텐츠 산업 입장에서는 부흥기다. 무슨 말일까. 산업은 어려워지고 있다지만 예술가들에게는 점점 더 기회의 장이 열리고 있다. 플랫폼의 관점에서 보면 예술의 직거래장이 열렸다. 과거엔 예술 작품을 관리하거나 알려주는 파이프라인이 맡았던 일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전세계에서 동시 공개된다. 그럼 우리는 이를 환영해야 할까, 아니면 사람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어 슬퍼해야 할까.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영화와 드라마 시장의 판도도 삽시간에 바뀌었다. <씨네21>도 지난해 말에 처음으로 연말 베스트 리스트를 꼽을 때 영화와 구분지어 드라마 리스트를 선정해 발표했다. 영화 리스트보다 독자들의 호응이 더 좋았다.
= 영화와 드라마는 지금까지 산업적인 접근 방식이 달랐다고 알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는 작가가 주도했다. 제작비가 많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와 대사에 집중해서 찍어야 했고 작가들의 글이 소중했다. 영화는 투자도 많이 하고 미장센을 만들어내는 작업도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을 이끌어나가는 지도력을 갖춘 감독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영화감독들이 드라마를 찍기 시작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투자 규모도 달라지고 있으니 영화와 드라마의 장르적 구분,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와 집에서 보는 드라마의 점유율도 차이가 생긴다. 과거에는 본방 시간을 맞추기 힘들어 드라마 정주행이 어려웠다면 이제는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고 선택의 폭도 넓어졌기 때문에 자신이 더 가치 있는 선택을 했다는 만족도도 높다.
-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 극장가가 멈추기 직전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수상했고, 혼란스러운 한해를 보낸 뒤 딱 1년 만에 <미나리>를 통해 한국 콘텐츠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윤여정 배우의 화제성이 OTT 전성기의 수혜를 입은 <사랑의 불시착> <오징어 게임>과 같은 작품으로 옮겨가며 세계 시장에서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변화 양상의 핵심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이제야 발견된 것 같다. 예술성은 계속해서 축적해왔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월드 클래스였다. 그런데 이제 발견된 거라고 생각한다. 산업이 뒷받침되지 못했을 뿐. 한국영화가 주로 다뤘던 주제가 글로벌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서적으로 확장된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중요한 성공 요인이라 생각한다.
- 관객이 극장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도 <씨네21>의 주요 관심사다. 사람들이 원하는 ‘극장’의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도 기대되는데 지금 사람들은 극장이란 공간에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 극장 기반 데이터를 분석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답변은 아직 할 수가 없다. 주변부 산업의 변화에 빗대어 설명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해외에서는 다락방에 홈시어터를 설치해서 천장에 프로젝터를 쏘아 극장처럼 꾸미는 것이 유행이다. 냉장고도 들여놓고 팝콘 스탠드도 둔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극장에 못 가니 집 안으로 극장을 들여놓은 셈인데 OTT 서비스가 촉매제가 되었다. 이제 극장은 아늑한 분위기의 집과 경쟁해야 한다. 나의 편안한 집에서는 길게 늘어선 주차 대기줄, 비싼 음식값, 시야를 방해하는 앞 사람으로 인해 답답해할 필요가 없다. 또 고사양의 TV,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음향 시스템 등 기술의 민주화도 이뤄지고 있다. 프라이빗한 풀빌라가 뜨고 있는 현실도 이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 하지만 극장 경험을 집 안으로 들여오는 데 있어 한국만의 한계도 있지 않나. 예를 들면 층간소음 문제가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상황에서 과연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바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 기술 경험은 다양해진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인테리어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것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제 집집마다 거실에 TV가 없다. 거실에 책장을 놓는다. 그러면 TV는 어디로 가는가. 방마다 TV를 놓는다. 랩톱도 있고 홈 짐에도 TV를 놓는다. 러닝머신에서 뛰면서 봐야 하니까. 다락방에는 벽에다 빔 프로젝터를 쏴서 스크린을 만든다. 핸드폰과 패드도 있다. 이제 집 안에서의 스크린은 하나가 아니라 N개로 확장된다. 극장은 우리 집 안의 N개의 스크린과 비교해 수고스럽게 극장을 찾아오는 일이 얼마나 유일한 경험을 안겨주는지를 마케팅해야 한다.
- 알고리즘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이제는 실시간으로 시청 반응을 데이터화할 수 있다 보니 정보값은 디테일해졌으나 과연 그 데이터가 올바른 방향으로 쓰일지 궁금하다.
= 정보가 존재한다고 해서 꼭 그 정보에 의해 의사 결정이 전도된다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그 정보를 쓰는 사람의 몫이다. 같은 장면을 분석하더라도 누군가는 노출이 많으니까 많이 본다고 받아들일 수 있고 전체 맥락에서 소비자의 수준이나 기호에 따라 노출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해당 장면의 반응을 두고 이것은 잘못된 사용자 반응이라 분석할 수도 있다.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터를 해석하는 사람의 눈높이가 올라가야 한다. 데이터는 의사 결정권자가 알아야 할 정보를 추가로 제공해준다. 창작자를 배려할 수 있는 데이터는 다양한 협업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가령 넷플릭스는 ‘무비 DNA’라는 정보값을 갖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1970년대 영화 중 고양이가 등장하는 서부영화’라는 식의 분류가 가능하다. 이런 정보를 어떻게 쓸지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 바야흐로 세계관, IP의 시대다. 영화, 드라마는 물론 아이돌 산업 등 엔터테인먼트 전반에서 세계관은 너무나 중요한 창작 포인트로 자리 잡았는데 대중은 왜 세계관에 열광하는 걸까.
= 엔터테인먼트 산업뿐만 아니라 빙그레의 사례처럼 마케팅에도 중요하게 쓰인다. 창작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틀거리가 있기 때문에 확장이 유용해질 것이고 설정으로 인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이건 사실 내가 처음부터 설계한 세계야, 라고 이야기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DC나 마블처럼 팬덤을 형성하기도 한다. 장기적인 흥행 요소다. 그러면 대중은 왜 세계관을 좋아하는가. 그만큼 똑똑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지적 능력을 가지고 공감을 나눈다. 내가 아는 걸 너도 알고 있구나. SF영화나 드라마와 관련해 세계관의 정교함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나. 그것은 즉 나는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이해를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 한다.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한 공통의 상상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인간은 상상을 공유한다. 컵을 두고 누군가가 “이건 컵이 아니야, 성배야”라고 말하면 그걸 믿기 시작하면서 문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상상의 총합인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건 우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 스스로를 마인드 마이너라고 지칭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캐는 사람이라는 뜻일 텐데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는 자신의 마음은 무엇을 향해 있는지, 무엇을 가장 고민하는지 궁금하다.
= 자기 객관화, 메타인지가 제일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잘 못 본다. 하지만 타자를 통해서 내 삶이 그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 유추한다. 자기 미래를 보는 건 두렵기 때문에 안 보려고 한다. 지금은 공감이 중요한 시대다. 그리고 상식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엔 남녀유별이 상식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런 변화를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고민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수치화한다. 범주가 늘고 대상에 대한 어떤 배려가 더 필요한 세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창작자들도 이 변화를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영화와 드라마의 장르 구분,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것이 시대의 정서다. 돌고래유괴단은 영화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다. 내 책의 부제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라는 말처럼 영화나 드라마, 광고가 모두 메시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 앞으로 영화나 드라마,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창작자의 영역은 어떻게 달라질까.
= 최근에 쓴 책에서 반향을 일으킨 발언이 있다. 미래 인간의 업은 콘텐츠 큐레이터나 플랫폼 제공자, 둘만 남게 될 것이라고 썼다. 너무 센 발언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오징어 게임>이 그 예인 것 같다. 황동혁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배우들은 수혜를 입었다. 그리고 수조원을 벌어들인 넷플릭스가 있다. 그 둘 사이의 배급사나 투자사가 사라지지 않았나. 글로벌하게 성공할 작품을 만들 창작자들의 고통은 커졌지만 이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은 과도기이고 몇번 더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이해하는 현상은 여기까지지만 그들에게는 축복인 것 같다.